앙리 샤프롱이 각색한 시트로엥 DS는 원래 모델의 유산을 능가할 정도로 향상됐다
사진 루크 레이시(Luc Lacey)
앙리 샤프롱은 공장을 짓고 10년 동안 시트로엥의 제품 카탈로그에 나오는 DS 카브리올레를 납품한 것 외에도, 이 같은 주제에 대해 좀 더 전문적인 개조를 통한 소량 생산 차들을 꾸준히 내놓았다. DS라는 자동차에 푹 빠진 이들의 세계에서는 수년 동안 이 희귀하고 매력적인 차들이 끝판왕으로 대접받고 있다.
프랑스의 마지막 대형 코치빌더였던 샤프롱은 파리의 한 작업장에서 들라주와 들라이예를 위한 차체를 만들며 명성을 쌓았다. 절정기에는 350명의 장인들이 연간 500대의 자동차를 생산했다. 그러나 전쟁 후 프랑스 정부가 대형 엔진을 얹은 고급 자동차들에 대한 재정적 제재를 퍼부어 거의 하룻밤 사이에 시장이 궤멸했다. 자신의 창작물을 위한 보디 온 프레임 구조의 소재에 굶주려 있었던 샤프롱은 자동차 업계가 프레임을 일체화한 차체 구조로 이동하는 환경 속에서 고급 대형차들과 함께 잊혀져 갈 수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따라서 1955년 초현대적인 DS가 출시되면서 이미 70세 가까이 된 이 창업자가 거의 40년 된 이 전통적인 사업을 사실상 구제하고 혁신하게 된 것은 희한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디에스(여신)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섀시가 없었지만, 이 앞바퀴굴림 방식, 하이드로뉴매틱 서스펜션을 적용한 ‘원더 카’가 가진 개념의 중심은 어떠한 외부 패널도 차체의 강성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구조였다.
샤프롱은 즉시 이에 대한 가능성을 보았다.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구입한 DS와 ID 살롱을 기반으로 한 2도어 쿠페와 컨버터블을 만드는 것으로 만족했다. 지붕선을 바꾸고 꼬리 장식, 크롬 장식, 더 화려한 휠 커버, 가죽 인테리어 장식으로 꾸민 그의 작품들은 르 크루아제, 팜 비치, 르 댄디, 르 캐디, 르 파리, 르 르망, 르 콩코드 등 다양하게 이름 붙여졌다. 이 차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개성을 소중히 여기는, 연간 30명 미만의 구매자들에게 베를린형 자동차의 모더니즘적 긴축을 넘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 고객들은 표준형 DS의 두 배 가격을 지불하면서도 값어치를 따지지 않았고, 성능 향상에 대해서도 개의치 않았다. 샤프롱의 모든 작품들은 기계적으로는 변함이 없었다.
샤프롱은 시트로엥의 디자이너 플라미니오 베르토니와 공동으로 유진(팩토리) DS 카브리올레를 만들었고, 제한된 시장에 대한 서비스 권한을 갖고 있었다. 그는 1961년부터 공식적으로 시트로엥과 함께 일했고, 1971년까지 시트로엥 공장이 제공한 (문, 지붕, 뒤 펜더, 실내가 빠진) 롤링 플랫폼을 바탕으로 데카포타블(컨버터블) DS 1365대를 제작했다. 그러나 4도어 DS 살롱에 대한 독특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깨달은 것은 1964년에 이르러서다.
이미 성우(신성한 소)이자 국보라 할 만큼 위대한 이 시트로엥은 시각적으로 매우 독특하면서도 본능적으로 정확한 물체로 널리 인식되어, 이를 수정하거나 개선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실패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 해 파리 오토살롱에서 처음 선보인 DS 마제스티는 자체적인 기준 내에서 자가 운전자가 아닌 운전기사가 운전할 가능성이 높은 자동차의 형태에 공식적인 위엄을 추가하는 데 성공했다.
1965년과 1969년 사이에 마제스티는 25대(또는 리포트에 따라서는 27대)만 주문 제작되었다. 하지만 1967년에 1968년식 모델로 4개의 방향성 헤드라이트가 도입된 것은 마지막 3대(또는 6대)뿐이었다.
모두 DS21에 기반을 두었는데, 이는 카뷰레터가 장착된 숏 스트로크 2175cc 4기통 엔진을 탑재해 표준 DS21 프레스티지보다 더 무겁고 덜 매끄러울 것으로 예상되는 차체에 100마력을 제공했다는 의미이다. 그 당시 샤프롱은 이 주류 플래그십 DS를 위한 럭셔리 트림을 제작하느라 바쁘기도 했다.
마제스티는 더 길었다. 샤프롱의 후기 팜 비치, 르 르망, 르 콩코드 2도어 모델과 공유된 스타일로 랩어라운드 범퍼와 핀 리어 펜더를 통합해 확장된 리어 오버행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종종 차체의 다른 부분과 대조적인 밝은 색상으로 마감된, 머리 공간을 대폭 넓혀주는 사각형 뒤쪽 지붕선은 다시 한번 2도어 르 콩코드와 마찬가지로 훨씬 더 깊은 뒤쪽 창을 포함했다. 강철 지붕은 시트로엥 공장에서 나온 살롱의 유리 섬유 패널처럼 볼트로 고정하지 않고 프레임에 용접했다.
보닛, 앞 펜더, 도어 프레스들은 표준 DS 그대로였지만 샤프롱이 즐겨 사용하는 크롬 몰딩, 대조적인 스테인리스 로커 패널, 맞춤형 배지가 장착되었다.
어떤 두 대의 차가 동일하게 만들어졌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1965년에 적어도 한 대의 마제스티는 더 수직적인 뒤쪽 유리 라인과 고정된 쿼터라이트, 더 긴 ‘수어사이드’ 스타일의 뒷문으로 제작되었다. 일부는 칸막이가 있었고(당신이 진정으로 키 작은 운전사를 고용하지 않는 한 앞좌석 다리공간이 심각하게 부족했다), 좌석 뒤에는 필기용 나무 책상 또는 읽을거리를 위한 파우치를 선택할 수 있었다. 뒷좌석 라디오 컨트롤, 운전자와 대화할 수 있는 마이크, 추가 독서등도 추가 품목에 있었지만, 전체적인 코놀리 가죽 마감은 일관되게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1969년에 신차로 판매된 섀시 4637101은 샤프롱 카탈로그에서 핀 없는 DS21 로레인으로 완전히 대체되기 전에 제작된 마지막 마제스티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미드나잇 블루 보디컬러에 하바나 베이지 가죽과 멋진 광택 알루미늄 휠 커버로 마감된 이 작품은 벨기에의 한 컬렉션에서 수년을 보냈고 최근 DD 클래식의 대니 도노반이 의뢰해 완벽한 복원을 마쳤다.
나는 여러 대의 DS 카브리올레를 운전해봤지만, 289대의 완전한 샤프롱 자동차 중 하나를 전에 본 적이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차는 그 자체로 대통령 의전용 자동차 분위기이고 – 다만 앞 펜더에 국기 게양대가 없다 – 마제스티가 표준 DS보다 더 긴 휠베이스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기꺼이 믿게 된다. 사실은 그렇지 않지만, 트렁크는 훨씬 더 깊고 사각형이다.
깡마른 뒷자락을 살짝 보면 시각적인 마법이 다소 깨진다. 드골이 프랑스의 위엄을 유지하기 위해 더 길고 넓은 DS 프레지덴셜을 의뢰해야 한다고 느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보닛을 열어보면 거칠게 보이고 특별하지 않은 직렬 4기통 엔진이 서스펜션 구성품들, 엔진 블록 절반 크기에 가까운 에어컨 컴프레서와 함께 서로 주의를 끌기 위해 싸운다. 벌크 헤드에 있는 ‘앙리 샤프롱’ 섀시 플레이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완벽하게 마무리되어 있다. 시트로엥 자동차의 엔진룸이 이보다 훨씬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DS 모델들과 마찬가지로 도어 글라스에는 프레임이 없다. 기자는 이 회사 마니아들을 흥분시키는 (6개의 원형 계기와 동그랗고 납작한 과일 사탕 스타일의 경고등을 가진) 예거 대시보드의 희귀성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모든 DS21 마제스티가 이처럼 앞좌석 사이에 끼어 있는 거대한 에어컨 유닛을 갖추고 있거나 이와 동일한 장비들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말굽 디테일이 있는 시트, 놀라운 다이아몬드 퀼트 헤드라이너와 가죽으로 덮인 도어 패널 등 표준 품목과 다른 화려함이 빛난다. 이러한 종류의 차로서는 파워 윈도가 없다는 게 흠이다. 대시보드의 가짜 나무 장식물은 페셀 베가 스타일로 깃털과 함께 칠해져 있다.
DS 마제스티가 실제로 운전하기에 어떤 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차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서스펜션에서 들리는 익숙한 딸깍 소리와 윙윙거리는 소리, 웨스트 런던의 끔찍한 도로가 제공하는 모든 것을 흡수하는 여전히 마법 같은 능력, 뒷다리 공간의 장관급 대우에 주목할 가치가 있다.
기어 레버를 왼쪽으로 밀어서 스타터를 작동시키면 1단 또는 2단에서 클러치 없이 출발할 수 있으며, 서보 어시스트 컨트롤의 민감도에 적응하며 부드럽고 온화하게 진행할 수 있다. 처음 10분 동안은 쿡쿡 찌르거나 세게 누르지 않고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특히 수리하기 비싼(설정이 까다로운) 반자동 변속기는 가벼운 터치와 정확한 타이밍을 요한다.
확실히 서두를 필요가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곧 본능적으로 스티어링 칼럼 위의 게이트 주위에 있는 작은 레버를 다루게 된다. 파워 어시스트 되는 싱글 스포크 스티어링 휠에서 거의 손을 떼지 않고 조작할 수 있다. 버섯 모양의 브레이크 버튼에도 발 무게보다 조금 더 많이 힘을 주면 될 뿐이다.
엔진의 소리와 느낌은 기어 변속이 난해할 정도로 부드럽다. 하지만 DS가 현대적인 교통 상황에 맞춰 쉽게 흐름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안심할 수 있는 유연하고 스트레스가 적은 장치이다. 여기서, 큰 시트로엥은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눈길을 끌어 모은다. 심지어 오래된 자동차에 대해서는 관심만 있는 사람들조차도 DS가 무엇인지 반쯤은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높은 인지도를 유지하고 있다.
샤프롱 자동차의 의의를 아는 이들은 극소수일 것 같다. 자동차 세계에서 부티크 패션 아이템의 정의로서, 이러한 세미 코치빌드 시트로엥은 프랑스에서도 널리 홍보되지 않았고 오늘날 유럽 본토 밖에서는 거의 볼 수 없다.
이런 차들은 모두가 열정적으로 수집되어 좀처럼 주인이 바뀌지 않지만, 여러분이 이 글을 읽을 때쯤 DD 클래식은 이 차와 헤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샤프롱 DS들
르 크루아제 1958-’62, 52대 생산
‘팩토리’ ID와 DS 드카포타블 드롭헤드에 영감을 주었다. 원래는 긴 문 뒤에 유리 섬유로 채워진 패널이 있었지만, 1960년부터 원피스 형태의 뒤 펜더가 적용되었다.
르 파리 1958-’59, 9대 생산
샤프롱 자동차 중 가장 수명이 짧고 희귀한 르 파리 쿠페는 초기 르 크루아제의 픽스드헤드 버전으로, 둥글게 감싼 후방 윈드스크린이 특징이다.
르 콩코드 1960-’67, 52대 생산
르 파리 대체 모델로서 사각형 지붕선과 넓은 유리 영역을 갖춘 이 2도어 4인승 자동차는 일체형 용접 리어 펜더로 완성되었다.
르 캐디 1960-’68, 34대 생산
4인승 르 크루아제를 보충하기 위한 2+2 드롭헤드 모델인 르 캐디 카브리올레는 1963년부터 길고 독특한 사각형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옵션 하드톱 선택이 가능했다.
르 댄디 1960-’68, 50대 생산
르 캐디의 고정 지붕 버전은 알루미늄 지붕, 플렉시글라스 리어 윈도, 비좁은 ‘+2’ 리어 시트를 갖추고 있었다. 1963년부터 수정된 뒤 펜더가 적용됐다.
팜 비치 1963-’70, 30대 생산
이 4인승 르 크루아제 대체 모델은 더 긴 후드와 뒤쪽의 와인딩 쿼터 윈도가 특징이다. 경사진 꼬리는 1965년부터 지느러미 흔적으로 대체되었다.
르 르망 1965-’72, 25대 생산
르 콩코드를 대체하는 마지막 4인승 픽스드-헤드 쿠페이다. 더욱 경쾌한 리어 윈도우가 특징이며, 대부분은 내장형 헤드라이트가 적용됐다.
로레인 베를린 1969-’74, 20대 생산
이 마제스티 후속 모델은 더 높은 지붕선, 더 넓은 C-필라, 더 높고 네모난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문짝 유리는 원할 경우 프레임을 넣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