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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보이스] 당신에게도 동네 카페가 있나요?

ⓒKristaps Grundsteins by Unsplash

ⓒKristaps Grundsteins by Unsplash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가 아예 살게 된 친구가 있다. 오랜만에 그가 한국에 왔을 때 나는 외국인처럼 한국을 관광하는 친구의 모습을 놀리다가 문득 궁금해서 물었다. “다른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언제 실감해?” 그는 말했다. 한국의 좋은 카페를 놀러 다니다가도 이내 도쿄의 동네 카페가 그리워질 때라고. 이 대답이 ‘동네 카페’에 관해 많은 것을 말해 준다고 생각한다.
올 여름에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내가 만약 이 지역에 사는 사람이라면 어떤 카페를 ‘동네 카페’로 여기게 될까? 지도 앱을 켜는 대신 이곳 토박이로 빙의해 분위기 좋은 골목을 찾아다녔다. 커피가 맛있으면서 읽고 쓰기 편안한 좌석과 조명, 게다가 비건 옵션이 가능한 곳은 핵심 상권에서 살짝 떨어진, 임대료가 낮은 곳에 있을 확률이 높으니까. 그렇게 숙소에서 걸어갈 만한 거리에서 ‘임시 동네 카페’로 적당한 곳을 발견할 때면 여행의 퀄리티는 미묘하게 높아진다. 일상은 그대로 유지하되 배경 화면만 쓱 바꿔놓는 것도 엄연한 여행의 장르 아닐까? 생소한 환경에서 일상을 보내며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영위할 수 있었던 평화를 자각하는 것이다.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비율의 오트 라테와 간단한 빵 같은 걸 맛보며 낯선 동네 사람들을 구경한다. 그리고 사치를 부리듯 태평하게 생각한다. ‘아, 우리 동네 카페 가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우리 동네 카페는 집에서 도보로 15분쯤 걸리는 곳에 있다. 이 지역으로 이사하고 1년쯤 됐을 때 우연히 왔다가 서서히 정을 붙였다. 처음에는 안으로 들어가기 조심스러웠다. 밖에서 봤을 때는 손님과 계산대의 거리가 다소 부담스럽게 가깝게 느껴졌으니까. 카페에서는 아무래도 생각의 전환과 마음의 환기, 영원한 딴짓과 달콤한 디저트를 탐미하는 개인 행위가 일어나기 때문에 혼자 있는 것처럼 아늑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남의 공간을 잠시 빌렸을 뿐 정말 혼자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조금 의심스러운 걸음으로 쭈뼛거렸으나 놀랍게도 자리에 앉고 나니 특별한 구조물 없이도 타인과 나 사이에 세워진 투명한 벽 같은 것을 미세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때 직감했다. ‘여기 맛있겠구먼….’

ⓒValeriia Miller by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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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카페의 조건에서 공간만큼 중요한 것은 음악일 것이다. 커피가 맛있는데 좌석도 편한 데다 음악 취향까지 맞는 곳을 찾는 건 정녕 불가능한 일일까? 나의 동네 카페에는 꼭 ‘LP 플레이어’가 아니라 ‘전축’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오디오 시스템이 있다. 겉보기엔 수수하지만 음향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꽤 신경 썼다는 걸 느끼게 하는 오디오에서 1980~1990년대 전후의 재즈와 조용한 팝 위주의 음악이 나온다. 선곡에는 나 혼자 좋아했다고 착각하는 숨겨진 명곡이 심심찮게 섞여 있어 뭔가를 읽고 쓰고 있다가도 잠깐 음악을 듣기도 한다. 그때가 바로 이 공간을 마음 놓고 좋아하게 되는 순간이다. 전축 주변에는 누군가 오래전부터 모아온 것 같은 카세트테이프, LP와 CD가 소복이 쌓여 있다. 선망하는 마음으로 그 수집품들을 보고 있으면 사장님이 나타나서 말을 건넨다. “테이프 좋아하세요?” 익명 속에 섞여 있는 게 편한 나지만 막상 스몰 토크 현장에 초대되면 적극적으로 임한다. “그럼요. 저도 어릴 때 테이프 모았어요!”
낯선 사람의 존재가 안전하지만은 않은 세상에서 일상적으로 입게 되는 마음의 갑옷은 생각보다 무겁다. 하지만 갑옷을 벗을 때 의외로 받는 위로도 있다. 버스에서, 편의점에서, 식당에서 나눈 별것 아닌 대화로 망해가던 하루가 회복되는 경험을 해본 적 있다면, 모르는 사람과의 친절한 대화가 내심 그리운 기분을 알리라. 동네 카페 사장님은 내가 음악 비슷한 걸 하는 사람인 것도 알고 있고 뭘 잘 봤다는 식의 이야기도 하는데, 내향적인 내게 부담스러운 주제가 왜 하나도 싫지 않을까? 오히려 더 말을 걸고 카페를 향한 애정을 열심히 표현하는 것은 내 쪽이다. 계산대 옆에는 사장님이 직접 찍은 사진과 단골 강아지들의 사진이 붙어 있다. “얘는 예전부터 단골이었고, 이 아이는 최근에 오기 시작했어요. 이 사진은 요 앞 하천을 찍은 건데, 겨울이 되면 이렇게 이쁘죠.” 그러고 있으면 사진에서 봤던 강아지가 실제로 카페에 들어서곤 한다.
동네 카페에 못 간 지 2주쯤 된 것 같다. 조만간 다시 가서 내가 좋아하는 오트 라테를 마시며 일기를 쓰고, 샌드위치를 탐욕스럽게 베어 물어야지. 수줍지만 은근 적극적인 사장님과 스몰 토크를 하며 즐거워해야지. 타인 속에서 느끼는 혼자의 기분, 일상을 보내는 수많은 사람 중 평범한 하나가 됐다는 기분에 평화를 느끼며. 우리 동네 카페에 가고 싶다.

김사월

어느덧 네 번째 정규 앨범을 발표한 싱어송라이터. 잘 웃고 잘 울다가 뭔가를 기록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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