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메 아욘이 해석한 루이비통의 유쾌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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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디자이너이자 예술가 하이메 아욘은 위트와 유머, 창의적인 시각 언어로 가구와 조명, 오브제, 설치미술 작품까지 매체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지난 25년간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유연하게 허물며, 대담한 형태와 색상, 모티프를 결합해 자신만의 우주를 구축해 왔다. 이런 독창성은 세계적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상상이라는 끝없는 바다를 유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보타닉(Botanik)’ 컬렉션은 가죽으로 감싼 세라믹 박스, 캔들 홀더, 트레이 등으로 구성돼 실용성과 장식성을 모두 갖췄다.

‘보타닉(Botanik)’ 컬렉션은 가죽으로 감싼 세라믹 박스, 캔들 홀더, 트레이 등으로 구성돼 실용성과 장식성을 모두 갖췄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하이메 아욘의 디자인에서 예술적 상상력과 실용성은 어떤 방식으로 조화를 이루나

예술가이자 디자이너로서 내 작업은 두 세계의 자연스러운 결과물로 보면 된다. 굳이 균형을 논리적으로 따지거나 설명하지 않는다. 복잡한 정의보다 자연스럽게,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편이다. 조각부터 제품에 이르기까지 모두 내 언어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대형 설치미술 작품이든, 작은 액세서리든 모두 하나의 디자인 플랫폼 안에서 예술가로서 접근한다. 지난 25년간 쌓아온 창작 코드와 가치, 비전을 바탕으로 형태와 소재에 이야기를 불어넣는다.

보통 창작의 출발점은 무엇인가? 형태 혹은 소재나 색상? 아니면 이야기인가

모든 요소가 동시에 떠오르지만,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테마는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이번 루이 비통과의 협업 컬렉션은 ‘보타닉(Botanik)’이라는 테마에서 출발했다. 자연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영감을 얻었고, 이후에는 무엇을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을지, 또 루이 비통과 내가 공유하는 장인 정신에 대한 애정이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가죽과 세라믹, 일본의 칠기, 중국 도자기, 무라노 유리 등 다양한 재료와 기술을 실험했다. 이 과정을 시작으로 식물이 자라듯 이 컬렉션도 진화해 나갈 예정이다.

다채로운 컬러와 소재가 어우러진 하이메 아욘의 작업 테이블.

다채로운 컬러와 소재가 어우러진 하이메 아욘의 작업 테이블.

지금껏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며 자신만의 예술적 언어를 구축해 왔다. 루이 비통과의 여정은 당신에게 어떤 경험이었는지

진정한 창작의 선물이었다. 이 협업은 루이 비통의 유산과 정밀함, 소재에 대한 탁월한 감각이 응축된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었다. 그만큼 상상력도 대담해야 했고, 나의 세계를 이 프로젝트에 온전히 담아내야 했다. 오브제를 만든다는 건 제품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감정적이고 유쾌하며, 스토리텔링에 기반을 두되 장인 정신과 디테일을 깊이 존중하는 세계 말이다. 이번 컬렉션이 특별한 이유는 그런 정신뿐 아니라 함께 탐구한 기술과 소재의 풍부함 덕분이다.

‘보타닉’ 컬렉션의 정제된 형태 이면에 숨은 섬세한 제작 과정, 그 창작의 깊이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

모든 것이 수작업으로 이뤄졌다. 최고 수준의 장인들과 협업하며, 국제적 장인 정신의 스펙트럼을 탐구하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다. 사용된 각 소재에는 정교하고 복합적인 공예적 기술이 깃들어 있다. 예를 들어 금속처럼 보이는 오브제는 사실 가죽으로 제작된 것으로, 놀랄 만큼 가볍다. 셸 구조는 보강돼 있고, 모든 디테일은 손바느질로 완성했다. 전통과 혁신의 경계를 넘나드는 재료 실험은 ‘보타닉’ 컬렉션의 힘이자 정체성이다.

 하이메 아욘이 위트 있게 그려낸 루이 비통의 ‘보타닉’ 컬렉션.

하이메 아욘이 위트 있게 그려낸 루이 비통의 ‘보타닉’ 컬렉션.

하이메 아욘 디자인의 정체성 중 하나인 유머와 상상력이 이번 협업에서도 여전히 엿보인다. 그러나 이번에는 절제된 방식으로 드러난 것 같다

늘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오브제 속에 담아내길 바란다. 이번 컬렉션에서도 각 작품이 하나의 작은 캐릭터처럼 느껴지기를 바랐다. 형태와 촉감에 섬세하면서도 기발한 요소를 더하고, 전통적 오브제의 비율에 의도적으로 도전함으로써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생동감은 단지 형태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가죽의 부드러운 질감, 칠기의 반짝임, 금속의 묵직한 감촉과 광택 같은 전통적이면서도 자연에서 비롯된 재료들 자체가 고유의 존재감과 개성을 전달한다. 설명 없이도 호기심을 자극하고, 놀라움을 유도하며, 장인 정신에 깊이 뿌리내린 디자인. 이 균형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

색상도 하이메 아욘의 디자인 언어에서 감정과 사유를 표현하는 요소다

꽃, 광물, 야생의 풍경, 여행의 기억에서 떠오른 색조들을 통해 현실과 상상이 공존하는 세계를 그려내고 싶었다. 그러나 이 컬렉션의 핵심은 색 자체보다 오브제의 소재, 형태, 크기의 변화로 각 오브제의 성격을 바꾼 데 있다. 각각의 오브제는 고정된 기능을 갖기보다 열린 가능성을 품고 있다. 예를 들어 가죽 트레이는 조각처럼 중심 오브제가 될 수 있고, 화병은 하나의 토템으로 기능할 수 있다. 그것의 사용은 전적으로 사용자에게 달려 있다. 그 자유로운 상호작용이 바로 이야기를 완성해 준다. ‘보타닉’ 컬렉션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시이자 이야기이며, 감각적 언어로 확장된다.

 소재와 색채의 연금술사, 하이메 아욘.

소재와 색채의 연금술사, 하이메 아욘.

오브제의 의미와 감정적 연결이 점점 더 중요한 가치로 부각되는 요즘 ‘보타닉’ 컬렉션을 통해 어떤 반응이나 해석을 이끌어내고 싶은가

디자인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건 결국 이야기와 감정, 상징이 전하는 울림에 있다고 본다. ‘보타닉’ 컬렉션은 식물학에서 시작됐고, 자연을 들여다보며 형태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에 충실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이런 감각적 탐험을 통해 따뜻함과 경이로움,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개인적이고 친밀한 경험이 되길 바란다.

〈엘르 데코〉 코리아 커버를 위해 여러 아트워크를 보내왔다. 그중 오브제를 활용해 사람의 얼굴을 형상화한 콜라주는 특정 인물을 표현한 것인가

내 얼굴이다. 내가 만든 작품인 만큼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웃음). 장인 정신과 자연을 상징하는 요소를 담아 사람들에게 미소를 안겨줄 수 있는 긍정에너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오늘날 많은 것이 기계적으로 만들어지지만, 나는 인간의 전통과 장인 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커버 아트워크를 통해 사람들이 수작업과 전통적 방식으로 만들어진 물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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