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위기의 韓 반도체, “주먹구구식 행정 멈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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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과정에서 주민이 입는 피해를 정확히 확인하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업무를 전담하는 부서도 없어서 힘들죠.”

최근 찾은 경기 용인시 원삼면에서 만난 주민들의 공통적인 주장이다. 이 지역에는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될 예정이다. 그렇다고 주민들이 무작정 클러스터 조성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최소한 공사 전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피해가 있다면 정확히 파악해 보상해주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한 주민은 공사 과정에서 폐수 문제로 직접 용인시에 찾아갔지만, 이를 담당하는 부서가 없어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반도체는 우리나라 경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핵심 산업인데, 정작 관련 행정은 주먹구구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최근 국가 간 반도체 경쟁이 심화하면서 전운이 감돌고 있다. 미국은 자국 기업 중심의 두터운 지원 정책을 펼치며 초격차를 벌려 나가고 있다. 소부장(소재·부품·장비)에 집중했던 일본도 파운드리 선두 기업인 대만의 TSMC에 집중 투자하면서 생산라인 확대에 나섰다. 위기가 점차 가시화하자 우리나라도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용인시는 최근에야 인허가 절차를 단축하기 위한 전담조직을 운영하기로 했다. 다음 달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들도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SK하이닉스 본사를 직접 찾아 반도체 산업에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현재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에 놓였다는 말이 나온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주름잡고 있다는 영광에 사로잡혀 도전하고, 변화하기를 잊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메모리 반도체도 더 이상 안심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최근 만년 업계 3위였던 미국 마이크론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보다 먼저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인 HBM3E 양산 소식을 알렸다. 인력 누수도 여전히 심각하다. SK하이닉스에서 HBM 설계 업무를 담당하던 A 씨가 재취업 관련 약정을 깨고 마이크론의 임원급으로 자리를 옮겨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이제는 정말 위기의식을 가지고 변화해야 할 때다. 더 이상 보여주기식, 주먹구구식 행정은 금물이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정부 주도의 강력한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산단 조성뿐만 아니라 인재 양성·누수 대책 마련 및 인프라 개선 등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여러 문제를 전담할 대표 조직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도체 경쟁은 사실상 시간 싸움이다. 변화가 늦어지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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