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사태에 숨은 한국 경제의 병폐들
대형마트 업계 2위였던 홈플러스가 파산 위기에 놓였다. 사모펀드의 약탈적 경영, 대형마트 산업의 위기 등을 꼬집는 목소리가 많지만 이 사태에 숨은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 경제의 온갖 병폐가 도사리고 있다.
김다린 기자 quill@fortunekorea.co.kr
![홈플러스가 새 주인을 찾지 못한 채 유동성 위기로 벼랑 끝에 몰렸다. [사진=뉴시스]](https://www.fortunekorea.co.kr/news/photo/202511/50782_44492_5848.png)
홈플러스가 벼랑 끝에 몰렸다. 올해 초 법정관리 문을 두드렸는데, 새 주인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공개 경쟁 입찰을 진행했지만, 인수 의향서를 낸 곳이 한 곳도 없었다. 사실상 매각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셈이다.
법원은 회생계획안 제출 기한인 12월 29일까지 홈플러스와 매각 주간사 삼일회계법인, 채권자협의회와 이해 관계인 의견을 모아 향후 방향을 정리할 계획이다. 자체 회생계획안을 짜는 방안, 2차 인수합병(M&A) 절차를 다시 여는 방안 등을 두고 회생 절차를 어떻게 이어갈지 논의한다는 구상이지만, 현실적으로 딜 성사는 요원하다. 최근 대규모 미정산·미환불 사태로 기업회생 절차를 밟다 파산한 위메프의 길을 걷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지는 이유다.
연 매출 7조 원, 한때 대형마트 2위였던 회사가 이렇게까지 추락한 이유는 뭘까. 일부에선 최대 주주인 사모펀드(PEF) MBK파트너스의 경영 실패, 대형마트 산업의 쇠퇴 등을 꼽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공교롭게도 이 혼란스러운 매각 이슈의 이면에는 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병폐로 불릴 만한 요소들이 총체적으로 숨어 있다. 인수자를 찾지 못해 혼란이 장기화할 공산이 커지면서, 홈플러스 사태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정면으로 드러내는 상징적인 사건이 됐다. 포춘코리아가 그 병폐의 장면들을 하나씩 짚어봤다.
첫째 병폐: 취약한 거버넌스
홈플러스 추락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취약한 거버넌스(지배구조)와 과도한 금융 차입 부담이다. MBK파트너스는 홈플러스 인수 당시 LBO(Leveraged Buy-Out, 차입매수) 방식을 택하며 막대한 규모의 인수금융을 홈플러스에 지워 수천억 원의 이자 비용을 발생시켰다.
MBK에 인수된 이후 5년 만에 금융비용만 1조 원 이상 지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자 상환과 차입금 리파이낸싱에 집중하느라 점포 리뉴얼과 이커머스 전환 등 본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는 상대적으로 미흡했다. 우수한 입지 조건에도 점포 노후화가 심화해 고객의 발길이 뜸해졌다.
문제는 이렇게 부실한 경영이 지속될 때마다 기업의 장기적인 생존을 위한 이사회 및 경영 견제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모펀드가 지배하는 구조에서 투자 회수 논리가 우선시됐고, 이는 결국 우량 기업을 비우량 기업으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홈플러스의 자산은 인수 후 6년 새 약 4조 원이 증발했다.

둘째 병폐: 허술한 규제 시스템
홈플러스의 사세가 꺾인 데에는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허술한 규제 시스템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12년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은 전통시장 보호를 위해 대형마트에 월 2회 의무 휴업, 영업시간 제한(자정 이후) 등을 강제했다.
이 규제는 대형마트가 가장 경쟁력을 확보해야 할 새벽 배송 및 야간 온라인 사업을 봉쇄하는 족쇄가 됐다. 여기서 자유로운 쿠팡 등 이커머스 플랫폼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동안, 홈플러스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더 큰 문제는 규제로 보호하려던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은 여전히 쇠퇴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통 업태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채 10년 넘게 일률적으로 적용된 규제가 결국 국내 유통 산업 전체의 혁신을 막고 특정 플랫폼만 승자가 되게 만든 것이다.
셋째 병폐: ‘부동산 불패’ 신화
MBK가 막대한 부채를 감당하면서도 홈플러스를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근본적인 이유는 ‘부동산 불패’ 신화를 둘러싼 기대 때문이었을 공산이 크다. 이 투기적 기대는 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유동성 쏠림 현상을 그대로 반영한다.
MBK는 인수 초기부터 홈플러스의 점포가 보유한 부동산 자산 가치를 주된 투자 회수 방안으로 상정했다. 이는 기업의 본업 경쟁력보다 자산 매각 이익에 의존하는 한국 자본 시장의 왜곡된 단면을 보여준다. 실제로 인수 직후부터 우량 점포 20여 곳을 매각 후 재임대하는 세일앤리스백(Sale and Leaseback) 방식으로 자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 실적 악화에도 홈플러스가 보유한 주요 도심지의 대형 부지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처럼 기업의 가치가 유통 본업이 아닌 보유 부동산의 가치에 의해 평가되면서 부동산 자산 매각 및 가치 상승에 의존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고착화했다. 한국 경제가 수십 년간 생산적인 산업 투자보다 부동산 시장에 과도하게 유동성을 몰아주며 생긴 부작용은 홈플러스의 모습과 닮았다.
넷째 병폐: 관(官)의 그림자
새 주인을 찾기가 어려워지자, 정치권에서 농협의 홈플러스 인수론이 불거지는 것은 한국 사회의 또 다른 고질적인 문제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농협이 홈플러스를 인수하여 농산물 유통처를 늘리고 고용 불안을 해소하는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하지만 농협 측은 이미 농협하나로유통과 농협유통 등 유통 자회사의 누적 적자가 커 홈플러스 인수 여력이 없다. 재무적 리스크를 키우고 농업인 지원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 농협 내부와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정치적, 사회적 맥락을 앞세워 공적 성격이 짙은 기업에 부담을 떠넘기려는 관의 부적절한 시도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대부분 결과가 좋지 않았다.
결국 홈플러스 사태는 단순한 개별 기업의 파산 위기가 아닌, 사모펀드의 단기 투자 논리, 시대착오적인 규제, 부동산 불패 신화, 그리고 경제 논리가 실종된 관의 개입 등 한국 경제의 구조적 병폐가 한데 얽힌 복합적인 산물로 전락했다. 이 문제들을 제대로 공론화하고 해결하지 못한다면, 홈플러스 사태는 또 다른 ‘홈플러스’를 낳는 비극적인 선례가 될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