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도 해고도 없다… 정적에 빠진 고용 시장이 무서운 이유
![[사진=셔터스톡]](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6/01/CP-2024-0163/image-49df36d4-9035-4d84-b2fe-455a11affd31.jpeg)
미국 경제는 여전히 ‘호황’ 같다. 대규모 해고가 폭증한 것도 아니다. 주식시장은 계속 오른다. 그런데 최근 새 고용 지표가 공개되자, 미국에서 손꼽히는 경제학자 중 한 명은 “속이 철렁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너무 괴롭다. 성장은 하는데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KPMG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다이앤 스웡크(Diane Swonk)의 말이다.
이번에 나온 두 지표는 서로 다른 창으로 같은 풍경을 보여준다. 미국 노동통계국(BLS)의 11월 구인·이직 통계(JOLTS). ADP의 12월 민간 고용 보고서다. 채용 수요는 빠르게 식었다. 사람들의 이직도 멈췄다. 그런데 기업은 해고에도 소극적이다. 스웡크는 이 조합이 과거의 확장 국면과 닮지 않았다고 본다.
우선 JOLTS부터 보자. 경제학자들은 민간 통계인 ADP보다 정부 통계인 JOLTS에 더 무게를 둔다. 11월 구인 건수는 약 710만 개로 떨어졌다. 10월보다 크게 줄었고, 1년 전보다 약 90만 개 적다.
특히 스웡크가 충격을 받았다고 꼽은 지표가 ‘자발적 퇴사율(quit rate)’이다. 11월 2.0%로 제자리걸음이었다. 경제학자들이 이런 수준의 ‘정체’를 마지막으로 본 건 2014년 1월이다. 당시 미국은 대침체(Great Recession) 여파에서 막 벗어나는 중이었다.
경기가 건강하면 사람들은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스스로 회사를 옮긴다. 그 흐름이 임금 상승을 밀어 올린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스웡크는 근로자들이 두려움 때문에 지금 일자리에 매달리고 있다고 본다. 움직임이 사라지면서 중산층이 ‘연봉을 올리는 정석 경로’도 함께 희미해졌다.
ADP 통계에선 ‘직장 이동자(job-changers)’ 임금 상승률이 12월 6.6%로 더 빨라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스웡크는 이 수치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했다. 이른바 ‘이직 프리미엄’이 점점 더 소수의 특화 AI 인재에게만 남고 있다는 해석이다. 평균 근로자에게는 이직으로 얻는 이익이 사라졌다. 이직률이 떨어지고 기업은 채용을 멈춘다. 노동시장은 더 단단히 얼어붙는다.
정체의 신호는 다른 지표에서도 보인다. 지프리크루터(ZipRecruiter)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니콜 바쇼(Nicole Bachaud)는 ‘기타 이직(other separations)’이 “사상 최저”라고 썼다. 통상 은퇴나 부서 이동 같은 항목을 뜻한다.
11월 기타 이직은 23만 2000건까지 내려갔다. 바쇼는 “고령 근로자들이 점점 더 오래 노동시장에 남는다”고 했다. 기대수명 증가도 있지만, 생활비 부담이 커지면서 은퇴자금 압박이 커진 영향도 있다는 분석이다. 쉽게 말해, 많은 베이비부머가 ‘노후를 즐기기 어려운 경제’에 놓였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은퇴하지 않는다. 옮기지도 않는다. 퇴사도 하지 않는다. 채용은 “바닥”인데 해고는 낮다. 팬데믹 이후의 조심스러움과 인력 부족의 기억이 겹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대퇴사(The Great Resignation)’를 겪은 기업들이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대신 새로 뽑는 걸 줄인다. 스웡크는 “리오프닝 당시 채용이 과열됐고, 지금은 그 숙취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노동시장의 정체는 소득계층별로 다른 상처를 남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인스티튜트의 최신 데이터는 임금 상승 경험에 “뚜렷한 격차”가 생겼다고 보여준다. 12월 고소득 가구의 세후 임금은 3.0% 늘었다. 중간소득 가구는 1.5%로 떨어졌다. 2024년 5월 이후 최저다. 저소득 가구는 1.1%에 그쳤다.
물가가 여전히 완강하면, 중·저소득층은 실질임금이 사실상 줄어드는 셈이다. 성장하는 경제에 살지만, 월급을 받을수록 더 가난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K자’ 분화는 소비도 갈라놓는다. 고소득층은 여행과 서비스 소비로 경제를 떠받친다. 반면 하위 80%는 빠듯한 살림을 이어간다.
ADP 12월 보고서는 특정 지역의 급락도 보여준다. 데이터가 정확하다면 ‘국지적 위기’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서부 지역 일자리가 한 달 새 6만 1000개 줄었다. 태평양 연안의 기술·전문 부문에서만 5만 9000개가 감소했다.
스웡크는 이를 “효율로 더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일을 하는” 고용 없는 성장의 증거로 본다. AI로 인한 생산성 향상인지, 팬데믹 이후 과잉 채용의 뒤늦은 조정인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는 단서도 달았다. 다만 기업들이 화이트칼라 지원 직무와 중간관리자 포지션을 빠르게 줄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했다. 그 일자리는 한때 중산층의 ‘기둥’이었다.
전문가들이 더 우려하는 건 성장의 기반이 좁아졌다는 점이다. 2025년 하반기 고용은 사실상 한 섹터가 떠받쳤다. 교육·보건 서비스(Education and Health Services)다. 이 부문은 12월 3만 9000개를 늘렸다.
스웡크는 이를 “한쪽 다리 의자(one-legged stool)”에 비유했다. 그 의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고도 했다. 보육 보조금이 동결되고, 관세 여파로 공공 부문 전반이 비용 압박을 받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래도 ‘바닥’에 대한 단서는 찾으려는 분위기다. BoA는 노동시장이 ‘저채용·저해고’ 모드이긴 하지만 12월 자사 임금 추정치가 소폭 반등한 점에 주목했다. “감속의 최악 구간은 지났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다만 2026년 전망은 여전히 박하다. LPL 파이낸셜(LPL Financial)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제프리 로치(Jeffrey Roach)는 민간 고용 증가가 올해 대부분 월 5만 명 수준에 머물 것으로 봤다. “바닥을 찍었을 수 있다”면서도, 채용이 얼마나 가파르게 꺾였는지는 숫자 자체가 말해준다고 했다.
세금 환급과 19개 주의 최저임금 인상은 단기 소비를 떠받칠 수 있다. 그러나 스웡크는 효과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지금의 경제는 시장 조정 같은 충격에 취약하다는 이유다. 그는 “상위 20%에 부정적 충격이 오면 소비가 빠르게 꺾인다”며 “그게 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 글 Eva Roytburg & 편집 김다린 기자 quill@fortunekore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