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원 따로 적으면 플라스틱 안 쓰나요?” 일회용품 정책 잔혹사
정부가 일회용컵 사용량을 줄이고자 ‘보증금제’를 시행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이어 후속책을 꺼냈는데, 이마저도 반응이 신통치 않다.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 잡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신지수 기자 jisuraguyo24@fortunekorea.co.kr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으로 카페에서 사용되는 일회용컵에 보증금 안내 스티커가 부착돼 있다. [사진=뉴시스]](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6/01/CP-2024-0163/image-5cbe46c5-7acb-4439-bcba-182b348e8161.jpeg)
정부의 일회용품 정책이 또다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이번엔 컵값을 음료 가격과 분리해 영수증에 따로 표시하는 이른바 ‘컵 따로 계산제’다. 2022년 야심 차게 출발했던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현장의 거센 반발과 준비 부족으로 표류하자 내놓은 일종의 궁여지책이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컵을 씻어 반납하는 번거로움만 사라졌을 뿐, 탁상공론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돌이켜 보면 2022년 12월 시행된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시작부터 무리수였다. 음료를 살 때 300원의 보증금을 미리 내고, 컵을 다시 매장에 가져오면 이를 돌려받는 이 제도는 현장에 안착하기 어려웠다.
점주는 컵마다 고유 바코드가 부착된 라벨을 일일이 붙여야 했고, 반납된 컵을 씻고 보관하며 회수 업체에 전달하기까지 모든 불편함을 떠안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소비자가 300원의 부담을 직접 체감하면 습관이 바뀔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정작 컵을 돌려받는 인프라 구축에는 인색했다.
결국 전국 의무화로 꾀하려던 이 정책은 지자체 자율로 후퇴했고, 선도 지역이었던 제주와 세종에서조차 참여율 저조로 동력을 잃었다. 현장의 생리를 무시한 채 ‘도덕적 의무’만 강요한 결과였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컵을 가져오면 돈을 돌려준다는 건 약간 탁상행정 느낌이 난다”며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이후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내놓은 플랜B가 바로 ‘컵 따로 계산제’다.
이 제도의 핵심은 간단하다. 50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음료 4700원·일회용컵 300원’으로 분리 표기해 소비자가 일회용품 비용을 인식하게 만들겠다는 거다. 텀블러를 가져오면 4700원만 결제하니, 300원을 아끼는 효과도 동시에 누릴 수 있다. 정부는 공청회 의견 수렴 후 시행 시기를 결정할 계획이다.
탁상공론 비판을 벗어나고자 만든 제도였지만, 정작 현장의 반응은 차갑다. 청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A 씨는 “실제 가격 인상이 아니라고 정부는 말하지만, 손님 입장에서는 영수증에 따로 찍힌 컵값을 보고 ‘음료값이 올랐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며 “이미 많은 카페가 텀블러 할인을 하고 있는데, 영수증에 글자 몇 자 더 적는다고 텀블러 사용자가 늘어날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따지고 보면 이 제도는 실제 플라스틱 생산을 줄이는 직접적인 규제가 아니다. 가격 표시 방법만 바꿔서 책임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방식이라서다. 대책의 실효성에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이유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정책이 공회전을 하는 사이, 일회용품 사용량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따르면 폐합성수지류(플라스틱) 폐기물 총발생량은 2019년 1020만 톤에서 2023년 1463만 톤으로 43% 폭증했다.
발생량 감축이 시급한데도 정작 정부의 정책이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는 뚜렷하다. 정책을 수행하는 자영업자와 비용을 지불하는 소비자 그 누구에게도 명확한 ‘베네핏(Benefit)’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증금제는 세척과 보관의 노동을, 표시제는 가격 인상 오해와 포스(POS) 시스템 변경 비용을 자영업자에게 떠넘겼다. 환경 보호라는 거창한 명분 아래 현장의 고충은 항상 ‘어쩔 수 없는 희생’으로 치부했다.
서원대 환경공학과 조규태 교수는 “정책 방향이 친환경이라 할지라도 소비자와 자영업자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 최우선이어야 한다”며 “규제라는 압박만 가할 것이 아니라 자영업자를 향한 실질적인 세제 혜택이나 인센티브 등 구체적인 보완책이 선행됐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