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 정의부터 다시 하자”…패권 경쟁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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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재무부가 느슨한 규제로 탄소를 배출하는 수소 사업에 1000억달러(한화 130조원)를 지출하려고 한다.”(2023년 3월 미국 18개 환경정책기관에서 미 연방정부에 보낸 공개 서한)

미국에서 청정 수소 세액공제 대상을 놓고 에너지 기업들 사이에서 논쟁이 뜨겁다. 유럽(EU)에서도 원전으로 생산한 수소를 친환경 수소로 인정할 것인가를 두고 회원국 간 의견이 분분하다.

논쟁의 본질은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떠오른 수소에서 발생할 이득을 차지하기 위한 패권 경쟁이다. 화석연료처럼 수소도 수입해야 하는 처지인 우리나라는 이런 논쟁을 예의주시하면서 그 결과를 정책 수립에 반영해야 한다.

미국 에너지부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올해부터 기업이 청정 수소 1kg을 생산할 경우 3달러의 세액공제를 제공한다. 문제는 청정 수소가 무엇인지 정의가 아직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흔히 연료로서 수소는 무지갯빛이며 서열이 있다고 한다. 가장 이상적인 수소는 녹색이다. 태양광, 풍력, 수력 등 이른바 전기를 만들고 그 전기로 물을 분해해 만든 것이 녹색수소다. 즉 생산과정에서 탄소를 뿜어내지 않아 친환경적이고 자원을 낭비 없이 끊임 없이 재생산이 가능하다. 하지만 생산 단가가 비싸다. 미국 녹색수소 생산단가는 약 5달러다.

다음은 청색수소다. 청색수소는 화석연료인 천연가스를 분해해서 만든다. 제작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잡아 따로 저장하기 때문에 화석연료보다는 친환경적이지만 녹색수소보다는 환경에 부담을 준다. 하지만 생산비가 미국 기준 1.5달러로 싸다. 만약 천연가스를 이용해 수소를 만들면서 이산화탄소를 방치하면 회색수소다.

회색수소 1kg을 생산할 때 이산화탄소 10kg이 나온다. 생산비가 아무리 싸도 환경에 치명적이라 미래 에너지원이라 이야기할 수가 없다. 다음 원자력을 이용하는 분홍(핑크)수소가 있다. 원자력은 발전할 때 이산화탄소를 내뱉지 않고 더 싼 가격에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문제는 원자력 발전 과정에서 폐기물이 나온다는 것이다. 일단 청색수소와 핑크수소를 청정수소로 인정할 것인가 논란이 있다.

만약 녹색수소 생산기업이 세액공제를 받고 청색수소 생산기업은 받지 못하면 가격 차이가가 확 줄어든다. 즉 세액공제 지급 대상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수소산업 투자나 개발에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된다. 문제는 청정 수소의 범주를 두고 에너지 기업간의 의견이 엇갈린다는 것이다. 수소를 만들려면 물을 전기 분해하는 수전해 방식을 이용한다. 이때 전기가 ‘탄소중립’인지가 관건이다.

태양광, 수력, 풍력을 사용해 만든 전기를 쓰면 이론의 여지 없이 탄소중립이다. 하지만 전기를 그렇게 딱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 전력망에선 태양광으로 만든 전기와 화석연료로 만든 전기가 섞인다.

많은 에너지 기업들은 현재 전력망에서 전기를 공급받고 재생에너지인증서(REC)를 구입해 녹색수소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대표적인 업체가 석유메이저 BP다. BP는 연간 기준으로 REC를 구매해 자신들의 사용한 전기가 ‘탄소중립’임을 입증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재생에너지 기업들과 환경단체들은 100% 재생에너지로만 수소를 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전력망 내에 화석연료로 만든 전기가 포함된 만큼 시간 단위로 재생에너지만 사용하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글로벌 1위 풍력 터빈 업체 베스타스가 대표적인 100% 재생에너지 사용을 주장하는 업체다. 하지만 시간 단위로 재생에너지 사용을 입증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청정 수소 생산을 늦추게 될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 논쟁은 ‘RE100’과 ‘CF100’ 논의의 연장선에 있다. 미국에서는 재생에너지만 사용해야 하는 RE100이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작을 경우 그 대안으로 원전이나 연료전지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CF100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유럽에서는 원전을 활용해 수소를 생산하는 핑크수소를 청정수소로 인정하느냐를 두고 프랑스와 독일이 신경전을 이어오고 있다.

원전에서 생산한 전력이 전체 발전량의 70%를 차지하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헝가리, 폴란드, 체코 등은 핑크수소를 청정 수소로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절반에 육박하는 독일은 “원자력으로 생산된 수소는 그린수소가 아니다”라고 맞섰다.

두 나라는 작년 7월 EU의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원전에 대한 투자를 택소노미에 포함할 것이냐를 두고 맞서기도 했다. 결과는 프랑스의 완승이다. 택소노미에 원전이 들어간 것이다. 지난달 30일 유럽연합(EU) 이사회는 밤샘 토론 끝에 원자력발전으로 만든 수소를 청정수소로 인정했다.

김진수 한양대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원전이 꼭 필요하다”면서 “원전으로 수소를 만들게 되면 저렴한 생산단가를 맞출 수 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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