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계 대부’가 창업 결심한 이유…”외산 의존, 이제 그만 듣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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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바이오분석표준센터 박상열 책임연구원(국제물질량자문회의 의장)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바이오분석표준센터 박상열 책임연구원(국제물질량자문회의 의장)/사진=류준영 기자

“외산 의존율이라는 말, 이제 그만 듣고 싶으니까요.”

‘물질량 표준계 대부’로 불리는 박상열(62) 박사(책임연구원, 국제물질량자문회의 의장)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하 표준연) 14대 원장 임기(2017년 1월~2020년 1월)를 마치고 곧바로 자신의 실험실로 복귀했다.

5년 간 공 들인 기술 개발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다. 해당 R&D(연구·개발) 과제명은 ‘초고감도 마이크로리터 자동 흡광분석시스템’이다.

이는 간단히 말해 수 마이크로리터(μL, =100만분의 1리터) 단위의 극미량의 시료를 사용해 초고감도로 흡광도(샘플을 투과하는 빛의 양)를 자동 측정하는 장비다.

검사결과에 민감한 혈액검사나 진단키트의 경우 매우 적은 양의 시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시료 품질이 최우선시된다. 이를 사전에 평가하는 기기라고 보면 된다.

현재 국내 바이오·제약업계에서 쓰이는 이런 장비 대부분이 외산인 실정이다.

박 박사 연구팀이 개발한 장비는 비슷한 장비들에 비해 수십배의 흡광 측정 감도를 가진다. 감도 부족으로 적용하지 못한 저농도 시료를 다루는 연구자들에게 환영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테면 현대의학에서 각광받고 있는 액체생검(혈액·체액 속 DNA(유전자)를 분석하는 것) 분야의 저농도 핵산(DNA, RNA)이나 단백질 시료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또다른 장점은 분석 과정을 ‘완전 자동화’한 것이다. 현재 해외 제조사 제품의 경우 사람이 일일이 스포이트와 같은 장비를 통해 시료를 넣는 작업을 해야 하는 과정이 있어 검사물량이 대량으로 들어오면 난처해진다.

박 박사 제품은 사람의 손을 일일이 거치지 않고서 다량의 시료를 자동 측정하도록 해 사용 편의성을 높였다. 이 때문에 수입축산물을 검역하는 기관과 법의학기관, 보건당국 등에 시료품질 사전점검 장비로 보급할 수 있을 전망이다.

초고감도 마이크로리터 자동 흡광분석시스템 테스트용 시제품/사진=류준영 기자

최근 표준연 홍석환 기술이전그룹장의 안내를 받아 그를 만났다. 바이오분석표준센터 1층 구석진 곳, 3평 남짓한 조그만 실험실에선 일정 시간 간격을 두고 ‘윙~’, ‘삐~’ 하는 소리가 번갈아 이어졌다.

박 박사는 “최종 테스트 중이다. 상용화는 백 번 중 한 번만 안 되어도 소비자들이 “이거 뭐야”하니까 테스트를 하고 또하고…상용화가 참 힘들다는 걸 또한번 절절하게 느낀다”며 너털웃음을 지어보였다.

박 박사 기술의 핵심은 ‘모세관 흡광셀’이다. 머리카락 한 올 두께(0.1㎜)와 같은 관(0.17~0.18mm)을 세계 최고 출력을 갖는 펨토초(1 펨토초=1000조분의 1초) 레이저로 길게 만들었다.

진공 유리관으로 시료를 쭉쭉 뽑아 올리는 방식을 접목, 수동 작업 과정을 없앴다는 설명이다. 박 박사는 “관이 너무 좁아서 굉장히 센 진공을 걸어줘야 하는데 테스트 제품에서 계속 나는 소리가 바로 이때 난다”고 말했다.

박 박사는 애초 민간기업에 기술을 이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바이오 업계에서 ‘이 기술을 고도화하면 다양한 극미량 시료의 품질을 테스트할 수 있는 막강한 플랫폼이 될 수 있겠다’고 평가하면서 급선회했다. 직접 연구장비 전문기업을 창업키로 한 것이다.

박 박사는 기술 이전보다 ‘연구자 창업’을 택한 이유에 대해 “모세관에 어떤 센서를 부착하는 가에 따라 더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다중 분석 장비를 국내외 처음으로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려면 엔지니어링 기술 등 관련 분야 전문가들을 한데 모을 연구장비 전문회사를 설립하는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연구현장에선 몇 억원 짜리 외산 R&D 장비를 구매하고도 서비스가 잘 안돼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최근 연구장비 산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일부 장비라도 우리가 선진국보다 더 잘 하는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성공모델을 꼭 만들어 보이고 싶다”고 강조했다.

박 박사는 1차 상용모델을 제작하기 위해 그래픽 기반 유저인터페이스(GUI, 사용자 환경)와 자체 분광분석 프로그램을 내년초까지 개발·탑재할 계획이다. 그는 “본격적인 창업은 내년 초반쯤으로 보고 열심히 연구하고 (창업)공부도 하고 있다”며 동행한 홍석환 그룹장에게 예비창업패키지 사업과 아이코어 지원사업의 차이점을 묻기도 했다. 아이코어는 ‘실험실 창업’의 가능성을 검증하고 관련 기술창업 교육을 지원하는 것이다.

2021년 기준, 전세계 분광 측정 시장규모는 2조72억 달러(약 2658조원)다. 이중 김 박사가 연구 중인 기기가 속한 마이크로 흡광분석기 분야 비중은 10% 정도를 차지한다. 홍 그룹장은 박 박사의 사업모델에 대해 “국내 시장의 경우 연간 수십억원 정도로 예상되나 글로벌 마켓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연간 1000대를 판매할 경우, 최소 연간 200~300억원 이상의 매출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또 “액체생검 분야에서 불편한 기존 형광측정을 대체하면서 임상진단 분야의 시장을 개척함과 동시에 기존 기술을 응용한 다양한 파생상품을 개발·상용화 할 수 있어 대략 1000억원 규모 이상의 매출을 획득할 가능성이 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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