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메뉴 바로가기 (상단) 본문 컨텐츠 바로가기

[인터뷰] 저스틴 민의 특별한 시작, ‘흐르는 여정’

시사위크 조회수  
배우 저스틴 민이 영화 ‘흐르는 여정’으로 국내 관객 앞에 선다. / 영화사 진진
배우 저스틴 민이 영화 ‘흐르는 여정’으로 국내 관객 앞에 선다. / 영화사 진진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한국계 미국인 배우 저스틴 민은 넷플릭스 시리즈 ‘엄브렐러 아카데미’로 얼굴을 알렸고, 코고나다 감독의 ‘애프터 양’에서 안드로이드 양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다양한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그가 이번에는 자신의 뿌리와 맞닿은 한국으로 무대를 옮겼다.

그 시작은 영화 ‘흐르는 여정’(감독 김진유)이다. 저스틴 민의 첫 한국 장편영화 주연작으로,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자신만의 여행을 준비하던 춘희(김혜옥 분)가 새로 이사 간 아파트에서 예상치 못한 인연들을 만나며 고요했던 일상에 새로운 선율이 흐르기 시작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극 중 저스틴 민은 어린 시절 독일로 입양된 뒤 지휘자가 돼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찾아 한국에 온 민준을 연기했다. 이웃으로 춘희를 만나 음악과 일상을 나누며 혈연을 넘어 새로운 가족이 돼가는 인물이다.

독일에서 자란 민준과 미국에서 자란 저스틴 민은 서로 다른 배경을 지녔지만, 한국을 익숙하면서도 낯선 곳으로 마주한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저스틴 민은 어린 시절 한국을 찾으며 느꼈던 감정을 떠올렸고, 그 경험은 민준을 이해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됐다. 여기에 한국어 연기부터 지휘까지 새로운 도전을 더하며 자신만의 민준을 완성했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저스틴 민은 ‘흐르는 여정’을 두고 “새롭고 특별한 경험을 많이 한 작품”이라고 돌아봤다. 

-첫 한국 장편영화 주연작이다. 소감은. 

“모두 처음은 잊지 못한다고 하잖나. 나에게도 그런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강릉처럼 정말 아름다운 도시에서 촬영한 것도 너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촬영을 가기 전 매일 아침 바닷가를 걷기도 했다. 특별한 경험이 정말 많았다. 처음으로 관객들을 직접 만나 무대인사도 해봤는데 너무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여러모로 새롭고 특별한 경험을 많이 한 작품이다.”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어땠나.

“사실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작품을 오랫동안 찾아왔다. 그전에도 여러 스크립트를 읽었지만 딱 마음에 와닿는 작품이 없었는데, ‘흐르는 여정’을 보고는 바로 감동을 받았다. 이야기와 캐릭터, 특히 민준이라는 인물에 굉장히 마음이 갔다. 민준은 독일에서 왔지만 나 역시 미국에서 왔고, 어렸을 때 한국에 와서 느꼈던 감정들이 있다. ‘민준도 이런 감정이었겠구나’ 하는 공감이 가서 캐릭터가 더 마음에 들었다.”

-민준은 밝고 다정한 인물이다. 실제 존재할 법한 인물로 만들어가기 위해 신경 쓴 지점이 있다면.

“어떤 사람들은 민준을 보면서 ‘저 사람은 너무 완벽해서 실수도 안 할 것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힘듦이나 고통이 있고, 그걸 이겨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영화를 본 분들이 ‘이런 사람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한다면 굉장히 가슴이 아플 것 같다. 어쩌면 그게 지금의 사회를 보여주는 면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인류의 선함을 굉장히 믿는 사람이다. 아무리 힘들고 고난이 있더라도 밝은 모습을 유지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조금 냉소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어서 누군가 친절하게 대해도 ‘저 사람은 왜 친절하지?’라고 먼저 의문을 갖는 것 같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아프다. 여전히 세상에는 그런 선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우리가 사회와 세상을 대하는 모습도 그런 방향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준으로 분해 호연을 펼친 저스틴 민. / 영화사 진진
민준으로 분해 호연을 펼친 저스틴 민. / 영화사 진진

-민준을 만들어가는 데 실제 본인의 모습이나 아이디어가 반영된 부분도 있나.

“막걸리는 항상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술 중 하나였다. 어렸을 때는 실제로 나만의 막걸리 사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좋아했다. 하지만 막걸리는 굉장히 큰 우연이었다. 나의 모습을 직접 가져와 민준을 나와 비슷하게 만들고 싶었던 건 아니다. 다만 민준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는 굉장히 깊이 관여했다. 의상이나 헤어스타일, 목걸이 같은 소품에도 의견을 내면서 민준을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 많은 아이디어를 나눴다. 특히 막걸리를 와인잔에 따라 빨대로 마시는 건 내가 낸 아이디어였다. 그런 디테일을 통해 민준이라는 캐릭터를 표현하고 싶었다. 내가 연기한 모든 캐릭터의 모습이 내 안 어딘가에는 존재하는 것 같다.”

-한국어로 연기하는 과정은 어땠나.

“훨씬 어렵다. 영어로 연기할 때는 단어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나의 의도나 진실, 상대 캐릭터와 내 캐릭터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어로 연기할 때는 일단 단어부터 집중해야 한다. 준비하는 데도 최소 10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어로 연기하면서 참 좋다고 느낀 점도 있다. 나의 또 다른 모습이 표현되는 것 같다. 언어에는 굉장히 마법 같은 부분이 있어서 다른 언어를 사용하면 나의 다른 모습이 나오는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민준을 보는데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영어로 연기할 때와 비교하면 한국어로 연기할 때 조금 더 따뜻하고 아이 같은 순수함도 느껴진다.”

-지휘자 역할은 어떻게 준비했나.

“가장 긴장했던 부분이었다. 가짜처럼 꾸며내기보다 진짜 지휘자처럼 느껴지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감독님에게 최대한 빨리 연습을 시작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음악이 완성돼야 제대로 연습할 수 있다고 해서 곡이 나온 뒤에는 매주 주말 실제 지휘자분을 만나 연습했다. 매니저가 강릉에서 서울까지 매주 운전해 줬고, 주말 내내 지휘를 배웠다. 지휘는 단순한 테크닉 그 이상인 것 같다. 음악을 통해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트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실제 촬영도 가장 긴장했던 장면 중 하나였다. 진짜 프로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라이브로 연주했고, 모두 나를 진짜 지휘자처럼 바라보며 지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섭기도 했다.(웃음) 그래도 연주자분들이 너무 친절했고 잘 따라주셔서 멋진 장면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내레이션도 인상적이었다. 어떤 감정으로 연기했나.

“말이 가진 의미와 감정을 느끼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영화를 보면서 녹음했기 때문이다. 춘희도 다시 보고 아름다운 강릉의 풍경도 다시 보면서 내레이션 작업을 했다. 촬영을 마치고 몇 달 뒤에 녹음했는데 영화를 보다 보니 촬영하면서 느꼈던 감정과 기억들이 다시 돌아오더라. 그래서 좋았다. 내레이션은 춘희가 쓴 편지이기 때문에 춘희의 이야기이지만, 그 이야기를 민준의 목소리로 들려주지 않나. 그래서 아름다운 두 영혼이 하나로 합쳐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따뜻한 시너지를 보여준 저스틴 민(왼쪽)과 김혜옥. / 영화사 진진
따뜻한 시너지를 보여준 저스틴 민(왼쪽)과 김혜옥. / 영화사 진진

-김혜옥과 호흡하며 춘희와 민준의 관계를 어떻게 느끼고 이해하게 됐나.

“무언가를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 느끼는 것과 느끼지 못하는 것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처음에는 춘희와 민준이 친해지고 엄마와 아들 같은 관계를 만들어가는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김혜옥 선생님과 함께 연기하면서 배우기도 하고, 선생님이 여러모로 챙겨주시기도 하면서 실제로도 깊은 연결이 생겼던 것 같다. 그러면서 한국의 정서인 ‘정’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정’은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쉽게 느끼기 어려운 감정인 것 같다. 특히 마지막 공연 장면을 촬영하면서 아주 깊은 슬픔과 가슴 아픔을 느꼈다.”

-‘정’을 정의한다면.

“‘정’의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건 한국어로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인 것 같다. 정의하기는 어렵고 그냥 느끼는 감정인 것 같다. 한국에서 사람들과 함께 지내고 일하다 보면 서로 가깝다는 느낌, 우리가 하나의 공동체이고 가족이라는 느낌이 든다. 서로 굉장히 많이 배려하기도 한다. 이런 감정은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것 같다.”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도 해봤을 것 같은데.

“현대 사회의 가족을 보면 이제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은 것 같다. 정해진 전형적인 가족의 형태는 없다고 생각한다. 30~50년 전만 해도 가족이라고 하면 부모와 두 아이가 있는 전형적인 모습을 떠올렸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한부모 가족도 있고 외동 자녀인 경우도 있고, 친구와 선택적으로 가족이 돼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캐릭터들을 알아가면서 현대의 가족 관계에 대해 배워가는 과정이 좋았다. 결국 가족은 꼭 혈연으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고, 가장 깊은 연결을 맺는 사람이라면 그게 결국 가족이 아닐까 생각한다.”

-과거 한국이 고향처럼 느껴지면서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실제 한국에서 생활하거나 사람들을 만나면서 두 감정을 동시에 느낀 순간이 있었나.

“더 어렸을 때나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당연히 그런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거리를 걷는 모습을 보면서 점점 더 편안함과 안전함을 느꼈다. 모국에 돌아오면 ‘내가 이곳과 연결돼 있구나’라는 감정을 누구나 더 깊게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다만 어렸을 때는 언어나 문화를 지금보다 잘 몰랐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지?’ 싶을 때도 있었다. 예를 들어 중학생 때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한 달 동안 한국에 머문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나이에 따른 선후배 관계를 전혀 몰랐다. 미국에서는 중고등학생이면 나이가 달라도 똑같이 친구이지 않나. 그런데 한국에서는 나이에 따라 형, 동생처럼 관계가 나뉘는 걸 보고 처음에는 굉장히 놀랐다.”

저스틴 민이 한국계 미국인 배우로서 겪는 고충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 영화사 진진
저스틴 민이 한국계 미국인 배우로서 겪는 고충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 영화사 진진

-한국에서 지내면서 문화적 차이를 느낀 지점도 있었나.

“미국에서 바이럴된 영상 중에 한국에서는 카페에 짐을 두고 자리를 비워도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었다. 미국 사람들이 그걸 보면서 정말 신기해하고 웃는데, 그 이유가 미국에서는 절대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웃음) 한국에서는 서로를 믿는 문화가 있어서 화장실에 갈 때도 그냥 물건을 두고 가지 않나. 나였다면 노트북이나 지갑을 절대 두고 가지 못할 것 같은데. 그런 모습도 서로를 믿는 아름다운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 하나 꼽자면 미국이 조금 더 개인주의적이라면 한국은 서로를 생각하는 공동체적인 마음이 더 큰 것 같다. 그리고 미국에는 원 플러스 원도 없다. 아이 러브 원 플러스 원.(웃음)”

-한국 콘텐츠의 달라진 위상을 체감하나. 이러한 변화가 한국계 미국인 배우로 활동하는 데 미친 영향도 궁금하다.

“당연히 체감한다. 비한국인, 비아시아계 미국인이나 외국인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나보다 한국 드라마나 한국 예능을 더 많이 알고 굉장히 좋아하더라. 그런 기대감과 열정을 볼 때마다 정말 기쁘다. 다만 배우로서의 영향은 조금 복잡한 문제다. 많은 분이 K팝이나 K드라마, K영화가 엄청난 인기를 얻었으니 아시아계나 한국계 배우들에게도 더 수월한 환경이 됐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한국 콘텐츠는 한국인과 한국 사회를 다루는 콘텐츠로 한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인기가 아시아계 미국인 배우들에게 곧바로 큰 이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아시아계 미국인 배우들은 우리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고 싶다고 요구하고, 그런 기회를 찾아왔다. 힘든 여정이었고 아직도 그 과정을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이 어떤 의미로 남았나. 관객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나.

“이 영화를 찍으면서 ‘슬로 다운’, 조금 더 천천히 살아가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됐다. 관객들도 이 영화를 보면서 조금 천천히 가고, 숨을 쉬고, 잠시 쉬어가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 요즘 세상은 너무 빠르게 돌아가다 보니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많이 놓치는 것 같다. 멋진 일몰을 바라보거나 바닷가를 걷고, 친구와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처럼 단순한 기쁨 말이다. 우리가 이 지구에서 보내는 짧은 시간 동안 조금은 속도를 늦추고, 이 영화를 보면서 함께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기사에 대해 공감해주세요!
+1
0
+1
0
+1
0
+1
0
+1
0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