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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웹툰 <유미와 세포들>을 연재 당시 재밌게 봤고, 로커스 스튜디오의 전작인 <레드슈즈>를 상당히 괜찮게 봤던 만큼,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혼합된 스타일이었던 드라마에 이어 100퍼센트 3D 애니메이션으로 극장판이 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상당히 기대했던 작품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본인은 드라마판을 보지는 않았지만 어째서 드라마 제작 당시 하이브리드 스타일을 채택했는지, 그리고 왜 처음부터 애니메이션으로 기획되지 않았는지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우선 가장 좋은 점은 드라마판에서도 호평을 받았다는 세포 파트였다.
원작의 그림체 뿐만 아니라 이동건 작가의 상상력이 담긴 다양한 연출들까지 완벽하게 3D 애니메이션으로 담아낸 데다가 화려한 성우진의 연기가 어우러져 “이보다 <유미의 세포들>을 더 잘 영상화할 수는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가 로커스만의 새로운 아이디어로 각색된 부분들도 기존의 세포 세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원작을 아는 입장에서도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레드슈즈>에서 배경이 휑하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인지, 이번 작품에서는 세포 세계와 현실 세계 둘 다 배경에 공을 들인 흔적이 보인 것 같아 좋았다. 세포 세계는 원작에서도 상당히 휑했던 만큼 또다시 <레드슈즈>의 문제점이 반복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세포 세계 내의 여러 시설들을 더 화려하고 다양하게 보여줌으로써 문제를 극복해냈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세포들의 소개가 일절 없이 영화가 진행된다는 점이었다.
제목부터가 유미의 “세포들”인 만큼 대략 스무 마리 조금 안되는 정도의 세포들이 등장하는데, 원작을 모르는 관객들에게는 얘가 누구인지 파악하는 데 조금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심 세포나 자존심 세포, 그리고 주연 격으로 등장하는 불안 세포 등 상당수의 세포들이 디자인과 설정이 직관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만큼 원작처럼 첫 등장 때 만이라도 이름을 표기해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던 <스콧 필그림, 날아오르다!>에서 스타일리시하면서도 본인을 비롯한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소개하는 연출이 있었기 때문에, 극장판에서도 이와 같이 원작의 감성을 가져가면서도 새로운 방식의 이름 소개 연출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고 생각하는 세포 파트와 달리, 현실 파트는 상당히 퀄리티가 아쉬웠다.
<레드슈즈>에서 보여준 로커스의 한국식 미남미녀 캐릭터 디자인은 이번 작품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하지만 뛰어난 디자인이 아까울 정도로 애니메이션과 모델링의 퀄리티가 썩 좋지 않았다.
인물들의 모션과 옷 모델링이 뻣뻣하게 느껴지는 장면들이 굉장히 많았고, 특히나 초반 유미의 헤어스타일이 얼굴 모델과 너무 안 어울려서 상당히 거슬리게 느껴졌다.
초창기 유미의 세포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거의 세포들처럼 데포르메되어 등장했던 만큼, 너무 현실적인 디자인보다는 약간의 데포르메를 가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현실 파트의 배경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한국적인 요소들을 극장 애니메이션에서 만나는 것도 반가웠고, 유미의 방을 비롯한 장소들의 디테일에 정성이 들어간 것이 느껴졌다. 특히나 제주도 장면에서 노을지는 바닷가의 모습이 굉장히 아름다웠던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배경은 배경일 뿐, 결국 시선이 집중되는 부분은 인물들이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 부분이었다.
스토리는 원작에서 3부? 4부? 정도의 위치이자 연재 당시 인기의 최고점을 찍었던 유바비 파트를 다룬다.
원작이 워낙 오랫동안 연재된 작품인 만큼 어느 부분을 어떻게 다룰까 걱정했는데, 90분의 러닝타임 안에서 납득이 될 만큼 스토리를 담아냈다는 부분은 칭찬할만 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만큼 유바비의 내면 묘사나 앞서 있었던 구웅과의 서사가 잘려나갔기 때문에, 앞서 말한 세포 이름 문제처럼 원작을 모른다면 약간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특히나 원작에서 동태눈깔로 불리는 유바비의 사랑이 식어가는 묘사가 많이 약해진 것이 아쉬웠다.
또 한 가지 문제점은 어른 독자들을 대상으로 했던 원작의 스토리를 거의 그대로 옮겨오는 바람에 영화의 타겟층이 미묘해졌다는 점이다.
자신을 아끼는 것에 대한 성숙한 메시지를 담은 영화지만 일부 장면과 대사들은 너무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고 애들 타겟이라고 하기에는 대놓고 카섹스를 암시하는 듯한 장면이 있는 데다가 주제가 남녀의 이별이라는 아동용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내용이기에 결국 이도저도 아닌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결론적으로 세포들 파트는 너무나도 좋았지만 극장용 애니메이션이라는 포맷에는 적합하지 않은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그 세포 파트만큼은 원작을 너무나도 완벽하게 애니메이션으로 옮겨냈기에, 다가오는 <전자오락수호대>의 애니메이션화도 조금 더 기대하게 되었다.
그리고 <레드슈즈> 때도 느낀건데 로커스 이새끼들은 진짜 미형 남캐를 존나 잘뽑는다. 디즈니나 드림웍스에서는 보기 힘든 스타일의 꽃미남 캐릭터들에 진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번 영화에서도 유바비가 굉장히 잘생기게 나왔다.
그래서 극장을 나오면서 내내 머릿속에 바비 생각밖에 안 남았고
<바비>를 결제해서 다시 봤다.
<바비> 2회차 리뷰
사실 바비의 트레일러를 보고 기대를 정말 많이 해서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결과물은 2023년 최강의 페미니즘 영화가 되었고, 국내에서는 개좆망했다.
그래서 당시에 꽤나 미루다가 결국 극장에서 보기는 했는데, 이 영화의 후기를 어디에다 함부로 적었다가는 남초든 여초든 어느 한 진영에서 무조건 린치를 당할 것이 분명해 공개적인 장소에는 딱히 후기를 적지 않았다.
욕쳐먹을거 각오하고 말하자면, 재밌게 봤었고, 재밌게 봤다.
그렇다고 좋은 영화였냐 묻는다면 그건 딱히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페미니즘을 비롯한 정치적 올바름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너무나도 많이 빼앗아갔다. 20년 딪빠로서 흑어공주 캐스팅이 뜨고 개봉하기까지 약 3년이라는 시간을 진짜 너희들 중 그 누구보다도 괴로움 속에서 살았다. 팬메이드 흑어 포스터가 인터넷에 나돌아다닐 때, 실제 결과물은 그보다 몇배는 개좆같을 것을 알기에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개인적으로 너무나도 사랑하는 뮤지컬 <위키드>는 대놓고 정치적 올바름을 지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프덴>이나 <식스>와 같은 페미니즘적인 메시지를 담은 뮤지컬을 좋아한다. 이렇게 본인은 모든 입장에 공감하다가도 모든 입장에 반대하는, 그런 애매모호한 사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잡소리가 길어지는데 대충 그냥 줏대없는 새끼니까 마냥 스윗보빨남페미련이라고 욕하지는 말아달라는 의미인데숭
바비는 내가 지금까지 본 영화들 중 <금발이 너무해>와 함께 가장 뚜렷한 페미니즘 영화다. 아니, <금발이 너무해>보다 한 다섯배는 노골적이다. 그렇기에 작년, 어쩌면 지금까지도 가장 논란거리인 영화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다시 보겠다고 마음 먹은 뒤에 든 생각인데, 2023년에 개봉하는 <바비>라는 영화가 페미니즘적인 메시지를 담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장난감을 소재로 하고, 주인공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정장을 입은 윌 페럴이 악역으로 등장하는 또다른 영화인 <레고 무비>를 보자.
<레고 무비>는 중반부까지 오리지널 스토리를 이어가다가, 후반부에 들어서야 현실 세계와의 연계에 대한 반전을 드러냄으로써 ‘모두가 특별하다’는 메시지와 더불어 ‘상상력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본인들의 장난감으로서의 철학을 되새긴다.
팬들이 제작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들을 그대로 사용한 부분은 훌륭한 팬서비스임과 동시에 현실에서도 자사의 제품에 동봉되는 설명서는 하나의 정해진 정답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듯 하다. 결국 본인들도 이 영화로 제품 뽑아먹으면서 영화의 메시지를 희석시키긴 했지만 어쨌든 굉장히 좋은 광고임과 동시에 좋은 영화가 아니겠는가.
<바비>에서도 이와 같이 바비 인형이 제작된 목적을 오프닝에서 설명한다.
아기 인형만 존재하던 과거에는 오직 엄마 역할만 하던 아이들이, 바비의 탄생으로 엄마 외의 수많은 여성이 되는 꿈을 가질 수 있었고, 현대에 들어서는 더 많은 소녀들이 상상력을 펼치도록 도와주기 위해 인종, 체형 등의 다양성을 중시하는 인형들이 제작되었다.
장난감 영화에서 장난감의 철학을 담는 것은 당연하니까, <바비>가 페미니즘과 인종, 체형 다양성을 중시하는 것도 어찌보면 예상 범주 내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왜 영화가 공개됐을 때 그렇게 논란이 되었을까?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비에 담긴 이 철학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 혹은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사샤의 입을 빌어 말하듯이,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페미니스트들인 젊은 여성층은 “전형적인 바비”를 페미니즘의 대척점이자 성 상품화의 상징으로 보며 비난했다.
지금의 바비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여자애들 장난감으로 고착화되었기에, <바비>를 보러간 관객들은 대부분 무난한 가족 영화를 기대하거나, 뭐가 되었든 이토록 색채가 짙은 페미니즘 영화를 예상하진 못했을 것이다.
영화가 공개된 이후 바비에 대한 페미니스트 진영의 여론이 크게 변화한 것을 봤을 때, 본인들의 철학을 전하기 위해서는 꽤나 성공적인 결과였다고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아무리 남녀 갈등의 최고조에 있는 2020년대라고 해도 이 영화를 두고 벌어진 싸움의 규모는 너무 크지 않았던가?
그 이유는, 과했기 때문이다.
이동진 평론가가 내린 한줄평처럼, 이 영화의 메시지는 영화 자체를 짐어삼킬 정도로 너무나도 과했고, 그래서 그만큼 과한 반응이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는 글로리아가 바비들을 각성시키기 위해 여성의 삶에 대해 연설을 하는 장면이다. 가장 직설적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만큼, 영화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전부 이 정도로 강하게 색채를 드러내지는 않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이 영화는 여성 인권을 중시하고 가부장제를 비판하며, 다시 보면서 느낀 바로는 대부분의 유머들도 남성 중심적인 사회를 꼬집는 유머들이었다.
지속적으로 성별이 반전된 현실세계 같다고 언급되는 “바비랜드”는 너무나도 아름답지만 너무나도 기괴하고, 뭐든지 할 수 있는 바비들에 비해 켄들은 너무나도 단순무식하며, 마텔의 고추밭 임원진들은 <사우스 파크>에서 튀어나온 것 마냥 제정신이 아니다.
두시간 내내 이런 내용을 계속해서 쏟아내니 페미니즘적인 요소에 큰 거부감이 없고 영화와 유머 코드가 잘 맞았던 나로서도 약간의 거북함이 느껴졌던 것 같다.
다만 한 가지만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자면 그레타 거윅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바비랜드”도, “켄덤”도 아니다. 만약 영화 초반의 바비랜드나 켄덤을 찬양하는 관객이 있다면 진심으로 잭저리나 보러 가라고 하고 싶다. 영화에서도 그렇게 언급하고.
현대의 페미니즘 운동, 특히나 대한민국의 페미니즘을 절대로 지지하지는 않지만, 남녀평등 사회는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이상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절대로 평등하지 않다. 그렇다고 바비들은 평생 바비로, 켄들은 평생 켄으로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영화 속 바비처럼, 우리 모두는 변화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인생은 끝없이 변화하고, 우리 자신도 스스로 변화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잘못된 방향으로의 변화는 다시 바로잡아가면서 문제투성이 세상을 조금씩 걸어나간다.
“현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도 엉망진창이지만, 그래서 재미있다.”
결말부의 바비들은 기존의 바비랜드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조금씩 켄들을 인정하면서 변화를 결심한다. 마치 실제로 남성들이 주도하던 사회에서 조금씩 여성들의 입지가 오늘날만큼 넓어진 것처럼.
거윅은 우리의 사회가 곧 켄덤과 같은 상태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애초에 여성 감독 제작의 여성 서사 영화가 초대박 흥행을 한 것부터 그 주장을 반박하고, 결말의 나레이션은 현실에서의 여성들은 어느 정도 입지를 넓히는데 성공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짚고 넘어가는 다른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켄이 개좆병신같이 그려진다는 점이다. 사실이다. 고슬링의 켄이건, 시무켄이건, 켄들은 병신이다.
하지만 영화 속 켄들이 바비들에게 지나치게 의존적이고 병신인 이유는 현실의 남성들이 병신이거나, 여성들이 남자들에게 의존적인 존재라는 주장에 대한 은유가 아니다.
앞서 말한 바비의 철학은 켄 따위를 위해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바비와” 켄이었지, 그냥 “켄”은 마텔 사에서 전혀 신경쓰지 않았으니까, 그 점을 반영한 영화 나름의 고증 같은 장치라고 생각한다.
거윅이 켄의 묘사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는 결국 각자의 판단에 달려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영화에서 켄과 바비는 각자 독립된 존재가 되면서 끝난다. 바비는 그동안 켄을 홀대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켄은 “그냥 켄”을 받아들이면서 화해한다.
“바비와 켄”에서, “바비”, 그리고 “켄”으로.
남자는 여자를 위해 존재하지 않고, 여자는 남자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남자는 그냥 남자고, 여자는 그냥 여자다. 남자들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여자들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이 영화를 두번 보고 나서 느낀 메시지는 이것이었다.
문제는, 그런 것 치고 영화에서 남성들을 상당히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켄이 아니라, 아까 말한 사우스 파크 출신 마텔 사 직원들, 아니 그냥 LA 남성들이 전부 병신으로 그려진다.
앞서 말한 <금발이 너무해>에서는 주인공 “엘” 주변의 다양한 남성과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중에는 좋은 남자도, 쓰레기같은 남자도 있고, 훌륭한 여성도, 미성숙했다가 성장하는 여성도 있었다.
이처럼 <금발이 너무해>는 여성이 자신의 색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지만, 어느 한 성별을 과하게 깎아내리거나 추양하지 않는다.
남자도 “엘”이 될 수 있고, 여자도 “캘러한 교수”가 될 수 있었다.
다시 <바비>를 보자. 바비와 켄은 제외하고 언급할 만한 등장인물들로는 글로리아와 사샤, 마텔 임직원들, 이름모를 인턴, 그리고 앨런 정도가 있겠다.
글로리아와 사샤 모녀는 바비를 갖고 노는 소녀들, 즉 관객을 상징한다. 영화 내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의 시발점이자 해결책이 되는 포지션을 갖는데, 그만큼 중요하기에 비중도 인간들 중에서는 가장 많고, 평범한 사람임과 동시에 영웅으로 그려진다.
반면 앞서 말했듯이 마텔 직원들은 켄들보다도 무식하고 기괴하게 묘사된다. 집게사장마냥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깨어있는 행세를 하는 사장, 그에 무조건 복종하는 로봇들 같은 임원들, “힘 없는 남자니까 여자나 다름없는” 인턴 그이름이뭐더라두번봐도기억이안남 아무튼 걔까지, 마텔의 남성들은 하나같이 하자가 심하게 있다.
마텔 본사 자체가 바비랜드를 인지하고 있고 바비의 어머니 루스가 살고 있는 등 현실과 판타지 그 어딘가에 위치하는 듯한 설정이라 그런가 싶기도 한데, 진짜 마텔이 이걸 어떻게 그냥 봐줬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쩌면 진짜 병신들 집합소인 걸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남성 등장인물 중 그나마 긍정적이었던 인물은 켄의 친구로 기획된 인형 앨런이라 생각한다.
바비랜드가 가부장제에 오염됐을 때도 혼자 위화감을 느끼며, 켄들을 상대로 무쌍을 찍기도 하고, 마지막 바비랜드 탈환 작전에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돕는다.
켄들처럼, 어쩌면 켄보다도 무시당하던 인물이 유일하게 가부장제에 세뇌되지 않고 가부장제를 타파하는 데 가담한다는 점이 돋보이긴 하지만, 사실상 무의미했던 공사판 무쌍 이후로는 비중도 줄고 딱히 앨런의 활약하는 순간은 없어서 아쉬웠다.
그 인턴 놈이든 앨런이든, 남성 캐릭터가 주는 임팩트의 비중을 조금만 늘렸더라면 이 영화가 남성혐오 영화라는 오해가 줄어들지 않았을까.
여기서 더이상 페미니즘 얘기를 했다가는 손가락 모양이 이상해질 것만 같으니 슬슬 마무리짓자면, 바비는 페미니즘 영화가 맞다. 그렇다고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다는 래디컬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충분히 그렇게 오해할만한 소지가 있고, 메시지의 비중이 너무 커져 그 부분에만 집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주제가이자 실질적 엔딩곡인 “What Was I Made For?”는 여성 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모든 인류에게 바치는 노래이고, 엔딩이 없던 바비는 인간이 되기를 선택하며 엔딩을 맞는다. 평론에서 종종 휴머니즘적인 메시지를 다룬다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작중에서 페미니즘은 바비랜드를 이끌어나가던 원동력으로, 가부장제는 켄이 바비에게 복수하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한다. 그렇기에 스토리의 중심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건 이해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피곤한 것도 사실이다.
메시지를 줄이자기에는 스토리와 너무 긴밀하게 엮여있는 상태인 만큼, 거윅이 어느 한 쪽으로 편향된 영화가 되지 않도록 조금만 더 신경썼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제 민감한 주제는 치워버리고, 내가 정말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을 야기하고 싶다.
바비랜드의 디자인은 너무나도 환상적이었다. 앞서 말한 <유미의 세포들 더 무비>가 세포들을 완벽하게 스크린으로 담아낸 것처럼, 바비의 세트 디자인과 의상은 정말 흠잡을 데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작년 아카데미에서 <가여운 것들>이 아니었다면 미술 분야를 휩쓸었을 것이고, 모두가 그 부분만은 인정했을 것 같다.
원본 장난감의 특징을 이용한 유머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텅 비어있어 막상 바비는 보지 못하는 거울, 하이힐 모양으로 고정된 발, 프린팅되어 걸어다닐 수 있는 수영장, 험하게 다루어져 망가진 “이상한 바비”… 말하자면 정말 너무나도 많은 깨알같은 포인트들이 있었다.
이러한 부분은 대부분 바비랜드를 처음 떠나기 전 처음 30분에 몰빵되어 있긴 하지만, 후반에 좌절하고 주저앉는 바비가 다리를 굽히지 못한다거나 켄이 던지는 옷들이 짠 하고 이름을 보여준 뒤 다시 날아가는 등, 바비랜드에 있는 동안에는 조금씩 나타난다.
<레고 무비>에서 실제 레고 캐릭터들과 모델들이 배경에 등장한 것처럼, 많은 엑스트라들이 실존하는 장난감을 모티브로 한 점도 좋았다. 이 부분은 바비의 역사를 꿰고 있지 않더라도 크레딧에서 친절히 하나하나 소개해 주기 때문에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포인트였다. 많이들 영화에 실망하는 바람에 서둘러 극장을 나와버려서 문제지.
음악도 좋았다. 오스카 주제가상에 노미네이트된 두 곡 말고도, 나레이션과 함께 제 4의 벽을 넘는 유머가 담겨있는 오프닝곡 “Pink”,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파티 장면을 장식하는 “Dance The Night”, 그리고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엔딩 크레딧의 “Barbie Girl” 샘플링까지 바비다우면서도 각자의 매력을 뽐내는 노래들이 많았다.
근데 딱 하나, “I’m Just Ken”씬은 별로였다. 상당히 기괴한 영화 내에서도 그 정신나감이 극치를 달리는 씬인데, 다소 뜬금없이 시작하고 뜬금없이 진행되더니 춤을 추고 깨달음을 얻으며 끝난다. 오히려 뮤지컬적인 요소는 오프닝과 바비가 죽음을 생각한 직후에 리프라이즈되는 부분에서 더 잘 연출된 느낌이었다.
마릴린 먼로의 “Diamonds are a Girl’s Best Friend”, 그리고 그 장면을 오마주한 마돈나의 “Material Girl”뮤비, 그리고 두 노래를 매시업한 영화 <물랑루즈>의 한 씬을 너무나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마도 처음으로 해당 장면을 남자 가수가 연출했던 아카데미 축하무대가 더 마음에 들었다.
이 연출은 중간 댄스브레이크 때 이상한 검정옷 대신 넣어도 좋았을 것 같은데 왜 그렇게 만든건지는 정말 의문이다. 거윅은 뮤지컬 영화 손대지 말았으면 좋겠다.
언급한 부분 외의 전반적인 유머들도 내 코드에는 잘 맞았다. 물론 국내의 정서와는 조금 거리가 있기는 한 듯 하지만.
그 유명한 가부장제=잭스나컷 파트를 비롯한 위트있는 대사들, 나레이션의 제 4의 벽 드립, 오프닝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오마주 등 미국식 유머 코드만 잘 맞으면 웃음 포인트가 꽤 있을 것이다. 민감한 주제인 페미니즘 관련 유머가 그만큼 많다는 게 문제지.
스토리는 예상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현실세계는 점만 찍고 돌아와 바비랜드에서 진행돼서 처음에는 조금 실망했는데, 두번째 보고 나서는 오히려 색다른 것 같기도 하고 기괴하지만 독특한 전개라 나름 괜찮게 나껴졌다. 현실로 넘어간 판타지 인물 스토리 묘사는 <마법에 걸린 사랑>이 정점을 찍었으니까 굳이 다른 영화를 바랄 것도 없을 것 같았고.
하지만 역시나 문제는, 앞서 말한 것처럼 그 스토리가 페미니즘과 긴밀하게 엮여 있다는 점이다. 젠더 이슈로 끽하면 싸워대는 요즘 시대에 이 주제가 계속 언급되면 누구라도 마냥 편하지는 않지 않을까?
이 정도면 대충 생각나는 건 전부 끄적인 것 같다.
<바비>를 추천하거나 찬양하는 글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싶다. 너무나도 극단적이고 기괴하고 위험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완성도 면에서도 작품상 후보에 들어간 게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부족한 부분이 많다. 아마 점수를 굳이 매긴다면 6/10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 이해한다. 나 또한 많은 부분에서 실망하고 거부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만큼 좋은 부분도 많았던 영화였다. 보고 싶은 대로만 본다고 할 수도 있지만, 영화의 나머지 절반은 관객이 만드는 거니까, 나는 내가 좋았던 부분은 좋게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싫어하는 영화를 대상으로 너무 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이 영화를 무지성으로 찬양하는 바천지들이 눈꼴시렵긴 하지만, 그러면 본인의 취향에 맞는 좋은 영화를 더욱 사랑하는 게 가장 이로운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는 본인도 종종 남들의 평가이 휘둘리지만, 바비는 바비, 켄은 켄, 그리고 나는 나니까. 나의 판단으로 세상을 평가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본인을 까내린 영화를 쿨하게 상영회까지 여는 멋진 모습을 보여준 잭 스나이더 갓동님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숭배합니다, G.O.A.T.
농담이고, 대충 두서없이 휘갈긴 존나 긴 글 읽어줘서 고맙다. 이만큼이나 썼는데도 시간에 쫓기느라 미처 못 한 말이 있는 것만 같아 약간의 아쉬움이 조금 남네
내 의견에 대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는 건 언제나 좋으니까 욕하려면 얼마든지 욕해도 된다. 줏대없는 새끼인 건 맞으니까 뭐
참고로 본인은 잭스나컷 안봤음
출처: 상업영화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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