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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대 최고의 원클럽맨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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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한국 축구 역사에서 한 팀을 위해 오랜 시간을 보낸 원클럽맨들로 베스트 11을 구성해봤습니다.

원클럽맨을 선정하는 기준은 생각보다 까다롭습니다.

단순히 한 구단에서 오래 활약한 것을 넘어 선수 경력에서 다른 구단을 거치지 않았다는 것을 기본적인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다만 한국 축구의 특성상 병역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군경팀이나 하부리그 팀에 소속된 경우에는 이를 별도로 기록하되 원클럽 경력이 이어진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또한 과거에는 대학 졸업 후 실업이나 프로 무대에 입문하는 경우가 많아 선수 생활 자체가 지금보다 짧았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10년 이상’이라는 숫자 등으로 자르기보다는 당시의 시대적 환경도 함께 고려했습니다.

선수로서의 기량과 업적도 중요하지만 이번 선정에서는 무엇보다 한 구단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활약했고, 그 구단을 얼마나 상징하는 선수였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은퇴 후에도 코치나 감독으로 같은 구단과 인연을 이어간 경우에는 원클럽맨으로서의 상징성을 더욱 높게 평가했습니다.

최전방 공격수 – 이태호

이태호는 1983년부터 1992년까지 대우 로얄즈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한국 프로축구 출범 원년부터 활약한 선수이면서 당대 한국을 대표했던 공격수 가운데 한 명이라는 점에서 이번 팀의 최전방을 맡기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한 구단에서만 오래 뛴 선수를 넘어 선수 개인의 위상까지 상당히 높은 원클럽맨이라는 점이 큰 선정 이유입니다.

왼쪽 윙 – 고요한

고요한은 2004년부터 2023년까지 FC 서울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무려 20년에 걸쳐 서울과 함께했고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던 뛰어난 유틸리티 플레이어였습니다. 본래 오른쪽과 중앙에서 더욱 익숙한 선수지만 이번 팀에서는 선수 구성상 왼쪽 공격수로 배치했습니다.

무엇보다 고요한은 선수 생활을 마친 뒤에도 서울의 U-18 팀인 오산고등학교 축구부 코치로 부임하며 구단과의 동행을 이어갔습니다.

또한 현역 시절 오랫동안 사용했던 13번이 FC 서울 구단 역사상 최초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는 점에서 이번 팀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원클럽맨 가운데 한 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른쪽 윙 – 최상국

최상국은 1983년부터 1991년까지 포항 스틸러스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기간만 보면 9시즌이지만 당시에는 대학을 졸업한 뒤 선수 생활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시대적 환경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다른 구단은 물론 군경팀을 거치지도 않은 명백한 원클럽 플레이어이며, 선수로서도 당대 한국 축구를 대표했던 뛰어난 공격 자원이었습니다.

이번 팀에서는 오른쪽 공격수로 배치했습니다.

왼쪽 중앙 미드필더 – 김승희

김승희는 1990년부터 2000년까지 대전 코레일의 전신인 한국철도에서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김승희가 특별한 이유는 선수 경력만이 아닙니다.

선수 생활뿐 아니라 이후 코치와 감독 생활까지 오직 한국철도에서 이어간 인물입니다.

한 구단에서 선수 생활을 마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지도자로서의 삶까지 같은 팀에서 이어갔다는 점에서 이번 주제인 ‘원클럽맨’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른쪽 중앙 미드필더 – 서보원

서보원은 1990년부터 2001년까지 경주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은퇴 이후에도 구단과의 인연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코치와 수석코치를 거쳐 감독까지 역임하며 선수 이후의 축구 인생 역시 같은 구단에서 이어갔습니다.

김승희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원클럽 플레이어를 넘어 구단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온 진정한 의미의 클럽맨이라는 점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 황지수

황지수는 2004년부터 2017년까지 포항 스틸러스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포항의 중원을 오랫동안 지킨 선수이자 주장으로도 활약하며 구단을 대표했던 선수 가운데 한 명입니다.

그리고 황지수 역시 은퇴와 함께 포항과의 관계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은퇴 직후인 2018년부터 포항의 지도자로 부임했고 이후에도 계속 구단과 동행했습니다.

선수로서의 활약과 구단에 대한 헌신, 은퇴 이후까지 이어진 인연을 모두 고려하면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원클럽맨 가운데 한 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왼쪽 풀백 – 김영삼

김영삼은 2005년부터 2016년까지 울산 현대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좌우 측면 수비를 모두 소화할 수 있었던 선수로 오랜 시간 울산의 수비진을 지켰습니다.

이번 팀에서는 왼쪽 풀백으로 배치했습니다.

왼쪽 센터백 – 공문배

공문배는 1987년부터 1998년까지 포항 스틸러스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12시즌 동안 한 구단을 지킨 선수로, 포항이 한국 축구의 명문 구단으로 자리 잡아가던 시기를 함께했던 원클럽맨입니다.

이번 팀에서는 최진철과 함께 중앙 수비진을 구성했습니다.

오른쪽 센터백 – 최진철

최진철은 1996년부터 2007년까지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이번 명단에 포함된 선수 가운데 선수 개인의 위상까지 고려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선수 중 한 명입니다.

전북의 레전드일 뿐 아니라 국가대표팀에서도 오랫동안 활약했고, 특히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으로 한국 축구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습니다.

이 정도의 국가대표 경력을 가진 선수가 프로에서는 한 구단만을 위해 뛰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합니다.

오른쪽 풀백 – 박경훈

박경훈은 1984년부터 1992년까지 포항 스틸러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이후 영국 유학 기간에 세미프로 수준의 예딩 FC에서 축구를 하기도 했지만 공식적인 프로 경력은 포항뿐이라는 점을 고려했습니다.

9시즌이라는 기간 역시 당시 한국 선수들이 대학 졸업 후 실업 및 프로 무대에 진출하던 시대적 상황을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선수로서의 위상이 상당히 높습니다.

당대 한국을 대표했던 측면 수비수였고 국가대표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는 점에서 오른쪽 풀백으로 선택했습니다.

최철순 역시 이 자리에서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강력한 후보였습니다.

골키퍼 – 김풍주

김풍주는 1983년부터 1996년까지 대우 로얄즈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한국 프로축구가 출범한 1983년부터 무려 14시즌 동안 한 구단의 골문을 지켰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가치가 상당합니다.

김대환, 박배종, 김태홍, 정기동 등 오랫동안 한 팀의 골문을 지킨 훌륭한 원클럽 골키퍼들이 있었지만, 활동 기간과 선수로서의 위상, 프로축구 원년부터 함께했다는 역사성까지 종합해 김풍주를 선택했습니다.

아쉽게 제외된 원클럽맨들

이번 명단을 만들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후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생각보다 훌륭한 원클럽맨이 너무 많았다는 점입니다.

최철순은 2006년부터 2025년까지 전북 현대에서 활약했고 군 복무를 위한 상주 상무 시절을 제외하면 사실상 20년에 걸친 전북 원클럽맨입니다. 기간과 구단에 대한 헌신만 놓고 보면 선발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오른쪽 풀백에서 박경훈의 선수로서의 위상을 고려해 아쉽게 제외했습니다.

김진우는 1996년부터 2007년까지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만 활약한 수비형 미드필더로, 수원의 창단과 전성기를 함께한 선수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박종진은 2003년 대구 FC의 창단 시즌부터 2014년까지 함께했습니다. 광주 상무에서 군 복무를 했던 기간을 제외하면 대구 한 팀에서만 선수 생활을 이어간 창단 원년의 원클럽맨입니다.

이정효는 1998년부터 2008년까지 부산 아이파크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으며, 현재는 지도자로서의 이미지가 훨씬 익숙하지만 선수 시절에는 부산의 원클럽 플레이어였습니다.

김대환은 1998년부터 2012년까지 수원 삼성 블루윙즈 한 팀에서만 골문을 지킨 장기 원클럽맨이며, 박배종 역시 2012년부터 2024년까지 수원 FC와 함께했습니다. 박배종은 군 복무를 위해 아산 무궁화에서 뛰었던 기간을 제외하면 수원 FC에서만 선수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김태홍은 2013년부터 2024년까지 경주 한국수력원자력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고, 은퇴 후에는 구단 U-12 골키퍼 코치로 부임해 인연을 이어갔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합니다.

정기동은 1981년부터 1991년까지 포항에서 활약하며 실업축구 시대부터 프로축구 시대까지 한 구단을 지킨 골키퍼였습니다.

김학범 역시 선수 시절에는 1980년부터 1992년까지 국민은행 축구단 한 팀에서만 활약한 장기 원클럽맨이었습니다.

김철수는 1975년부터 1986년까지 포항과 함께했으며 1976년부터 1979년까지의 상무 복무 기간을 제외하면 포항 한 팀에서만 선수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포항에서는 특히 많은 원클럽맨이 배출되었습니다.

박태하는 1991년부터 2001년까지, 이영상은 1990년부터 1999년까지, 유동관은 1986년부터 1995년까지 포항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노태경은 1991년부터 2000년까지 포항에서 활약한 뒤 2001년 성남 일화로 이적했지만 공식경기에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한 채 부상으로 은퇴했습니다. 따라서 ‘공식경기에서 실제로 어느 구단을 대표했는가’라는 기준에서는 실질적인 원클럽 플레이어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

남기영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이길용은 1983년부터 1989년까지 포항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두 선수 모두 활동 기간 자체는 길지 않지만 당시에는 대학 졸업 후 입단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시대적 환경을 감안했고, 다른 구단이나 군경팀조차 거치지 않은 명백한 원클럽 플레이어라는 점에서 후보에 포함했습니다.

부산의 전신인 대우 로얄즈에서도 여러 원클럽맨이 있었습니다.

조덕제는 1988년부터 1995년까지 대우에서만 뛰었고, 유대순은 1989년부터 1994년까지 한 팀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정광석 역시 1993년부터 1998년까지 대우에서만 뛰었습니다. 이들 역시 선수 생활 기간은 후대의 장기 원클럽맨들보다 짧지만 시대적 환경과 다른 팀을 전혀 거치지 않았다는 점을 함께 고려했습니다.

울산에서는 송주석이 1990년부터 1999년까지 울산 한 팀에서만 활약하며 김영삼과 함께 구단의 원클럽맨 계보를 이루었습니다.

최명성은 2006년부터 2018년까지 창원시청 축구단에서만 뛰며 13시즌을 한 팀에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김현태는 1984년부터 1991년까지 럭키금성 황소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프로 경력은 8시즌이지만 구단 창단 초기부터 함께했다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원클럽 플레이어입니다.

이렇게 살펴보면 한국 축구의 원클럽맨 역사는 K리그의 유명 선수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프로축구가 출범하기 전의 실업축구부터 대우 로얄즈와 포항제철 같은 초기 프로 구단, 그리고 현대 K리그와 내셔널리그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한 팀을 위해 자신의 선수 생활을 보낸 선수들이 존재했습니다.

특히 이번 명단의 고요한, 황지수, 김승희, 서보원처럼 은퇴 이후에도 지도자로서 같은 구단과 동행한 선수들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원클럽맨은 단순히 이적하지 않은 선수가 아닙니다.

한 팀의 좋은 시절과 어려운 시절을 모두 함께하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 선수의 이름만으로도 자연스럽게 하나의 구단이 떠오르는 선수.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한국 축구가 기억해야 할 진짜 ‘클럽맨’들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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