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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T야?” MBTI, 정말 과학일까…정신과 전문의의 대답은?

성격유형검사 ‘MBTI'(마이어-브릭스 유형 지표, The 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관심이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 칼 융의 심리 유형론을 근거로 마이어스와 브릭스 모녀(母女)가 개발한 이 검사 도구는 일반적인 ‘테스트’를 넘어 최근 채용 과정에서도 쓰일 만큼 활용 영역을 넓히고 있다. 최근에는 분석적인 사람을 지칭하는 “너 T야?”라는 밈(Meme·온라인 유행물)도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인기를 끈다.

현대인이 이처럼 MBTI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MBTI를 포함해 현대인의 정신건강에 관한 궁금증을 망라한 ‘나는 왜 자꾸 내 탓을 할까’를 출간한 허규형 연세가산숲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명확히 알고 싶어 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며 “MBTI를 한 번도 안 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잘 없는 것이 그 방증”이라고 운을 뗐다.

유튜브·팟캐스트 ‘뇌부자들’을 운영하며 대중과 오랜 시간 소통해 온 그는 이어 “불확실하고 통제되지 않는 상황이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불편하지만 우리나라는 그 정도가 크다”며 “불확실함을 두고 보지 못하는 이른바 ‘빨리빨리’ 문화와 내 성격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적합한 성격인지 알고 싶은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문화도 MBTI 열풍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MBTI는 실제 성격을 확인하는 데 얼마나 유용한가.
▶현재 본인의 상태를 확인하는 데에는 일정 부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MBTI는 반복적으로 시행해도 동일한 결과가 나오기 어렵다. 재현율이 낮은 검사라 타고난 기질을 파악한다기보다 현재의 성격을 보는 데 더 특화된 것으로 평가된다. MBTI 유형으로 어떤 사람을 온전히 설명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OOOO(MBTI는 ISFJ, ENTP 등 총 16가지 심리 유형으로 구성된다) 유형이라서 당신이 그렇게 느끼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을 0000유형이라고 할 뿐이다.

-실제 외향형(E)인데 소심하거나 내향형(I)인데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
▶MBTI의 첫 번째 지표인 외향형(E)과 내향형(I)은 ‘심리적 에너지와 관심의 방향’을 뜻한다. E는 밖을, I는 안을 향한다. 즉, 외향형과 내향형은 사회성의 차이가 아니다. 활발한 E라고 해서 항상 주도적으로 관계를 이끌지 않고 내성적인 I라고 외부 모임을 무조건 피하는 것도 아니다. E도 가끔은 모임에 나가기 싫을 때가 있고 I도 어떤 활동에는 호기심과 관심이 크게 생길 수 있다. 수줍음이 많은 사람을 내향형인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칭찬이나 인정, 위로나 공감, 유대관계 등이 보상이 되어 에너지를 얻는 것이 크고 의식의 방향이 외부로 향해 있다면 외향형일 수 있다. MBTI 유형은 남에게 보이는 것이 아닌 본인이 느끼는 에너지의 방향에 따라 결정되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최근 “너 T야?”라는 밈이 유행이다. T와 F의 차이는 유독 두드러지는 것 같은데.
▶E와 I의 차이가 수줍음을 느끼는 정도, 대인관계의 욕구에 대한 차이가 아닌 것처럼 T와 F도 공감 능력의 차이로 구분 짓는 것이 아니다. 받아들인 정보를 어떻게 해석하고 판단하는지에 따라 유형이 나뉘게 된다. T는 옳고, 그름에 중점을 두고 결과 위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고 F는 좋고, 싫음에 중점을 두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공감 능력이 작동해 “상대방이 힘들겠구나”라고 인지했다 하더라도 T인 사람은 상황 해결을 위해 솔루션을 제시하거나 자신이 판단한 결과를 말해준다. 상대방에게 했던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실망하거나 화가 나는데 F인 사람들은 감정적인 공감, 위로를 기대했던 만큼 그 표현이 돌아오지 않을 때 짜증이나 화가 올라온다. T가 공감의 표현 없이 “이렇게 해 봐”라는 식으로 말하면 마치 F의 선택이나 행동이 잘못됐다는 것처럼 들려 속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T는 상대방을 위해 하고 싶은 말을 하더라도 공감의 표현이나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인정을 먼저 하고 교정할 부분을 이야기하는 연습을 하면 좋겠다. F는 내가 하는 것처럼 상대방이 공감, 위로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내려놓는 것이 필요하겠다.

 '나는 왜 자꾸 내 탓을 할까' 책 표지.
‘나는 왜 자꾸 내 탓을 할까’ 책 표지.

-우울증, 공황장애 등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도 갈수록 커진다. 이유가 뭘까.
▶개인적으로 처음 책을 집필하게 된 이유는 우리나라가 유독 정신건강의학적 증상에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루하루 바쁜 현대사회 속에서 불안이나 우울장애, 번아웃 등과 같은 정신질환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현상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마음의 병을 앓는 이들에게 의지나 노력으로 이겨내야 한다고 말하는 경향이 강한 편이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전문의료진으로서 이러한 편견이나 인식을 조금이나마 개선하고 싶었다. 지난해 밀리의 서재에서 총 20회에 걸쳐 이런 내용을 담은 ‘오늘부터 새로운 마음과 시선’을 연재했는데, 큰 사랑을 받아 이번에 ‘나는 왜 자꾸 내 탓을 할까’라는 단행본까지 내게 됐다. 누구나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그러니 괜찮다는 위로를 전달하고 싶다.

-자신을 잘 아는 게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될까.
▶정신건강을 지키려면 내가 어떤 상황에서 왜 힘들어지는지를 알아야 한다.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정신건강을 지키려는 것은 몸이 아플 때 아픈 부위를 계속 쓰면서 주사나 약으로만 해결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문제의 원인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어떤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같은 상황도 훨씬 덜 힘들게 느껴질 수 있다. 최근 ‘묻지 마 범죄’ 등 사회 전반적으로 끔찍한 사건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는데 극심한 부정적인 감정은 때론 격한 행동의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람의 감정은 아무리 평안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해도 뜻대로 잘 안된다. 더군다나 한국 사회는 ‘경쟁’과 ‘결과’가 뚜렷해야 하는 분위기라 압박감에 시달려 우울증과 공황장애 등 다양한 정신질환을 앓을 위험이 큰 편이라 생각한다. 이유도 없이 우울하거나 평소 아무렇지도 않았던 상황들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누구나 있다. 그래서 자신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살피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추천하는 방법이 있나.
▶나를 아는데 가장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일기 쓰기’다. 감정 일기가 특히 도움이 될 수 있다. 오늘 하루 중 있었던 사건, 사건을 받아들였던 내 생각과 감정을 적어보면 내가 왜 힘들었는지, 왜 좋았는지를 알 수 있다. “아, 상대방이 내 메시지에 답을 하지 않은 것을 ‘나를 무시했다.’고 생각해서 화가 났구나”처럼 자신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되면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느끼게 돼 궁극적으로 정신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많은 현대인이 바쁘고 귀찮다는 이유로 스스로 어떤 감정 상태에 있는지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이해하는 훈련은 꼭 필요하다. 과거에 겪은 경험 자체를 바꿀 순 없지만, 경험을 평가하고 받아들이는 생각은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긍정적인 주문을 거는 노력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프로필[허규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연세대 의과대학 졸업,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대한청소년정신의학회 평생회원, 팟캐스트 뇌부자들 및 유튜브 뇌부자들 운영, ‘오늘부터 새로운 마음과 시선’ 저자. 현 연세가산숲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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