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 2077’ 본편 제작비만 3억1600만달러(4213억5440만원), 확장판 ‘팬텀 리버티’는 8500만달러(1133억3900만원)가 쓰였어요. AI로 그 비용을 아낄 수 있는 겁니다.”
성준식 크래프톤 딥러닝본부 딥러닝응용실장은 인공지능(AI)을 게임 제작에 적용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사이버펑크 2077은 폴란드 게임사 ‘CD 프로젝트(CD PROJEKT)’가 2020년 제작한 역할수행게임(RPG)으로, 500여명이 넘는 개발자와 최신 그래픽 기술을 투입해 제작비가 급등했다.
크래프톤은 치솟는 게임 개발비용을 잡기 위해 AI 개발과 적용에 가장 적극적인 회사 중 하나다. 최근 ‘AI 전략팀’을 새로 만들어 AI를 적재적소에 투입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AI 전략팀 소속 성준식 실장과 김도균 매니저를 만나 크래프톤의 AI 전략을 들어봤다.
AI 사업 지탱하는 두 기둥
크래프톤에는 AI 사업을 이끄는 두 축이 있다. 하나는 2021년 설립된 딥러닝본부다. 김창한 크래프톤 대표는 딥러닝본부가 세워지던 무렵 직접 AI의 핵심인 딥러닝(컴퓨터가 사람처럼 생각하고 학습하는 기술)을 공부할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
그의 목표는 버추얼 프렌드였다. 버추얼 프렌드는 딥러닝을 바탕으로 이용자와 소통할 뿐만 아니라 게임을 이해하면서 플레이하는 AI를 뜻한다. 기존 NPC(이용자가 다룰 수 없는 캐릭터)와 달리 이용자와 AI가 동료처럼 상호작용할 수 있다.
또 다른 축은 AI 전략팀이다. AI 전략팀은 지난 2일 처음 생겼다. 딥러닝본부가 AI 기술을 연구한다면 전략팀은 이를 어떻게 구현하고 어디에 적용할지 판단하는 곳이다. 크래프톤의 AI 기술이 다른 기술에 비해 어떤 장점이 있는지 파악하고 이를 통해 사업화하는 것이 임무다.
김 매니저는 “AI 전략팀이 현재 가장 집중하고 있는 일은 기존 딥러닝본부의 기술, 외부 솔루션 등을 정리하는 것”이라며 “이후 게임을 개발하는 크래프톤 산하 스튜디오를 지원하기 위해 직접 직원들을 만날 예정”이라고 말했다.
크래프톤은 딥러닝본부의 핵심 목표인 버추얼 프렌드의 완성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성 실장은 “버추얼 프렌드에 필요한 특정 기술들은 준비됐으며, 두뇌 역할을 맡는 부분에는 강화학습 기술을 적용할 수 있다”며 “버추얼 프렌드는 가까운 시일 내 준비되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말했다. 크래프톤은 올해 중 버추얼 프렌드를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인조이·배그 등 줄줄이 적용 예정
올해는 딥러닝본부가 연구 개발한 기술이 실질적인 결실로 이어지는 해다. 크래프톤은 올해 상반기 중 모바일 게임 ‘디펜스더비’에 AI 기술을 접목할 계획이다. 글자를 음성으로 전환하는 TTS 기술, 이용자와 캐릭터의 대화를 오랜 시간 기억하는 챗봇 등이 적용된다.
성 실장은 AI 적용의 ‘1번 타자’로 디펜스더비를 꼽은 이유로 디펜스더비 제작 스튜디오 ‘라이징윙스’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그는 “디펜스더비는 다른 게임 이용자, 혹은 대결봇(이미 짜여진 전략대로 게임을 이용하도록 프로그래밍된 캐릭터)과 게임하도록 짜여졌다”며 “대결봇 수준이 특정 등급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고 오히려 떨어지는 현상을 발견했는데, 이를 강화학습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부에서 현재 차기작 ‘인조이’, 배틀그라운드 등의 작품 외에도 다른 게임의 AI 적용 여부를 얘기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인조이는 올해 하반기 중 먼저해보기(얼리엑세스)로 출시 예정인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국제학술대회도 인정…”효율과 재미 동시에”
성 실장과 김 매니저는 입을 모아 크래프톤의 AI 기술에 자신있다고 말했다. 크래프톤의 기술력은 논문으로도 인정받았다.
지난해 12월 크래프톤의 5개 논문이 세계 최대 규모 AI 학술대회 ‘뉴립스(NeurlPS) 2023’ 메인 트랙 부문에 채택됐다. 뉴립스는 AI, 기계학습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가진 학회로 분류되는데, 게임 업계만 보면 크래프톤의 메인 트랙 채택 논문수는 텐센트, 소니에 이은 3위였다.
성 실장은 “메인 트랙 부문 논문 채택률은 26%로 매우 낮은 편”이라며 “‘크래프톡’을 올해 뉴립스에서 크게 발표할 논문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크래프톡은 TTS 기술 중 하나로, 짧게 제시된 대사만 있어도 그 발화자의 억양, 발음 등을 분석해 다음 대사를 음성으로 만드는 기술이다.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기술을 사업화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김 매니저는 “내부적으로 TTS 기술은 좋다고 평가하고 있다”며 “시장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괜찮겠다’는 판단이 서면 사업화를 안 할 이유는 없다”고 했다.
두 사람은 AI를 통해 게임 제작 효율과 재미를 잡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가령 캐릭터 하나의 밑그림 제작부터 3차원(3D) 모델로 전환하는데 걸리는 기간은 평균 3주인데, AI를 통해 7일로 줄여 효율성을 3배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김 매니저는 “버추얼 프렌드든 ‘엔드리스 플레이(특정한 엔딩이 없는 게임 방식)’든 자신에게만 맞춰졌고 자신만 경험할 수 있는 부분을 만들고 싶다”며 “게임 제작 효율화는 물론 이용자가 누릴 수 있는 독특한 플레이를 추구하고 있다”고 했다.
성 실장은 “게임은 재미를 추구하는 시뮬레이션”이라며 “게임에 AI를 적용해 장점을 살리면 결과적으로 AI 산업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