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의 CMO(위탁생산) 사업을 둘러싼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의약품 생산을 위탁하는 글로벌 제약사가 늘고 있는 데다, 미국 의회가 중국계 의약품 CMO 기업을 견제하는 법안을 의결하는 등 신규 고객을 확보하는 데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론자가 미국공장 인수한 까닭은
18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CDMO(위탁개발생산) 기업인 론자는 최근 다국적 제약사 로슈로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주 소재의 33만리터 규모의 바이오의약품 생산 공장을 12억달러(1조65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올해 하반기 내로 인수를 마치고 한화 약 7500억원을 추가 투입해 공장을 증설할 계획이다.
론자가 로슈의 공장을 인수한 이유는 늘어나는 바이오의약품 CMO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글로벌 제약사는 자체적으로 공장을 짓고 제품을 생산하는 것보다 비용 등의 측면에서 이점이 큰 위탁생산으로 생산 전략을 틀고 있으며, 최근 이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는 추세다.
론자에 생산시설을 매각한 로슈에 앞서 지난 2022년 다국적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는 미국 오하이오주에 있는 바이오의약품 공장을 현지기업인 레질리언스에 매각했다. 같은 해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는 미국 뉴욕주 소재의 시러큐스 공장을 롯데바이오로직스에 처분했다.
론자가 미국 공장을 사들인 데는 미국계 CDMO사인 카탈란트가 덴마크계 제약사인 노보노디스크에 매각된 영향도 큰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월 노보노디스크는 비만약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 등의 생산을 늘리기 위해 카탈란트를 인수했다. 카탈란트의 생산시설이 노보노디스크에게 우선 배치되면서 생산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기존 고객들이 새 파트너를 찾아 시장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미 상원이 바이오안보법을 통과하면서 국가 안보위협 대상으로 직접 거론된 중국계 CDMO사인 우시바이오로직스와 계약을 맺고 있거나, 추진하려던 고객이 새 둥지를 찾아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바이오안보법은 미 연방자금을 지원받은 의료서비스 기관이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중국계 바이오기업과 거래하는 것을 제한하는 법안이다.
우시바이오로직스는 CDO(위탁개발) 사업에 특화된 사업 모델을 갖고 있지만 최근에는 CMO 사업으로 빠르게 발을 넓히면서 경쟁사를 위협하고 있다.
우시바이오로직스는 지난 2022년 미국 뉴저지주에 첫 번째 북미 바이오의약품 제조시설을 선보인 후 지난 1월 미국 메사추세츠주에 짓고 있는 바이오의약품 공장의 생산 용량을 기존 계획보다 50% 늘리는 전략을 발표했다. 미국 내 바이오의약품 생산 공장을 증설하더라도 바이오안보법에 막혀 CMO 거래가 성사될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한 발 빠른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론자보다 선제적으로 바이오의약품 생산시설 확대에 나서 CMO 수요를 맞이할 채비를 마쳤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바이오의약품 생산능력은 현재 총 60만4000리터로 글로벌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부터 인천 송도에 착공한 5공장이 내년 4월 완공되면 생산능력은 78만4000리터로 더 늘어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여기에 약 7조5000억원을 추가로 투자해 2032년까지 72만리터 규모의 생산공장 3개를 더 짓는다는 계획이다.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에 세일즈오피스(영업사무소)를 여는 등 현지 고객과 접점도 늘리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샌프란시스코, 보스턴에 이어 지난해 미국 뉴저지주에 3번째 현지 영업사무소를 개소했다.
미국 현지 바이오의약품 생산시설을 직접 인수하고 이 규모를 점진적으로 키우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로슈의 미국 바이오의약품 생산공장 인수거래에도 참여를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0년 1150억달러(160조8390억원)이던 글로벌 CDMO 시장은 연평균 6.8% 성장해 2030년 2235억달러(312조58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우시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시작한 프로젝트 중 미국 고객사 비중이 55%에 달해 바이오안보법으로 인한 타격이 클 것”이라며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생산시설 부족 리스크를 마주한 빅파마를 주요 고객사로 확보해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