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은 민간이 하는데, 자재는 ‘관급’ 쓰라니…”
정부가 중소기업 판로 지원을 명분으로 관급자재(공용자재 직접구매) 사용 의무화 범위를 민간참여 공공주택 사업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건설업계에선 ‘민간참여’ 의미가 희석될 우려가 있다며 품질 저하와 공사기간 지연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는 ‘중소기업제품 공공구매제도 운영요령’ 고시 개정을 통해 레미콘, 창호 등 관급자재 의무사용 대상을 민참사업 등 공동시행 공사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기존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설계시공을 모두 주도하는 공공분양 아파트에만 관급자재를 의무적으로 사용해 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민간 브랜드와 기술력이 투입되는 사업군까지 적용 범위를 넓히려는 취지로 풀이된다.
전문가 및 현장 관계자들은 민참사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규제라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하자 책임 소지, 품질 제어, 공정 관리 등 여러 측면에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먼저 하자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민참사업은 단순 도급공사와 달리 민간 건설사가 직접 지분을 투자하고 미분양 위험과 시공 하자를 전부 책임지는 구조다.
그러나 민간 건설사 자재 선택권이 박탈된 상태에서 하자가 발생할 경우 책임 소재를 가려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토교통부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 등 전례를 보더라도 자재 제조사와 시공사 간 공방으로 이어져 입주민만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품질 측면에서도 민참사업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고 업계는 주장한다. 건설사는 브랜드 고유 설계와 세부 시공 스펙에 맞춰 검증된 자재를 사용한다. 반면 최저가 입찰이나 조달청 매칭 방식으로 공급되는 관급자재 사용 시 이를 충족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민참사업은 주택시장에서 선호도가 높은 대형 건설사 브랜드를 공공주택에 도입해 주거 품질을 높이려는 취지로 도입됐다”며 “관급자재가 강제 도입될 경우 민간 주택에 요구되는 미관이나 고유 기능적 스펙을 맞추기 어려워 공공주택 품질 하향 평준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관급자재 조달 시 수반되는 행정 절차도 공정 관리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건설현장 관계자는 “아파트 시공 뼈대를 이루는 레미콘과 철근은 기후 변화, 수급 상황, 현장 여건에 따라 실시간으로 물량을 통제해야 하는 대표적인 ‘타이밍’ 자재”라며 “민간 사급자재의 경우 시공사가 대형 유통사나 제조사와 직접 계약을 통해 현장 진도에 맞춰 유연하게 물량을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반면 관급자재는 조달청을 거치는 복잡한 행정 절차와 배정 방식을 따르기 때문에 적시성이 크게 떨어진다”며 “만약 조달청 배정 과정에서 공급이 며칠만 지연되더라도 골조공사 전체가 멈춰 공기 지연으로 인한 천문학적인 금융비용 발생과 입주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한건설협회 등도 민참사업이 공공 100% 발주 사업이 아닌 ‘공동시행’ 구조인 만큼 판로지원법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업계 전문가는 “건설사들이 내부 리스크 심사 단계에서 민참사업 참여를 원천 배제하거나 기피하는 현상이 심화할 것”이라며 “이는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 주도 주택 공급 속도를 늦추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