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장, ‘거수기’ 지적한 금융지주 사외이사…내부 평가는 ‘최우수’
연말 금융지주 CEO 인선을 비롯해, 잇단 금융권 해킹사태로 금융지주 사외이사의 역할과 책임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KB금융이 현직 회장 대신 새 인물을 차기 회장 후보로 선정하면서 이사회의 독립적 판단이 주목받았지만, 금융감독원은 은행지주 이사회의 거수기 논란을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경영진을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반면, 이들을 평가하고 책임을 묻는 체계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KB금융의 회장 교체 사례는 이사회가 현직 회장의 연임보다 새로운 인물을 선택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사외이사는 회장 선임뿐 아니라 자신들의 후보 추천과 평가, 재선임에도 관여한다. 경영진을 견제하기 위해 강화한 이사회의 권한을 누가 어떻게 견제할 것인지가 새로운 지배구조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KB금융지주 사례 하나 만으로 사외이사 독립성을 판단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히려 대부분의 금융지주에서 사외이사 거수기 논란이 더 크게 일었고 이찬진 금융감독원장도 최근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간 사외이사가 안건에 대해 반대표결한 경우가 매우 드물다”며 “중대 사안에 대해서도 이사회 차원의 충분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 지난해 8대 은행지주의 의결안건 총 993건 가운데 수정가결은 9건, 보류는 1건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원안 가결됐다. 이찬진 원장은 이사회 의장들에게 사외이사의 전문성과 책임의식을 강조했다.
회장도 바꾼 ‘독립성’…커지는 사외이사 권한
K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된다. 현재 7명의 사외이사가 회장 후보군을 관리하고 최종 후보를 선정·추천한다. 양 회장 취임 후 선임된 사외이사가 과반인 4명에 달하는 상황임에도 이들은 연임이 아닌 교체를 선택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결정이 금융당국이 문제로 지적해온 이른바 ‘참호 구축’과는 다르다고 평가한다. 현직 회장이 사외이사 선임에 영향력을 행사해 우호적인 이사회를 구성하고, 이사회가 다시 회장의 연임을 지원하는 구조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다.
다만 사외이사의 권한이 커지는 것과 관련해 이에 대한 평가나 견제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는 또 다른 과제다. KB금융 지배구조 내부규범상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역시 사외이사로만 구성된다. 사외이사가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고 활동도 평가한다. 이 평가 결과는 다시 재선임 판단에 활용된다.
사외이사 셀프추천 셀프평가 도마
4대 금융지주의 사외이사 평가체계를 보면 본인평가를 비롯해 동료 사외이사 평가 비중이 상당하다. 우리금융의 경우 2024년까지 자기평가 20%, 동료 사외이사 평가 80%로 ‘사외이사들’만으로 평가를 진행해왔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말 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하면서 올해 초 평가방식을 개선했다. 본인 20%는 그대로 유지하되, 동료평가는 40%로 줄이고 지원부서평가(10%)와 외부평가(30%)를 추가해 평가 주체를 넓혔다.
신한금융은 30%에 달했던 자기평가 비중을 2024년 삭제했으나, 대신 동료평가를 기존 60%에서 90%로 늘렸다. 10%는 내부 경영진이 평가한다. KB금융은 경영진과 동료사외이사 평가를 합쳐 종합평가 방식으로 사외이사를 평가한다. 다만 평가 비중은 공개하지 않았다.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평가하는 과정에서도 평가 대상과 가까운 내부 구성원이 상당한 평가 권한을 갖는 구조인 셈이다. 특히 평가 결과가 재선임에 활용된다는 점에서 평가의 객관성과 실효성 확보가 중요하다. 이에 당국이 사외이사의 외부평가를 권고하고 있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외부평가 10년 넘게 논의만
금융위원회는 2014년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통해 사외이사에 대해 매년 내부평가와 함께 2년에 한번 외부기관 평가를 권고했다. 평가가 형식적인 절차에 그치지 않도록 정량평가와 정성평가를 병행하고 자기·동료·이사회·경영진 등 다양한 평가주체 활용도 제시했다.
2018년에는 사외이사 연임 시 외부평가를 의무화하는 방안까지 내놨지만 법안에 반영되지 못했다. 현재 외부평가는 금융회사 자율에 맡겨졌다.
4대금융 가운데 현재 사외이사 평가를 전면적인 외부평가 방식으로 운영하는 곳은 하나금융 단 한 곳이다. 2024년부터 대신경제연구소를 통해 사외이사 평가 전반을 맡기고 있다. 우리금융도 외부평가를 도입했지만 평가 비중은 30%다.
KB금융과 신한금융은 외부 평가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 다만 KB금융은 외부 전문기관에 평가기준을 점검받고 기준 변경에 반영한다. 신한금융은 외부평가와 평가기준 자문 규정은 갖추고 있지만 둘다 하지 않고 평가 프로세스만 외부에 위탁하고 있다. 평가지 발송이나 점수 산출, 보고서 작성 등이다.
평가는 ‘최우수’, ‘우수’…’반대표’는 사실상 전무
KB금융은 2025년 사외이사 평가에서 계열평가 결과 7명 전원 ‘매우 우수’라고 밝혔다. 평가체계 개선을 통해 변별력을 높이겠다고 했지만 서술식으로 공개된 종합결과로는 사외이사 간 평가 차이를 확인하기 어렵다.
다른 곳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신한금융도 전체 평가에서 전원 ‘우수’하다고 평가했고, 하나금융은 대부분 최고 수준이며, 일부는 우수에 해당하는 기대수준 이상이라고 평가했다. 우리금융도 전반적으로 ‘우수’하다는 평가다.
외부평가를 받는 하나금융은 문항별 점수를 100분위 형태로 환산해 90점 이상은 최고수준, 80점 이상은 기대수준 이상으로 평가하지만 구체적인 개별 점수는 공개하지는 않는다. 평가체계를 계량화 해도 결과는 대부분 서술식으로만 공개하고 있다.
전문성 판단 여부도 여전히 과제다. 사외이사 제도는 사내이사 만으로 구성된 이사회가 지배주주 독단에 좌우되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도입됐다. 경영에 대한 감시활동 수행을 위해 사내이사보다 엄격한 도덕·윤리적 자격 요건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오랜기간 경영진 요구에 ‘거수기’ 역할을 해왔다는 오명을 벗지 못했다. 이사회의 모든 안건에 사실상 ‘찬성’ 일변도로 표를 행사하고 있다.
전문성·실효성 갖춘 평가 과제
금융권 관계자들은 평가주체가 내부냐 외부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외부기관을 통한 평가가 곧 객관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KB금융은 외부평가를 하지 않는 이유로 “사외이사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평가할 공식력 있는 외부평가기관이 없다”고 밝혔다. 또한 내부 자료의 유출 가능성 등도 문제로 지적했다.
외부평가 시 실제 이사회 활동 참관이 어려운 만큼 제대로 된 평가가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외부 평가기관이 이사화에 참관할 수도 없는데 어떻게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질 수 있겠느냐”며 “내부 상황을 잘 알고 이사회에 참석하는 사람이 평가를 하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 사외이사 외부평가를 진행하는 서치펌 관계자는 “(이사회 참석 등이 불가한 만큼) 재선임 절차에서 그동안의 이사회 활동이나 평판조회 등을 통해 평가한 내용을 바탕으로 재선임 보고서를 작성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제대로된 평가가 이뤄지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출석이나 교육이수, 공개되는 이사회 발언은 당부 정도의 제언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비대해지는 사외이사 평가와 견제를 위해선 경영진 견제와 이사회 의사결정에 대한 기여, 그에 따른 책임까지 평가에 담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금융권의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