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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앞에 아군에서 적수된 통신사 vs 제조사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빠른 시장 침투에 통신사와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협력관계에 금이 가고 있다. 클라우드 연결없이 휴대폰이 직접 AI를 활용하는 ‘온디바이스 AI’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경쟁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ICT 기업들은 그간 AI 생태계 구축을 위해 원팀을 만들거나 얼라이언스를 짜는 등 합종연횡에 한창이었다. 산업 전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AI 특성상 특정 업종이나 기업이 독자적으로 생태계를 만드는 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이들은 AI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정면승부에 돌입하게 됐다. 

‘에이닷’ 성과에 업계 들썩

최근 통신업계에서는 SK텔레콤의 AI 개인비서 앱 ‘에이닷(A.)’이 화제다. 지난달 정식 출시 이후 단숨에 애플 앱스토어 다운로드 수 1위를 찍은데 이어 구글 플레이스토어 라이프스타일 분야에서도 현재까지 톱3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화제성은 단연 아이폰 통화녹음에서 나온다. 애플이 보안규정에 따라 단말기 상에서 음성 신호를 녹음하지 못하게 막아둔 탓에 그간 아이폰에서는 통화내용 녹음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SK텔레콤 가입자인 아이폰 유저가 에이닷을 설치하면 손쉽게 통화를 녹음할 수 있다.

원리는 발신자의 음성을 인터넷 전화처럼 데이터 신호로 변경하고 이를 다시 음성 신호로 바꿔 단말기에 저장하는 방식이다. 통화내용을 요약해주고 말풍선 순서로 대화 내용을 재생해주기도 한다. 대화 시 언급한 일정을 캘린더에 등록하는 것도 가능하다. 말 그대로 ‘개인비서’다. SK텔레콤은 여기에 통화내용을 곧바로 통역하는 ‘통역콜’ 서비스도 탑재할 계획이다. 

에이닷이 인기를 끌자 LG유플러스도 최근 아이폰 통화녹음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KT 또한 관련 기술 개발 여부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에이닷이 월간 활성이용자(MAU)나 가입자 수 증가로 성과가 가시화되면서 경쟁사들도 비슷한 서비스를 검토할 수밖에 없게 됐다”며 “이런 흐름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산업군 막론’ 실시간 통역 등 AI로 맞붙어

통신사의 이 같은 자체 AI 기술은 당장 스마트폰 제조사들과의 정면승부를 부르고 있다. 앞서 이달 삼성전자는 내년 1월 출시를 앞둔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 S24’ 시리즈에 생성형 AI 모델인 ‘삼성 가우스’를 탑재해 실시간 통역 통화 기능을 제공한다고 예고했다. 

SK텔레콤이 에이닷이란 앱을 통해서만 통역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삼성전자는 외부 앱 없이 휴대폰 내 AI가 실시간으로 상대방의 언어를 통역해 전달한다는 설명이다. 온디바이스 AI이기 때문에 서버나 클라우드를 거쳐야 하는 통신사 서비스보다 속도가 빨라진다. 공교롭게도 양사의 서비스 출시 시점이 연말~내년 초로 비슷해 자존심을 건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해외에서도 경쟁은 필연이 되고 있다. 구글은 자체 개발 스마트폰인 픽셀8에 온디바이스 AI칩 ‘텐서G3’를 장착해 지난달 출시했다. 픽셀8에는 구글의 생성형 AI인 바드와 AI 비서인 구글 어시스턴트를 결합한 ‘어시스턴트 위드 바드’가 탑재됐다. 바드는 음성 뿐만 아니라 텍스트와 이미지로도 대화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다시 휴대폰 내 다른 앱과 연계돼 이용자의 스케줄 관리부터 복잡한 업무까지 처리하도록 돕는다. 

모토로라도 스마트폰용 AI 비서인 ‘모토 AI’를 지난달 공개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2000년대 중후반 나타난 운영체제(OS) 선점 경쟁이 재연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당시 자체 앱스토어를 론칭했지만 ‘애플 생태계’에 밀려 결국 구글 안드로이드와 손을 잡았다. 최근 생성형 AI 서비스 또한 통신사, 휴대폰 제조사 등 누가 시장을 선점하느냐에 따라 사업주도권이 달라질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군을 막론하고 AI 시장에 뛰어들면서 사실상 산업 간 경계가 무의미해지고 있다”며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이용자들 입장에서는 그만큼 질좋은 서비스를 고를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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