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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차이나타운 초한지 벽화거리

인천 차이나타운에는 2곳의 벽화거리가 매우 유명합니다.

그 하나는 삼국지 벽화거리이고 다른 하나는 초한지 벽화거리로 차이나타운과 인천 자유공원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 선린문(善隣門)이 있습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든 차이나타운이라고 하면 중심 도로에 세워놓은 문을 만나게 되는데 이러한 문을 패루(牌樓)라고 부릅니다. 패루(牌樓)라 함은 인천 차이나타운의 상징물로만 이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면에는 행운, 축복, 경축 등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긍정적인 의미의 상징물’이라 표현하는 것이 매주 적절할 것입니다.

차이나타운

인천광역시 중구 차이나타운로26번길 12-17

초한지벽화거리

인천광역시 중구 자유공원서로 10

인천 중화가(中華街)라고 적혀 있는 말을 영어로 말하면 인천 차이나타운.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고 이듬해 청나라 조계지가 설치되면서 중국인들이 현 선린동 일대에 이민, 정착하면서 형성된 곳을 말하며 중국인들 즉 화교는 소매 잡화 및 다양한 점포를 열고 주택을 지으며 본격적으로 상권을 넓혔고 산둥성 지역에서 소금과 곡물을 수입 판매하며 193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던 곳이다.

지금은 인천을 대표하는 관광지가 되어 많은 분들이 이곳을 방문하고 있으며 내국인에 국한하지 않고 상당수의 외국인들이 자유여행 또는 단체 패키지여행으로 방문하는 곳이 되었다.

조용한 인천 차이나타운을 보고 싶다면 09시 이전에 방문하면 된다. 현재 이 글에서 소개하고 있는 사진들처럼 조용한 풍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인들의 풍습도 우리네와 유사한 점이 많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우리의 역사는 중국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며 부분적으로는 우리의 독자적 문화가 중국인들에게 전파되어 자리 잡기도 했다. 물론, 중국인들은 절대 그렇지 않고 자신들 것이라 말하겠지만.

금색 현판에 붉은색 한자로 선린문(善隣門)이라 적혀 있다. 여기에서 선린(善隣)이란 한자 그대로 착할 선(善), 이웃 린(鄰)으로 선한 이웃 또는 착한 이웃이라 말할 수도 있겠고, 이웃이나 이웃나라와 사이좋게 지내는 관계를 말하거나 사이좋은 이웃 또는 사이좋은 이웃나라를 의미한다.

그래서 뉴스를 듣다 보면 종종 ‘선린외교’라는 단어를 듣게 되고 이는 이웃나라와의 관계를 좋게 유지하기 위한 다각도의 활동을 말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자연재해를 입은 나라에 가서 구호활동을 한다던가 아프리카 지역 등에 가서 의료활동하는 것 등이다.

초한연의(楚漢演義)라고도 부르는 초한지(楚漢志)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중국의 역사 소설이다.

초한지에 관해 명나라 때 종산거사 견위가 쓴 서한연의가 원본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현재까지 원저자와 저작물의 진위 여부가 불분명하다.

인천 차이나타운 초한지 거리는 월미바다역, 인천역, 의선당, 자유공원, 삼국지벽화거리, 송월동 동화마을 등과 연결되어 있으며 대부분 500m 이내의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다. 조금 더 걸어도 좋다면 일본풍거리, 한국근대문학관, 인천개항 박물관,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인천근대 박물관, 짜장면 박물관, 누들플랫폼, 신포패션문화의거리, 신포국제시장 등을 다녀올 수도 있다.

초한지에 등장하는 중요 인물 중에서도 핵심 인물은 바로 항우와 유방이다.

초한지 벽화거리의 내용을 읽으며 걷다 보면 지금껏 잊고 있었던 또는 몰랐던 내용을 새삼 알게 되는 즐거움이 있다.

영웅호걸이 등장하기까지는 어떤 이유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난세가 도래해야 영웅이 등장할 이유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소설 초한지에서 표현된 시대적 배경은 진나라의 제32대 군주이자 제2대 황제와 당시의 관료이자 환관이었던 조고가 자행한 악정, 학정, 폭정으로 곳곳에서 군사를 일으키게 되는데 그중에는 유방, 항량 등의 주연과 조연이 있었다.

항량은 당시 명장으로 이름난 장한과의 전투에서 전사하게 되는데 항량의 뒤를 이어 조카인 항우가 등장하게 된다.

항우는 역발산기개세의 영웅으로 알려지고 그 용맹함 앞에 모든 이들이 무릎꿇게 되는데 우리가 아는 대로 최종 승리자는 유방이 된다.

유방이 천하를 얻고 한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었던 것은 한초삼걸(漢初三傑)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초삼걸은 익히 많이 들어왔던 한신, 소하, 장량 3명을 말하는데 당시 한신은 항우 아래 말단 관리로 있었으나 자신의 책략이 항우로부터 쓰이지 않자 항우를 떠나 떠돌다가 하후영의 눈에 띄어 유방에게 천거된 후 한나라의 승상으로 있던 소하와 자주 대화했고 소하로부터 재능을 인정받기에 이른다.

세세히 기억할 필요는 없지만 마치 만화책을 보듯 삽화와 함께 읽어 내려가면 지루함이 덜하다.

우리는 초한지를 읽으며 처세술을 말하고 굽힐 때 굽히는 방법 용맹을 떨궈야 할 때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 등을 배우고 익혔지만 실제 삶이 그러한 깨달음에 따르지 못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하기에 인천 차이나타운 초한지 벽화거리에서 다시 한번 상기하고 내일을 바라보기도 한다.

보통의 벽화거리라 하면 골목길 돌아돌아 가는 꽤 길고 미로 같은 길을 상상할 수 있을 텐데 이곳 인천 차이나타운 초한지 벽화거리는 세분화된 길 없이 간결하기만 하다.

한초삼걸인 한신, 소하, 장량의 말년은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흔히 말하는 토사구팽을 당하게 되는데, 한신은 모반 죄로 사형을 당하고 소하는 유방에게 의심을 사 옥사하게 된다.

하지만 장량은 비록 끝까지 명예와 권력을 행사하진 못했지만 한신과 소하처럼 죽임을 당하진 않는다.

장량은 권력, 명예, 부를 놓고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며 무사안녕을 보장받게 된다. 사람들은 장량의 미래를 내다보는 눈과 결단력을 칭송하며 장자방이라 부른다.

보통 유명 관광지에 가면 보게 되는 사진관.

바로 이곳 인천 차이나타운 초한지 벽화거리에도 흑백사진관이라 하는 공간이 보인다.

초한지 벽화거리는 삼국지 벽화거리와 연결되며 바로 이곳이 그 접점이다.

많은 분들이 인천여행을 할 때 인천 차이나타운, 송월동 동화 거리 등에만 집중하는 모습이지만 때론 살짝 외곽을 돌아보는 것도 좋은 여행이 될 거라 생각된다.

인천 차이나타운 초한지 벽화거리 영상 1분 1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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