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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인사하던 날, 광릉숲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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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우정에서 띄우는 편지 (66)

조연환 제25대 산림청장의 20년째 귀촌 이야기

깊어지는 가을 날, 광릉숲을 찾았다. 마침 월요일이어서 탐방객이 없는 광릉숲은 고요했다. 가을 햇살이 숲 바닥 깊숙이 들어와 차곡차곡 쌓이는 낙엽을 쓰다듬는다. 탐방객이 없는 광릉숲에 오늘은 자기가 주인이라는 듯 바람이 제멋대로 나부끼며 나뭇잎을 떨어뜨리기도 하고 나뭇가지를 간질이며 춤을 추기도 한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짙푸르다. 청설모나 다람쥐는 아직 출근 전인가 보다.

수목원橋 앞에 서 있는 갈참나무가 곱게 물들었다. ‘참 곱다. 갈참나무단풍이 이리 고왔었나…’ 갈참나무에게 다가가 인사를 한다. ‘광릉숲을 보러 왔어요. 아주 멋지셔요. 참 잘 생기셨어요.’ 갈참나무가 노오란 잎을 흔들어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입장료 대신 칭찬을 해 주고 광릉숲에 들었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수목원교 왼쪽에 서 있는 계수나무이다. 달콤한 향기를 뿜으며 나를 기다리겠지… 역시 계수나무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온 몸 가득 솜사탕 향기를 뿜으며 두 팔 벌려 반겨주었다. 고개를 들어 계수나무를 바라보았다. 제대로 물들지 않은 잎새를 떨구고 파아란 하늘을 배경으로 한껏 발돋음을 하고 있다. 바닥에 떨어진 계수나무 잎을 주워 코에 대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아본다. 신혼시절 아내에게서 맡은 냄새 같기도 하고 오랜 여행에서 돌아와 지친 몸을 쇼파에 뉘었을 때 나는 향기같기도 하다.

벚나무길을 따라 산림박물관쪽으로 걸어간다. 올해는 단풍이 곱지 않다. 단풍이 들 무렵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서 그렇단다. 이상기후로 가을단풍의 아름다움마져 잃게되는건 아닌지 걱정이다. 산림박물관 앞에는 아담하고 고운 복자기나무와 훤칠하게 잘 생긴 비술나무가 금슬 좋은 부부처럼 나란히 서있다.

복자기나무 단풍이 참 곱다. 오른쪽 가지가 부러져 모양이 흐트러졌으나 고운 자태는 변함이 없다. 그 옆에 선 비술나무는 단풍이 들기도 전에 잎이 다 떨어져 안쓰럽다. 듬직하게 서 있는 비술나무에 기대어 ‘나 예뻐…’ 복자기나무가 속삭이듯 묻는다. ‘그럼 예쁘고 말고, 오늘 당신 정말 예쁜데…’ 비술나무가 흐믓하게 웃음 짓는다.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부부를 이곳에서 만났다.

광릉숲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육림호’다. 수목원 내의 경관과 생태적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조성된 육림호는 사계절 빼어난 경관으로 탐방객들이 즐겨찿는 명소이다. 멀리 잣나무, 전나무의 푸르름을 배경으로 단풍나무와 참나무류의 단풍이 참 곱다. 중부지방에서 볼 수 있는 나무는 모두 육림호 주변에 모여 사는 듯하다. 소리봉에서 흘러내린 가을이 육림호에 모여 축제를 벌이고 있다. 광릉숲의 가을이 육림호에 잠겨 오도가도 못한다.

육림호 둑방에 서서 깊어가는 가을산을 바라보며 마음은 죽엽산 정상을 오르고 있다. 서어나무의 근육질 팔뚝을 만져보고 굴참나무 폭신한 몸에 기대어 쉬기도 하면서 숲바닥에 떨어진 낙엽길 따라 봉선사나 산림교육원까지 걷는 상상을 해 본다. 단풍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고로쇠나무, 벚나무, 까치박달나무, 다릅나무, 물푸레나무, 들매나무, 박달나무, 산수유, 생강나무, 괴불나무, 오리나무, 버드나무,.. 만나는 나무마다 이름을 불러주고 만져보고 안아보고 바라보며 안부를 물을 수 있을텐데… 가지 못하는 아쉬움에 그리움만 가득하다. (이 숲길은 특별한 때에만 개방된다)

육림호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전나무숲이 나온다. 1970년 식목일에 박정희 대통령께서 이곳에 전나무와 잣나무 9,000그루를 심으셨다.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은 곧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같으며 산에 나무가 우거질 때 우리는 틀림없이 잘 살게 될 것이다. 어린아이를 돌보듯이 정성을 기울여 나무를 심고 가꾸어야 한다”고 말씀 하셨다. 박정희 대통령 이후 역대 대통령께서 광릉숲에 기념조림을 하셨다.

전나무숲길 옆에 지난해에 개방한 ‘비밀의 정원’이 있다. 사전 예약을 하고 해설사의 안내를 받아 비밀의 정원에 들어서면 560년 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원시의 숲이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다. 흐르는 물소리,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소리, 하늘 높이 솟은 큰 나무와 그 옆에 쓰러진 고목, 이끼 낀 돌맹이와 낙엽 쌓인 숲길, 구수한 흙내음과 상큼한 공기맛, 350년 된 밤나무와 꿈틀대는 서어나무의 근육질 수피… 행여 이방인의 침입에 오염되지는 않으려나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광릉숲은 대한민국 최고의 숲이다. 1468년 세조의 陵林으로 지정된 이후 자연재해를 당하지 않고 인위적 간섭을 적게 입은 자연림으로 온대활엽수 極相林(극상림: climax forest)이다. 한때 크낙새가 살았고 지금은 장수하늘소가 살고 있으며 광릉요강꽃, 광릉골무꽃, 광릉갈퀴 등 한국특산식물 서식지이고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생물종이 살고 있는 생물다양성의 보고이다. 2010년에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선정되었으며, 아름다운숲 전국대회에서 천년의숲 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편 광릉숲은 대한민국의 산림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숲이다. 세계가 기적이라 부르는 대한민국 산림녹화 시발점이 바로 광릉숲이다. 그러기에 광릉숲 광장 중앙에는 치산녹화사업의 성공과 국민들의 노고에 보답하는 뜻을 담은 ‘국토녹화성공기념탑’이 큼지막하게 세워져 있고 그 옆에 치산녹화에 지대한 공헌을 하신 세계적인 육종학자 현신규 박사님의 자그마한 동상이 겸손하게 자리하고 있다.

국토녹화성공기념탑과 현신규 박사 동상에 묵례를 올리고 ‘숲의명예전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산림청 국장시절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아 청장님께 건의드려 이곳에 ‘숲의명예전당’을 세웠다. 치산녹화에 공이 큰 분들을 모시기로 하고 국민추천과 전문가 자문을 거쳐 2001년 4월 5일 식목일에 박정희 대통령, 현신규 박사, 임종국 독림가, 김이만 나무할아버지 4분을 모셨다. 그 후에 민병갈 천리수목원설립자, 최종현 SK그룹회장, 손수익 전, 산림청장, 진재량 독림가를 추가로 모셔 현재 8분이 숲의명예전당에 모셔져 있다. 앞으로도 어떤 분들이 숲의명예전당에 헌정될지 사뭇 기대가 크다.

2002년에는 UN이 정한 ‘세계 산의 해’를 기념해서 이곳에 산림헌장비를 세웠다. 산림헌장비 앞에 서서 산림헌장을 크게 읽어본다. ‘숲은 생명이 숨 쉬는 삶의 터전이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과 기름진 흙은 숲에서 얻어지고, 온 생명의 활력도 건강하고 다양하고 아름다운 숲에서 비롯된다. 꿈과 미래가 있는 민족만이 숲을 지키고 가꾼다.“ 읽을 때마다 감동이다.

한참을 걷다보니 배가 고프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 않는가. 탐방객을 위해 마련해 준 휴게광장에 점심보따리를 푼다. 휴게광장을 둘러선 나무들이 바람 따라 잎을 떨어트린다. 이른 봄 딸 부잣집 아침 출근시간 처럼 화사하고 시끌벅적하고 요란하고 향기롭게 피워낸 자식(잎새)들이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알고, 떠나는 자식 위해 평생을 익혀온 서러운 솜씨로 고운 옷 한 벌씩 지어 입힌 것이 단풍이 아니겠나… 이런 생각을 하느라 펴 놓은 밥을 먹는 것도 잊어 버렸다. “여보, 밥 먹다 말고 무슨 생각을 그리 하셔요.” 아내의 꾸증도 못 들은 척 가을나무를 쳐다본다. ‘자식을 먼저 품에서 떠나보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가을단풍이 곱다고 말하지 말자’

가을이 깊어가는 광릉숲을 내려오며 기도했다. 오래토록 이 숲을 지켜주소서. 망나니 산불이, 몹쓸 병과 해충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막아 주소서. 인간의 공명심이나 無知로 이 숲을 망가트리지 못하도록 지켜주소서. 대한민국 최고의 명품숲으로 길이 잘 길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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