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메뉴 바로가기 (상단) 본문 컨텐츠 바로가기

7월 국내여행지 추천 전국유명사찰 속리산 법주사

쿠니의 아웃도어 라이프 조회수  

전국유명사찰 속리산 법주사에서는 많은 유물을 만나보는 것에 초점을 맞춰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주차장을 나와 법주사 경내로 들어서기까지의 시원한 나무 그늘을 걷는 것도 좋겠구요. 그래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기 전 7월 국내여행지 추천 장소로 소개할까 합니다.

7월 국내여행지 추천 | 전국유명사찰 클립.

전국유명사찰, 속리산 법주사

7월 국내여행지 추천

입장시간 : 04:00 ~ 20:00(입장마감 18:00)

입장료 : 무료

주차장 : 속리산국립공원소형주차장

주차료 : 5,000원(소형, 중형) / 8,000원(25인승 이상 대형)

법주사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405

속리산국립공원소형주차장

충청북도 보은군 법주사로 287 상가

법주사 성보 박물관을 지나며 그런 생각을 해봤다. 전국유명사찰 중 어느 사찰이 가장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을까?

그래서 자료를 찾아봤다. 결론적으로 전국유명사찰 순위를 정리한 자료는 없으며 정하기도 애매할 듯.

하지만,

문화유산청, 문화체육관광부 입장객 통계, 내비게이션 목적지 설정, 문화유산 보유와 역사적 위상 등을 고려해서 정리한 데이터를 보니 속리산 법주사는 6위 정도 된다. 그렇다면?

1위에서 5위까지의 순위에 드는 전국유명사찰은?

경주 불국사, 구례 화엄사, 양산 통도사, 합천 해인사, 서울 봉은사 등이며 속리산 법주사 등과 함께 남해 보리암, 여수 향일암, 부산 해동용궁사, 양양 휴휴암 등이 순위에 든다.

역사적 위상이나 문화유산 보유 등을 고려해 볼 때 부산 해동용궁사나 양양 휴휴암이 순위에 드는 게 의외였다.

아마도 내비게이션 목적지 설정(실 방문자) 수에서 대단한 영향력이 행사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속리산 자연 관찰로를 나와 속리산 법주사 일주문을 통과한다.

일주문 앞에서 볼 때 현판에는 호서제일가람(湖西第一伽藍), 일주문의 뒤를 돌아본 현판에는 속리산대법주사(俗離山大法住寺)라고 적혀 있다. 여기에서 호서제일가람이라 하는 것은 충청도에서 으뜸가는 사찰이란 의미다.

그나저나 숲, 참 좋다. 후텁지근하기 전 7월 국내여행지 추천 장소로 안성맞춤이지 않을까?

법주사 경내로 들어서기 전 오른쪽에 위치한 부도군(浮屠群)에는 역대 고승들이 모셔져 있다.

부도군을 등 뒤로하고 속리산 법주사 경내로 들어선다.

7월 국내여행지 추천 장소라 말함에 있어 짙은 나무 그늘에 국한되어 말한 게 아니라 많은 국보와 보물을 만나볼 수 있는 천년사찰, 전국유명사찰,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종합하며 말씀드린 것이다.

복원된 철당간의 모습으로 본래의 철당간은 고려 목종 7년인 1006년에 16m 높이로 세워졌으나 조선 고종 3년인 1866년에 재정 마련을 위한 당백전 주조를 위해 파괴되었다가 1차 1910년 복원되었고 최종 1972년 재복원되어 현재의 모습이 됐다.

국보 석연지(石蓮池)

신라 성덕왕 19년인 720년경 조성된 것으로 8각 지대석 위에 3단 괴임을 만들고 다시 복련을 두른 굄돌을 올렸으며 그 위에 구름을 나타낸 동자석을 끼워 연지를 받친 작품이다.

법주사 금동미륵대불(法住寺 金動彌勒大佛)

최초의 대륵대불은 일제강점기였던 1939년 일본 유학을 통해 서구적 조각 기법을 체득한 조각가 김복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전통적인 목재나 석재가 아닌 석고와 시멘트라는 신소재를 도입했는데 1940년 작가의 사망으로 미완의 프로젝트가 되었고 1964년 임천의 설계로 조형의 전면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이후 1990년 시멘트 미륵대불이 철거되고 청동으로 제작되었다가 2002년 금동 미륵대불이 되었으며 현재의 법주사 금동미륵대불은 2015년 완성되었다.

금동미륵대불 기단부에 뭔 공사를 하는 듯.

국보 팔상전(捌相殿)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유일한 목탑 팔상전은 사찰 창건 당시에 의신대사가 초창했다고 전하며, 신라 혜공왕 12년에 진표율사가 중창했었으나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졌던 것을 1602년부터 사명대사와 벽암대사에 의해 조선 인조 2년인 1624년에 복원되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올해로 무려 402년 동안.

어디선가 맑은 소리가 들려 찾아오니 바람에 흔들리는 이것들.

소원을 적었다 하여 소원지, 연등이라 하여 소원등이라 불렀는데 이건 무어라 불러야 하지? 소원을 적은 유리로 풍경이란 의미에서 소원경(所願鏡)이라 부르고 싶다. 실제 이름은 모르고 그냥 쿠니의 생각이다.

보물 원통보전(圓通寶殿)

법주사 창건 당시 의신조사(義信組師)에 의해 지어진 건물로서 776년에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중창하고, 임진왜란 떼 소실된 것을 1624년 벽암대사(碧巖大師)가 다시금 복원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고 전각 내부에 거대한 목조의 관음보살좌상 역시 보물로 등재되어 있다.

보물 석조 희견보살상 입상(石造 喜見菩薩 立像)

신라 33대 성덕왕 19년인 720년경에 조성된 입상으로 향로를 머리에 이고 있으며, 향로 용기의 면에는 연화문이 조각되어 있다. 보살상은 앞가슴 부분의 법의가 벌어져 있고, 힘이 들어간 듯한 근육이 조각 자체를 강하게 느껴지게 한다.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지장전으로 존재하는 전각이었으나 18세기 가람 배치에서 사라졌으며 현재의 전각은 2003년에 새로 건립된 것이다.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

종교란 게 뭐 별거 있나.

이렇게 사람들에게 평안과 안식을 주는 게 아닐까 싶다.

보물 대웅보전(大雄寶殿)

얕은 기단 위 중층을 건립된 이 전각은 신라 진흥왕 14년인 553년에 의신조사가 창건하고, 인조 2년인 1624년에 벽암대사가 중창한 것으로 총 120간, 건평 170평, 높이 약 20m에 이르는 대규모의 건축물이다.

보물 사천왕석등(四天王石燈)

신라 성덕왕 19년인 720년경 제작된 우리나라 석등의 정형이라고 할 수 있는 8각주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국보 쌍사자석등(雙獅子石燈)

신라 성덕왕 19년인 720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 10척에 이르는 8각 석등으로 두 마리의 사자가 마주 서서 뒷발로 복련석을 디딤하여 앞발로 양련석을 받들고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약사전은 명부전과 마찬가지로 18세기 가람배치도에 등장하지 않는 전각이며 현재의 전각은 20세기 초 건립되어 근래 새로 보수했다고 하는데 정확한 건축연도는 모르겠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법주사 능인전(能仁殿)

법주사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건물로서 보존 가치가 높다고 한다.

마애여래입상이 있는 추래암(墜來岩) 암벽으로 향한다.

보물 마애여래입상(磨崖如來立像)

전체 높이 6.18m, 연화대좌석 높이 2.84m, 평면 연화석 폭 2.27m인 마애여래입상은 둥근 얼굴과 감은 듯이 뜬 눈, 그리고 두툼한 입술, 반듯한 어깨, 유난히 잘록한 허리 등 비사실적 추상성을 띠고 있다.

보물 철확(鐵鑊)

신라 성덕왕 때 주조되었다고 전해오며 높이 1.2m, 직경 2.87m, 두께 10.8cm의 거대한 이 쇠솥은 신도 3만 명이 먹을 장국을 끓이던 솥이라고 하기도 하며,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이 이 솥을 이용하여 배식하였다고도 전한다.

한 사찰에서 이렇게나 많은 국보와 보물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는 점에서 전국유명사찰 중에서도 7월 국내여행지 추천 장소로 소개하는 것이며 날이 더 더워지기 전 한 번쯤 방문해 보는 것도 좋겠다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이 기사에 대해 공감해주세요!
+1
0
+1
0
+1
0
+1
0
+1
0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