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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자마자 현지인과 동화되는 곳, 시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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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첫날, 블루마운틴 투어에서 만난 한 한국인 여행객은 호주만 여섯 번째 찾았다고 말했다. 가족이 사는 것도 아니고 순수 여행으로만 여섯 번이었다. 다른 나라들도 많이 여행해봤다면서 왜 호주를 계속 찾느냐고 묻자 “그냥 계속 오게 된다”는 애매한 답만 남기고 떠났다.

시드니에 머문 7일 동안 그 답을 찾아봤다. 여행의 끝에서 내린 결론. 편안함이다.

호주에서도 시드니는 대도시답지 않은 여유가 흐르는 도시다. 흔히 대도시에서 느끼는 긴장감이나 각박함이 거의 없다. 소매치기나 인종차별을 걱정하며 주변을 살필 필요도, 호객행위에 연신 “노 땡큐”를 외칠 일도 드물다. 현지인은 현지인대로 일상을 보내고, 여행객은 여행객대로 도시를 즐긴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 빽빽한 고층빌딩이 들어선 도심이지만, 그 안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시골처럼 느긋하다. 도시와 사람의 분위기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곳, 그게 시드니다.

관광지도 관광객만의 공간이 아니다. 러너와 출퇴근하는 직장인,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뒤섞인다. 여행자는 현지인의 일상 속으로 스며든다. 대표 관광지조차 시민들이 함께 사용하는 생활 공간이다. 이방인이라 위축될 이유가 없는 도시. 시드니에 혼자 여행 오는 사람이 유독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축제도 여유롭다, 비비드 시드니

사진= 뉴사우스웨일즈주 관광청

시드니의 대표 축제도 도시의 성격을 닮았다. 남반구 최대 예술 축제이자 시드니를 대표하는 비비드 시드니(Vivid Sydney)가 그렇다.

매년 5월 말부터 약 6주 동안 열리는 비비드 시드니는 우리가 익숙하게 떠올리는 북적이는 광장형 축제와는 거리가 멀다. 오페라하우스와 시드니 하버 브리지, 달링 하버 등 도시 곳곳의 랜드마크를 빛으로 물들이는 조명 예술제다. 사람들은 야경을 감상하며 6.5km에 이르는 항구를 따라 천천히 걷는다.

2009년 첫해 25만 명이 찾았던 축제는 지금 연간 250만 명이 찾는 남반구 최대 빛 축제로 성장했다. 세계 각국에서 관광객이 몰려오지만 번잡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 축제는 걷는 축제이기 때문이다.

비비드 시드니는 △비비드 라이트(Vivid Light) △비비드 뮤직(Vivid Music) △비비드 푸드(Vivid Food) △비비드 마인드(Vivid Minds) 등 네 가지 핵심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설치 작품과 공연, 강연, 미식 체험까지 더해지며 도시 전체가 하나의 축제장이 된다.

사진= 뉴사우스웨일즈주 관광청

비비드 시드니는 도시 건물들이 빛의 옷을 갈아입는 패션위크와 같다. 축제 기간에는 오페라하우스부터 해양박물관까지 시드니를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화려한 조명과 영상으로 새롭게 변신한다. 방문객들은 서큘러 키와 더 록스, 바랑가루, 달링 하버를 잇는 총 6.5km 길이의 ‘비비드 라이트 워크’를 따라 걸으며 빛으로 꾸민 도시와 다양한 설치 작품을 감상한다.

방문객들은 걸으며 작품을 감상한다. 언제 와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어 시드니에 머무는 동안 밤에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비비드 구역으로 향하게 됐다. 여행자에게는 최고의 야간 볼거리이고, 현지인에게는 일상적인 산책 코스다. 시내 한복판에 있어 관람을 마친 뒤 주변 바에서 술 한잔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기도 좋다. 비비드 시즌에는 주변 식당마다 특별 메뉴도 선보인다.

예술을 잘 몰라도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작품이 많다. 비비드 시드니는 단순히 작품을 바라보고 끝나는 축제가 아니다. 걷다가 멈춰 서서 직접 참여한다. 올해는 세계적인 작가들이 참여해 기후 변화와 연결, 공감 등을 주제로 한 체험형 작품들을 선보였다.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형태가 바뀌거나 소리로 즐기는 작품 등 산책하듯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곳곳에 펼쳐진다. 저녁 식사 전후로 천천히 걸으며 즐기기에 시드니다운 축제다.

안 뛰면 손해인 산책로

사진= 뉴사우스웨일즈주 관광청

달려본 적 없는 사람도 시드니에선 다리가 근질거린다. 안 뛰면 손해인 것처럼 아름다운 산책길과 러닝 코스가 도시 곳곳에 펼쳐져 있다.

호주 사람들은 해가 뜨기 전 일어나 달리고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들었다. 실제로 그 모습을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뛰고 싶어졌다.

평소 러닝과는 거리가 멀지만 모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오페라하우스 주변을 달렸다. 오페라하우스 일대는 평지가 이어져 러닝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세계 7대 마라톤으로 꼽히는 시드니 마라톤 코스도 이곳을 지난다.

대표 코스만 꼽아도 왕립 식물원(Royal Botanic Garden)에서 맥쿼리 부인의 의자(Mrs Macquarie’s Chair)까지 이어지는 항구 트랙(1.5km), 바랑가루에서 오페라하우스까지 이어지는 해안 코스(3km)는 부담 없이 달리기 좋다.

사진= 뉴사우스웨일즈주 관광청

시티 러닝의 중심에는 왕립 식물원이 있다. 1816년 영국 왕실을 위해 조성한 약 9만 평 규모의 정원이다. 오페라하우스 바로 옆에서 항구를 끼고 희귀 식물과 장미정원 사이를 달리는 편도 1.5km 코스는 오페라하우스 근처 숙소를 잡았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길이다.

시드니에는 여행객도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로컬 런클럽도 있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곳은 본다이 비치(Bondi Beach)에서 열리는 ‘더 시드니 런 클럽(The Sydney Run Club)’이다.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오전 5시 30분에 시작한다. 예약도 회원가입도 필요 없다. 시간에 맞춰 나타나면 누구나 크루가 된다.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새벽, 400명이 넘는 러너들이 해안선을 따라 함께 달린다. 러닝이 끝나면 함께 식사를 하며 새로운 친구를 만든다. 코스는 5km부터 10km까지 다양하며 당일 자신의 체력에 맞는 거리를 선택하면 된다. 건강과 커뮤니티, 새벽 공기까지. 건강한 호주를 가장 호주답게 경험하는 여행법이다.

사진= 뉴사우스웨일즈주 관광청

젊은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해변이 본다이 비치라면 조금 더 차분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맨리 비치(Manly Beach)를 추천한다.

맨리 비치는 본다이 다음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해변이다. 이름은 파도가 남성적(manly)일 만큼 힘차다고 해서 붙었다. 1964년 세계 최초의 서핑 대회가 열린 유서 깊은 해변으로, 황금빛 모래사장과 노퍽 소나무가 늘어선 약 2km 해안선을 자랑한다.

해변 끝에서 셸리 비치(Shelly Beach)까지 이어지는 산책로는 조용한 수영 구역을 지나며 이어진다. 파도는 거칠지만 해변 주변에는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늘어서 있어 반전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본다이보다 한층 더 현지인에 동화된 기분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시간이 된다면 맨리에서 노스 헤드(North Head)까지 이어지는 약 10km 산책 코스도 추천한다.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걸으면 약 2시간 30분에서 3시간 정도 걸린다.

코스는 퀸즈클리프(Queenscliff)의 맨리 라군(Manly Lagoon)에서 시작해 맨리 비치를 따라 셸리 비치로 이어진다. 이후 시드니 하버 국립공원(Sydney Harbour National Park)의 숲길을 지나 노스 헤드로 올라간다.

노스 헤드의 페어팩스 워크(Fairfax Walk)는 시드니 하버와 도심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대표 전망 코스다. 노스 헤드 시닉 드라이브(North Head Scenic Drive) 끝에서 시작해 역사적인 Q 스테이션(Q Station)을 지나며 세 곳의 전망대를 만난다.

6~7월과 8~10월에는 고래 이동 시기와 겹쳐 고래를 관찰하기 좋은 장소로도 유명하다. 긴코반디쿠트와 뉴홀랜드허니이터, 무지개 로리킷 등 다양한 야생동물도 만날 수 있다.

페어팩스 워크를 마친 뒤에는 노스 헤드 생추어리(North Head Sanctuary)를 둘러볼 수 있다. 노스 헤드 생추어리 재단은 봄철 야생화 투어를 운영하며 노스 포트(North Fort) 투어도 진행한다. 이후 다시 맨리로 내려와 맨리 시닉 워크웨이(Manly Scenic Walkway)를 걷거나 블루피시 포인트(Bluefish Point) 인근 블루피시 트랙(Bluefish Track)을 따라 셸리 비치로 돌아올 수도 있다.

주말을 끼면 더 좋은 이유, 마켓

사진= 뉴사우스웨일즈주 관광청

호주 여행을 간다면 주말을 꼭 끼워 일정을 짜자. 주말에만 열리는 로컬 마켓을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훨씬 풍성해진다.

가장 대표적인 곳은 토요일마다 열리는 캐리지웍스 파머스 마켓(Carriageworks Farmers Market)이다. 뉴사우스웨일스주 최고의 농산물과 장인 먹거리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시장이다. 신선한 과일과 유기농 채소, 수제 치즈, 다양한 미식 먹거리가 가득하다.

유명 셰프 마이크 맥이너니(Mike McEnearney)가 큐레이션을 맡고 있으며 생산자와의 연결을 중요하게 여기는 엄격한 마켓 운영 원칙도 갖추고 있다.

평소에는 조용한 큰 창고가 토요일이면 사람들로 가득 찬다. 유명 커피와 베이커리도 입점해 있어 쇼핑과 식사를 함께 즐기기 좋다. 꽃을 사 들고 집으로 향하는 현지인들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시장 안에서 먹어도 좋지만 음식을 포장해 5분 정도 걸으면 시드니대학교가 나온다. 해리포터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캠퍼스에서 피크닉을 즐기면 분위기가 한층 살아난다.

사진= 뉴사우스웨일즈주 관광청

간식을 먹고 캠퍼스를 둘러봤다면 같은 토요일 열리는 글리브 마켓(Glebe Markets)도 추천한다. 30년 넘게 사랑받아온 지역 대표 빈티지 마켓이다. 글리브 공립학교(Glebe Public School)에서 열리며 독립 패션 브랜드와 중고 보물, 핸드메이드 주얼리, 감각적인 디자인 소품을 만날 수 있다. 푸드트럭 음식과 라이브 음악을 즐기며 잔디밭에 앉아 쉬기에도 좋다.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과감하고 독창적인 빈티지 의류와 소품을 구경하는 재미도 크다. 젊은 대학가 특유의 분위기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시장이다.

일요일에도 놓치기 아까운 마켓이 있다.

더 록스 마켓(The Rocks Markets)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서큘러 키 옆 돌길에서 열린다. 현지 작가들의 작품과 수공예 주얼리, 독립 디자이너 패션, 다양한 먹거리와 라이브 음악이 어우러진다. 현지 예술가와 사진작가를 만나고 수제 뷰티 제품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사진= 뉴사우스웨일즈주 관광청

본다이 마켓(Bondi Markets)은 매주 일요일 본다이 비치 공립학교에서 열린다. 빈티지 의류와 핸드메이드 소품, 디자이너 브랜드 제품, 레트로 가구 등 다양한 물건을 판매한다. 차세대 디자이너를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시장으로도 유명하다. 마켓 끝 공터에서는 버스킹 공연과 푸드트럭 음식도 즐길 수 있다. 호주에서 가장 유명한 해변의 분위기를 현지인들과 함께 누리기 좋은 곳이다.

호주는 목요일이 주급날이다. 한국의 ‘불금’ 대신 ‘불목’ 문화가 자리 잡았다. 주말의 해방감을 제대로 즐기려면 목요일 밤부터 거리에 나가보자. 바와 스트립이 활기를 띠며 도시 전체가 주말 분위기로 바뀐다.

누구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열려 있는 도시. 비록 처음 찾았지만 오래전부터 이곳의 일원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곳. 그 편안함이 사람들을 시드니로 계속 돌아오게 만드는 이유였다.

호주= 문서연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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