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다시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면서 쏠쏠한 재밋거리가 생겼다. 바로 신규 호텔을 찾아가는 것이다. 여행지에서 잠잘 곳을 찾는 일은 맛집을 알아내는 것보다 중요하다. 하루에 3끼를 먹을 수 있지만 잠잘 곳은 딱 한 곳만 필요하다. 식사는 입맛에 안 맞으면 바로 나와 다른 곳을 가면 그만이지만 여행 중 뜻하지 않게 숙소를 바꾸는 건 꽤 번거로운 일이다.
‘잃어버린 3년’ 동안 호기심만 커졌다. 가보고 싶은 전 세계 호텔 버킷리스트도 상당히 늘어났다. 유난히 팬데믹 기간 새롭게 문을 연 호텔이 많게 느껴진다. 우후죽순 쏟아지는 뉴스에 굵직굵직한 것만 챙기기로 했다. 눈에 들어오는 건 역시 ‘최고’ ‘최초’ 같은 꼬리표가 붙은 호텔이다. 힐튼 싱가포르 오차드도 그랬다. ‘아시아 태평양 최대 규모 힐튼 호텔’이라는 수식어에 호기심이 동했다.
2022년 2월 문을 연 힐튼 싱가포르 오차드 / 사진=힐튼 싱가포르 오차드
힐튼 싱가포르 오차드 호텔은 팬데믹 기간 중인 2022년 2월 문을 열었다. 싱가포르 최고 쇼핑거리 오차드로드 중심에 자리한 ‘힐튼 싱가포르 오차드’는 팬데믹 이후 싱가포르에서 가장 주목받는 호텔 중 하나로 떠올랐다. 완벽한 입지 조건과 전통있는 레스토랑, 쾌적한 시설 그리고 요즘 여행 업계의 화두인 지속가능성까지 뭐 하나 빠지지 않는다.
한 블록에도 5성 호텔이 두 어 개씩 줄지어 있는 오차드로드에서 힐튼 싱가포르 오차드는 어떤 매력으로 전 세계 여행자들을 사로잡았을까. 공사가 한창이었던 2020년 8월부터 호텔에 합류한 세드릭 누불(Cedric Nubul) 총지배인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힐튼 싱가포르 오차드에는 어떻게 합류하게 된 건지.
A 이전부터 동남아시아 지역에 애정을 갖고 있었다. 10년 전쯤 됐는데, 2012년부터 2년 동안 말레이시아에서 일했다. 힐튼 싱가포르 오차드는 객실 1080실로 아시아 태평양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랜드마크이자 플래그십 호텔이다. 인생에서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돼 기쁘다. 싱가포르는 전 세계 여행객에게 인기 있는 곳이고 비즈니스 중심지 중 하나이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살기에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세드릭 누불 힐튼 싱가포르 오차드 총지배인 / 사진=홍지연 여행+ 기자
세드릭은 총지배인 직을 맡은 건 올해로 10년째다. 힐튼 싱가포르 오차드가 그가 총지배인으로 있는 세 번째 호텔이다. 그는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호텔 서비스에 겸손과 진심, 따뜻함이 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양성과 포용성 역시 항상 중요하다.
힐튼 싱가포르 오차드의 직원들은
문화, 성별은 물론 20대 초반부터 60대까지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들로 구성돼있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 모두가 ‘하나’가 된다는 느낌을 받게 하고 싶어요.
세드릭 누불
싱가포르 현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채터박스. 1971년 문을 연 식당이다. / 사진=홍지연 여행+ 기자
Q 아시아 호텔은 이번이 두 번째다. 10년 전 말레이시아에서 일했을 때와 지금 아시아 지역 호텔 업계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A 호텔업은 계속 변하고 있다. 우리는 급변하는 트렌드와 사람들에 맞춰야만 한다. 요즘 여행자들은 현지에서 정통성 있는 경험을 하길 원한다. 레스토랑에 공을 들인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에스테이트’나 ‘채터박스’에서 제공하는 음식에 싱가포르 지역성을 담고자 노력했다.
10년 전과 비교해 디지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졌다. 힐튼 싱가포르 오차드가 대대적인 레노베이션을 한 이유다. 투숙객은 체크인 후에 QR코드나 채팅 등을 통해 쉽고 빠르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전 세계 중 특히 동남아시아에서의 호텔 산업은 태국과 베트남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숙박업소와 식당을 평가하는 여행객의 기준이 높아진 것도 10년 전과 비교해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이다.
바&라운지 진저릴리. 칵테일과 애프터눈티를 맛볼 수 있다. / 사진=홍지연 여행+ 기자
곳곳을 다니며 호텔을 소개하던 세드릭이 레스토랑에 도착하자 말이 많아졌다. 호텔에 머물면서 5개 레스토랑을 한 번씩 가보라고 했다. 뷔페 레스토랑 ‘에스테이트’에서는 매주 목요일 저녁 해산물 잔치가 열린다. 랍스터와 게 등 다양한 해산물을 중심으로 음식을 차린다. 4월부터는 일요일마다 샴페인 브런치도 진행하고 있다. 아보카도 바(bar)나 디저트 전문가가 만든 10여 종 이상의 디저트를 맛볼 수 있다.
뷔페 레스토랑 에스테이트 / 사진=홍지연 여행+ 기자
‘오스테리아 모짜’의 화덕 피자는 꼭 맛봐야 한다. 세드릭은 쉬는 날에도 가족과 함께 피자를 먹으로 호텔에 온다고 했다. 오스테리아 모짜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은 미국인 스타 셰프 낸시 실버튼(Nancy Silverton)이다. 피자 도우를 3일 동안 숙성하고 레스토랑 안에 있는 화덕에서 캘리포니아산 아몬드 나무로 불을 피워 피자를 구워낸다.
화덕 피자가 맛있는 오스테리아 모짜 / 사진=홍지연 여행+ 기자
Q 호텔 레노베이션을 하면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은?
A 옛 호텔 건물을 새롭게 바꾸면서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에너지 효율적인 기술을 도입하고, 대용량 욕실용품을 비치했다. 객실 내 움직임 감지등을 달아 사람이 없으면 15분 뒤에 자동으로 TV와 조명이 꺼진다. 객실 내 종이 책자와 룸서비스 메뉴판도 없앴다. QR코드를 통해 스마트폰으로 메뉴를 보고 서비스를 요청하도록 만든 것도 지속가능성의 일환이다.
객실에 대용량 욕실 용품과 유리병 생수통을 비치하고 나무로 만든 카드 키를 사용하는 등 힐튼 싱가포르 오차드는 다양한 방법으로 호텔 내 플라스틱 없애기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 사진=홍지연 여행+ 기자
호텔 내 플라스틱 없애기 정책을 펴고 있다. 플라스틱 카드키를 나무 소재 카드키로 바꿨다. 플라스틱 물통은 유리병으로, 한번 쓰고 버리는 작은 크기 욕실용품도 재활용이 가능한 대용량으로 대체했다. 1년에 약 4만 개 플라스틱 카드를, 플라스틱 물통만 3t을 절약한다. 싱가포르 호텔 중 최초로 정수 시스템을 건물 안에 갖추고 있어 유리병에 매일매일 손님들에게 물을 제공한다. 앞으로 음식물 쓰레기 시스템도 호텔 안에 도입할 계획이다.
깔끔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객실. TV장 뒤로 옷걸이가 있다 / 사진=홍지연 여행+ 기자
디자인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디자인 콘셉트는 호텔이 위치하고 있는 오차드로드의 역사에서 영감을 받았다. 과일 농장이었던 오차드로드의 과거를 호텔에 투영하기 위해 식물에서 영감을 받은 인테리어 요소를 넣었다. 쇼핑 중심지로서의 오차드로드의 현재 이미지도 호텔 인테리어 곳곳에 녹아 있다. 호텔 객실 내 옷장에 문이 없다. 마치 상점에 가서 자유롭게 옷을 고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Q 한국 시장 전망은 어떻게 보는지.
A 최근 몇 달 사이 한국에서 싱가포르로 취항하는 비행기 수가 증가했다. 얼마 전 본 글로벌 트렌드 리포트에서 한국 사람들이 휴가지를 선택할 때 유명한 식당이나 바 등에 큰 영향을 받는다고 본 적이 있다. 그런 점에서 호텔 내 완벽한 식음업장을 갖춘 힐튼 싱가포르 오차드가 앞으로 더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차드 로드 풍경 / 사진=홍지연 여행+ 기자
마지막으로 세드릭에게 호텔 근처 명소를 물어봤다. 그는 “쇼핑이 싱가포르 여행의 주목적이라면 타카시마야 쇼핑 센터(Takashimaya Shopping Centre), 아이온 오차드(ION Orchard), 파라곤(Paragon) 등 쇼핑몰을 추천한다”고 했다.
힐튼 싱가포르 오차드 대각선 방향 사거리에 있는 디자인 오차드 / 사진=홍지연 여행+ 기자
호텔과 대각선 방향으로 마주한 ‘디자인 오차드(Design Orchard)’는 떠오르고 있는 신진 싱가포르 디자이너들을 지원하기 위한 공간이자 쇼룸이다. 이곳에서 지금 가장 인기있는 싱가포르 현지 디자이너의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호텔에서 도보로 이동 가능한 범위 안에 ‘트리페카(Trifecta)’라는 통합 보드 스포츠 시설이 올해 안에 문을 열 예정이다.
호텔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싱가포르 보태닉 가든(Singapore Botanic Gardens)’은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된 정원이다. 그밖에도 실내 액티비티와 놀이 공간이 마련된 ‘수퍼파크(SuperPark)’, 싱가포르의 페라나칸(Peranakan)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에머랄드 힐(Emerald Hill)’도 추천했다.
홍지연 여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