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뭘 볼까] ‘미생’보다 더 힘겨운 K-오피스..영화 ‘해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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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명필름랩
사진제공=명필름랩

◆ 오늘, 볼만한 작품을 추천합니다.

# 감독 : 박홍준 / 출연 : 장성범, 서석규, 김도영 / 관람등급 : 12세이상관람가 / 상영시간 : 101분 / 제작 : 영화사 나른, 명필름랩 / 배급 : 명필름랩 / 개봉 : 9월25일

자, 상상해보자.

인사팀 직원은 당신은 회사의 지시에 따라 150명의 정리해고자 명단을 작성해야 한다. 그것이 당신의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다. 절친한 동료와 선배들도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다. 당신은 과연 누구의 이름을 명단에 올릴 것인가.

한양중공업 4년차 대리 강준희도 인사팀으로 옮기자마자 150명을 정리하라는 구조조정 지시를 받는다. 회사를 살리기 위함이라는 경영자들의 ‘명분’이 있음은 물론이다. 회사는 그저 ‘해야 할 일’을 명령할 뿐이다. 그는 인사팀 막내 직원으로 ‘해야 할 일’을 해간다. 그러나 그럴수록 현실은 더욱 퍽퍽해지기만 한다.

그럴 수밖에.

명단의 빈칸이 하나하나 채워질수록 일하는 이들과 ,더 일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구조조정을 당해야 할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회사는, 아니 경영자들은 그에 따른 아무런 책임도 역시 없다,가 아니라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한다. 구조조정을 하기까지 부실한 경영을 해왔음을 누구도 모르지 않는데.

그럴 때 드러나는 것은 월급 받고 성실히 일하며 회사를 지켜온 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균열과 갈등이다. 이를 묵묵히 견뎌낼 수밖에 없는 것도 온전히 그들의 몫이다. 자신들 앞에 놓인 고된 현실과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 그 속에서 강준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헌데, 이쯤 되면 어디서 많이 보아온 광경 아니던가.

강준희는 자신이 명단을 작성할수록 부조리한 차별의 현실과 경영자들의 어처구니없는 무책임함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볼 처지도 아니고, 힘도 없는, 그제 가서야 ‘해야 할 일’은 ‘할 수밖에 없는 일’이 되고, 결국 ‘왜 해야 하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아픔으로 그를 몰고 간다.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작품상과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감독조합 플러스엠상 등을 거머쥔 수작으로 꼽힌다.

주인공 강준희를 연기한 장성범은 서울독립영화제 독립스타상과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 등 2관왕을 차지했다. 연출자 박홍준 감독은 실제 조선소 인사팀에서 4년 6개월 동안 일하며 겪은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완성했다. 박 감독은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올바른 일인가, 나의 삶이 이대로가 맞나 회의감이 들고 고민을 많이 했다. 그 경험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영화로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배우와 연출자로서 이들이 ‘해야 할 일’이 거둔 성과는 그래서 이 이야기가 우리네 현실을 가장 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드러내고 있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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