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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바다를 지켜내는 법

안희연

시인.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글을 쓴다. 시집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당근밭 걷기〉와 산문집 〈단어의 집〉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등을 냈다. 산문집 〈단어의 집〉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등을 냈다.

거실에서 무언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났다. 황급히 나가보니 테이블에 올려둔 꽃병이 넘어져 있었다. 꽃병 크기에 비해 많은 꽃을 꽂은 탓도 있겠으나, 궁극적으로 꽃병 속의 물이 부족해 생긴 문제인 듯했다. 좁은 공간에 밀집된 꽃들이 더 이상 빨아들일 물이 없게 되자 무게중심을 잃고 쓰러진 거였다.
꽃병은 아깝지 않았지만 꽃들에게 미안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이렇게라도 탈출을 감행했을까 싶었다. 일단 꽃을 한곳으로 구출한 뒤 청소기를 돌려 주변을 정리했다. 두 개의 꽃병을 챙겨 이번에는 꽃과 꽃 사이의 틈을 최대한 확보했다. 물도 정량으로 채웠다.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글생글 웃는 꽃을 보며 사람 사는 일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꽃병 속의 꽃들은 비좁은 방에 갇힌 ‘나’이기도 했으므로. 언젠가 나도 저 꽃처럼 문을 박차고 나간 적 있다. 나를 둘러싼 세상에 갈증을 느끼며 새로운 에너지를 찾아 떠났던 때가.

여행. 20대의 나를 이끈 모험의 실체는 여행이었다. 그 시절 내가 몰두했던 여행은 관광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미리 루트를 짜 유명 관광지와 맛집을 찾아다니는 방식은 성미에 맞지 않았다. 그때는 종이 지도로 여행하는 일이 흔했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도중 길을 잃는 것이 여행의 활력이었다. 그 나라를 대표하는 문학가의 생가, 문학관, 서점, 묘지는 내 단골 코스였고, 도시를 떠날 땐 어김없이 그들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의 세부는 그때그때 달라졌지만 마지막은 언제나 똑같았다. ‘시인으로 살게 해주세요.’
내가 지금껏 시를 쓰며 살 수 있는 건 그때 내 편지를 받았던 세계적인 문학가들의 극진한 보살핌 덕분이라 생각한다. 언어에는 주술적인 힘이 있어 바라고 꿈꾸면 정말 그렇게 되니까. 꽃병은 꽃을 가둘 뿐이라고 여겼던 그때, 꽃병 밖 세상에서 내가 보고 겪은 것은 내 안에서 육중한 무게로 출렁이다 어느 날 한 편의 글로 탄생되기도 했다. 멀리 가서도 더 멀리 가기를 꿈꾸던 모험가. 세상 모든 바다 구석구석을 탐사하기 위해 매일같이 닻을 올리던 항해사로서의 시간들. 그날들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빤한 인간이 됐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 이제 그런 여행은 더는 가능하지 않게 됐다. 너무 많은 아름다움을 경험한 탓에 웬만한 장면에는 감동을 느끼기 어려워졌다. 방탄조끼를 입은 것처럼 날이 갈수록 충격에도 무뎌졌다. 휴가를 붙여 써도 겨우 일주일쯤 떠날 수 있을까 말까 한 내 삶은 투자 대비 효율이 중요한 속도전이 된 지 오래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더욱 실감한다. 꽃병이라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꽃병 속의 물이라도 마르지 않도록 공급할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젊은 날의 나를 움직여가던 내면의 동력은 어디로 휘발됐을까? 이제 나는 꽃병 속의 삶이 답답하더라도 꽃병을 떠날 생각은 하지 못한다. 이런 생각의 변화를 나이 듦의 결과로 치부하고 싶지는 않다. 모험의 의미는 삶의 시기마다 달라지기 마련이고, 애초에 모험이란 종류를 나눠 우열을 가리기 위해 존재하는 가치도 아닐 것이다. 그리하여 요즘 내 삶의 모토는 ‘일상의 모험가 되기’다. 진정한 모험가는 모험이 구현되는 장소보다 모험의 본질에 집중하는 사람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도 ‘30대의 나’가 감행했던 가장 위대한 모험을 떠올려보라고 한다면 이 장면을 꼽아야 할 것 같다. 남편이 평생 숙원 사업이라며 수년을 조르는 통에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끌려갔다. 왜 이런 쓸데없는 일을 벌였냐며 신경을 바짝 세우고는 물 한 모금도 삼키지 못할 만큼 긴장하고 있었다. 어쨌든 뛰어내려야 끝나기 때문에 가이드의 지시에 맞춰 무거운 배낭을 메고 내달렸다. 발이 붕 떠오르는 느낌이 났다. 그리고··· 무섭다기보다 놀라웠다. 인간인 내가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시야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울기 시작했다. 내 안에서 나를 짓누르던 온갖 미움이 잘게 부서지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중력의 영향력 아래로 돌아왔을 때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이제 나는 모험을 다시 정의한다. 모험이란 내 안의 얼어붙은 땅, 즉 경계심이나 오만, 편견, 권태, 허무, 공포, 불안 같은 감정을 잘 다스려 일상을 지킬 작은 불빛을 켜는 일이다. 꽃병 속의 세상이 지긋지긋하게 여겨질 때 꽃병에도 고충이 있을 거라며 함부로 훼손하거나 폄훼하지 않는 태도. 물 없는 꽃병 속에서도 아름답게 말라가는 드라이플라워가 되는 일. 아이러니하지만 나는 어디로도 떠나지 않는 모험가가 되고 싶다. 바다 곁에서 살아가며, 바다가 잘 보이는 창을 매일같이 정성으로 닦는 일로 나만의 바다를 지켜내는 항해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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