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그놀리아 꽃과 매그놀리아 리프, 카모마일, 시더 우드 등 오르너 오 드 퍼퓸에 들어가는 향수의 재료들을 감각적으로 포착한 순간.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알려오는 꽃, 목련. 짊어진 임무도 숭고한데 이름마저 ‘나무에서 핀 연꽃’이라니 고귀하기 이를 데 없다. 이솝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오르너(Aurner) 오 드 퍼퓸’(이하 ‘오르너’)은 바로 이 목련, 매그놀리아를 메인 노트로 하는 향수다. 그렇다고 ‘플로럴 노트’의 범주로 분류하기에는 향이 미묘하게 다르다. 풍성한 꽃향기가 농밀하게 발산되는 것 같다가도 어느새 꽃의 장막 뒤에 숨어 있던 ‘쿨’한 미네랄 향조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며 신비로움을 더한다. 시간이 지나면 부드러운 꽃의 베일에 이질적인 질감을 더하는 이파리와 강인한 나무의 흔적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솝다운’ ‘이솝스러운’이라는 형용사가 어색하지 않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전통적인 플로럴 향수에 반기를 들 듯 매그놀리아라는 재료를 독창적이고 과감하게 재해석한 주인공, 오르너를 만든 조향사 셀린느 바렐(Ce′line Barel)과 이야기를 나눴다.
테싯에 이어 이솝과 두 번째 협업 작품으로 오르너를 세상에 선보인 조향사, 셀린느 바렐.
한국의 이솝 팬들은 당신이 만든 ‘테싯(Tacit) 오 드 퍼퓸’(이하 ‘테싯’)을 계기로 이솝의 향수 유니버스를 탐닉하게 됐다고 말합니다. 이솝으로 인도하는 이정표 같은 향수 테싯에 이은 당신의 두 번째 향수 오르너가 곧 공개되는데, 조향사로서 어떤 감정이 드는지 궁금합니다
오르너에는 업계에서 흔히 쓰지 않는 매그놀리아 리프(잎)와 호불호가 갈리는 로만 카모마일 같은 까다로운 노트를 사용했습니다. 로만 카모마일을 추가할 때는 상당히 걱정했던 기억이 나네요. 최종적으로 향을 완성하기까지 여러 번의 수정 과정도 있었지만, 이솝의 향수에는 독특한 개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무난하거나 대중적이지 않게, 평범하지 않은 재료를 활용해 호기심과 경이로움을 자아낼 수 있도록 말이죠. 결과적으로 이솝의 접근방식과도 잘 맞아떨어지는 향이 탄생한 것 같습니다.
이솝과의 첫 만남은 2006년이었고, 2015년에 테싯을 만들었죠. 오랜 인연을 바탕으로 2021년에 다시 만나 오르너에 대한 브레인스토밍을 시작했습니다. 여러 차례 편안한 만남을 가지면서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궤를 같이하는 예술적 비전을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미적 감각과 가치관, 문학에 대한 감상, 여행 방식, 미지의 세계나 이국적인 것을 대하는 방식마저 닮았더라고요. 그럴수록 상호 존중은 더욱 공고해졌죠. 오르너를 위한 무드보드에는 여러 사진과 일러스트레이션, 말린 허브와 말린 꽃 등 흥미로운 영감으로 가득했습니다. 오르너가 어떤 모습의 향으로 승화할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호기심의 캐비닛(Cabinet of Curiosities)’ 같았어요. 초기 기획안을 바탕으로 개발을 시작한 후 프랑스 남부 그라스에 모여 원료 조합을 리뷰하고 수정하며 재검토하는 과정을 수차례 거쳤습니다. 메탈릭한 우디 향을 구현하기 위해 파촐리와 시더 우드를 특별한 방식으로 추출했는데, 시향할 때마다 극도의 차가움을 느낄 수 있었죠. 이를 통해 플로럴 노트의 신선함과 아로마틱한 요소, 스파이시한 특성 사이에 극적인 대비가 형성될 수 있었습니다. 소수 정예 팀으로 협업한 덕분에 기존의 틀을 깨고 한계를 뛰어넘는, 희귀하고 대담하며 마법 같은 플로럴 향수를 탄생시킬 수 있었습니다.
매그놀리아 꽃과 매그놀리아 리프, 카모마일, 시더 우드 등 오르너 오 드 퍼퓸에 들어가는 향수의 재료들을 감각적으로 포착한 순간.
다른 브랜드와 달리 이솝과의 협업에서만 느낄 수 있는 차별점이 있다면
이솝에는 ‘간결한 것이 더 아름답다’는 철학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다양한 요소를 한데 모아놓지만, 차차 피상적인 것 또는 본질적이지 않은 것을 덜어내는 과정을 반드시 거칩니다. 저는 언제나 향수를 통해 소비자의 경험을 어떻게 혁신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을지 자문하는데, 이솝이라는 브랜드에 내재된 ‘정제된 고급스러움’이라는 컨셉트가 끊임없는 자문에 대한 답이 된 것 같습니다. 이솝의 향수에 담기는 ‘모든’ 요소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원료 선택은 물론 그 원료의 원산지를 택할 때도 예외가 없어요. 일반적으로 향수를 개발하는 과정에는 너무 많은 검열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모두가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느라 급급한 경우를 자주 보죠. 하지만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뭔가 대담한 시도를 할 때 주변의 의견을 하나하나 따지게 되면 진정한 발전이 어렵습니다. 이솝은 언제나 과감한 결정을 내리는 데 주저하지 않아요. 팀원들 사이에 어떤 장벽도 존재하지 않았고, 개방적이고 늘 솔직했죠. 이는 강력한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한 핵심 요소입니다.
오르너 향에 대해 좀 더 얘길 나눠볼까요? 분명 매그놀리아가 메인 재료라고 했는데, 익히 아는 매그놀리아가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매그놀리아를 구현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색다른 느낌입니다. 독창적인 매그놀리아 향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나요
오르너를 흥미로운 향으로 만든 데는 로만 카모마일과 매그놀리아 리프의 조합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매그놀리아 리프는 신선하지만 다소 얇고 섬세한 뉘앙스라 그 자체로는 보디감이 부족할 수 있는데, 로만 카모마일이 이런 플로럴 향에 보디감과 볼륨감을 더해주죠. 시더 우드와 파촐리의 신선함을 더욱 극대화하는 역할도 합니다. 흥미롭게도 약간 가죽 느낌을 내기도 해요. 특히 플로럴 노트와 만났을 때 가죽 특유의 동물적 뉘앙스가 더욱 섬세하게 발산됩니다. 결과적으로 플로럴과 시더 우드 노트 사이에서 일종의 텍스처를 만들어내 눈앞에 어떤 감촉이 그려지는 것 같은 공감각적 심상을 펼쳐냅니다. 이처럼 로만 카모마일은 여러 요소를 이어주는 중요한 원료입니다. 건조된 형태에서는 다소 특이한 향을 내기 때문에 플로럴한 톱 노트와 아로마틱한 하트 노트를 연결하기 위해 조향사의 전문적 기량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매그놀리아 꽃과 매그놀리아 리프, 카모마일, 시더 우드 등 오르너 오 드 퍼퓸에 들어가는 향수의 재료들을 감각적으로 포착한 순간.
한국에서 목련은 겨울이 지나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꽃, 하지만 정작 봄이 절정에 다다르면 땅바닥에 짓이겨진 꽃잎으로 기억되는, 애수 어린 꽃이기도 합니다. 당신에게 매그놀리아는 어떤 정서와 어떤 이미지로 대변되는지 궁금합니다
매우 복합적입니다. 매그놀리아 꽃은 잘 익은 과일처럼 톡 쏘는 플로럴 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반면 매그놀리아 리프는 상쾌하고 신선하죠. 마치 으깬 잎과 라벤더 사이의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매우 복합적이면서도 깨끗하고 밝으며, 풍성한 느낌으로 대변됩니다. 시트러스에 가까운 그린 향조도 갖고 있어 평범한 플로럴과는 달라요. 때문에 이솝의 전형적이지 않은 접근방식에도 잘 부합한다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강한 의지로 피어나는 꽃’이라는 메인 카피가 인상 깊어요. 조향사로서 이 향수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오르너는 굳이 따지자면 우디 플로럴 계열의 향수입니다. 이솝을 위한 플로럴 향을 창조하는 것은 매우 큰 도전이었습니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이솝만의 접근방식을 존중하려고 노력했죠. 이솝의 향수는 젠더 구분 없이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에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원초적이면서도 약간의 샤프함이 느껴지는 향기 DNA를 반영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결과적으로 독창적이면서도 색다른 향을 만들어낼 수 있었어요. 오르너는 매우 개념적인 향수이기에 특정 꽃을 지칭하기는 어렵습니다. 매그놀리아, 로만 카모마일 등 구체적인 원료를 잠시 잊고 마음이 끌리는 대로 향을 느껴보길 바랍니다. 뿌리는 사람에게 자연의 일부이자 근원의 일부로서 자기 자신과 이어질 수 있도록 매개체가 돼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