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dict
– 메르세데스 로드스터 가문에서 SLC와 AMG GT C가 가져가고 남은 마지막 지분을 가졌다. 덕분에 희소가치가 올라갔다
Good
– 300SL만 나오면 명함을 내밀 수 있다
– 카푸어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영역의 차, 오해할 일 없음
Bad
– ‘왜? SL을 골랐는지?’ 설명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
Competitor
– 포르쉐 911 GT3 : 조종성능과 균형감 그리고 출력의 전달과정에서 더 높은 희열을 선사할 것
– 페라리 포르토피노 : 희소가치와 고객 충성도, 브랜드 가치….. 한수 접고 들어간다
전설의 부활이라 일컫는 메르세데스 AMG SL 63 4매틱+
스포츠카 히스토리에서 거론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모델이 1957년부터 1963년까지 생산했던 메르세데스 벤츠 300SL(R198)이다. 럭셔리 브랜드 메르세데스 벤츠가 레이스카로 만들기 시작했던 이 차는 사실 1955년 190SL이 2년 더 빨리 세상에 나왔지만 미국의 자동차 판매상 맥스 호프만으로 인해 북미에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리고 이런 300SL의 직계 모델로 손꼽히는 모델이 바로 이번에 시승한 메르세데스 AMG SL 63 4매틱+다. 기다린 후드와 짧은 트렁크 데크 리드라는 이상적인 차체 비율. 두 개의 터보차저로 과급하는 V8 3,982cc 가솔린 엔진으로 무려 585마력을 발휘하는 담대한 출력. 상쾌하게 열리는 소프트 컨버터블 탑. 등 정통파 로드스터가 갖춰야 할 거의 모든 것을 갖췄다.
전 세대 모델과 비교해도 좋아진 점이 눈에 띈다. 일단 배기량과 엔진 사이즈를 다운사이징 했지만 출력은 오히려 더 높아졌다. 덕분에 전에 4초대에 머물던 0-100km 가속력을 3초대까지 끌어내렸고 중량도 2천kg가 넘던 것을 그 이하로 경량화했다. 이를 기반으로 섀시 튜닝도 비틀림 강성과 조종성능 역시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해 어느 덧 슈퍼카의 영역에서도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차로 거듭났다. 이전 SL(R231)에서 부족했던 면모를 완전히 채워낸 듯 했다. 차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과 낮고 넓은 차체 중심 설계가 또한 탄탄히 떠 받치고 있다는 점도 차에 오르기 전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이다.
화끈한 디자인, 이것이 로드스터다
디자인은 실로 과감하다. 스포츠카로서 전고는 그렇다쳐도 일단 딱 벌어진 펜더와 빵빵한 리어 엔드 그리고 글래머러스하고 부드럽게 떨어지는 소프트탑 루프는 우아하며 풍족해 보이기에 충분했다. 전후 램프는 펜더라인까지 날카롭게 파고들어 이 차의 가속성능에 대한 절대적인 암시를 품는다.
특히 메르세데스 AMG SL 63 4매틱+은 디테일한 부분에 상당한 신경을 썼다는 점도 눈에 띈다. 우선 네개의 좌우 배기파이프를 통해 AMG 모델 특유의 공격적인 인상을 담았다. 여기에 앞뒤 양옆 범퍼 하단부와 로커패널에 크롬 장식을 심어 고급감을 다시한번 보여준다. 21인치까지 키운 휠과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타이어가 주는 시각적 안정감도 상당하다. 더불어 휠 안쪽을 꽉 채운 브레이크 시스템도 출력과 균형을 이루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실내는 그야말로 호사스럽기 그지 없다. 시트와 대시보드 하단은 붉은 와인빛 컬러로 물들였으며, 센터페이시아는 MBUX로 최신화했다. 스티어링 휠은 다양한 버튼과 가죽 펀칭으로 활용성과 그립감을 끌어올려 탑승자에게 다시한번 시각적인 만족감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스포츠카 특유의 푹 내려앉은 승차감 그리고 허리를 꽉 잡아 조여주는 버킷시트는 다시한번 메르세데스 AMG SL 63 4매틱+에 대한 존재감을 내적으로 각인시키는 듯 했다.
시동을 걸면 메르세데스 AMG SL 63 4매틱+ 고유의 톡특한 배기사운드가 앞을 응시했던 운전자에게 먼저 다가온다. 여기에 화려한 계기판 그래픽으로 주의를 집중시킨다. 이 차는 당초 AMG GT 개발을 위해 만든 새로운 플랫폼 MSA(Modular Sports Architecture)를 기반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어느 한 곳 스포티하지 않은 부분이 없을 정도.
담대한 출력과 운전의 재미
단단히 조여진 스티어링 휠을 돌리며 주행을 시작해보면 이내 이 차의 감각이 온 몸으로 전달되는 듯 하다. 생각보다 묵직하지 않은 스티어링 휠 답력은 엑셀에 힘을 주자 이내 운전자를 시트에 파묻는 듯할 정도로 압도적인 가속력을 발휘한다. 여기에 호쾌하게 터지는 배기사운드는 페달에 더 힘을 실어보라는 듯 운전자를 채근한다.
회전구간에서는 진입 전 피가 거꾸로 쏠리듯 제동을 하고, 거의 찌르듯이 코너에 밀어붙여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는 듯 충분히 버텨준다. 소프트탑 덕분에 무게중심이 더 낮아 회전구간 정점 이후 가속페달을 오른발로 짓이기며 가속하면 극한의 주행 쾌감을 전해준다. 메르세데스 AMG SL 63 4매틱+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메르세데스 AMG SL 63 4매틱+의 최대 토크는 81.5kg.fm인데 2,500rpm부터 이어져 5,000rpm까지 뻗어간다. 독특하게도 최고출력은 이후 5,500prm에서 585마력을 찍는데, 정지상태에서 최고출력을 맛보는 시점이 드라마틱하게 연결되도록 만들었다. 휠 베이스는 2,700mm로 승차공간을 고려하기 보다는 차체 비율에 초점을 맞췄는데, 운전석을 한껏 뒤로 배치하는 로드스터 특성상 속도감이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특히 4매틱+가 구사하는 네 바퀴 굴림의 안정감은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덕분에 훨씬 더 깊고 빠르게 코너를 공략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개입순간이 어색하면 자칫 주행감각을 망칠 수 있는데, 그 시기가 대단히 치밀했고 강도도 적절했다.
주행모드는 컴포트부터 스포츠, 스포츠+ 레이스에 개인화 모드까지 다양하다. 주행모드간 차별화는 대체로 평이한 수준. 기대한 정도만 발휘한다. 배기사운드, 쇼크업소버 강성 등을 버튼 몇 개로 조종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물론 이것도 최근 2~3억원대의 로드스터에서는 평이한 수준이다.
메르세데스 AMG SL 63 4매틱+은 고가의 럭셔리 로드스터로 자리매김하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300SL이라는 빛나는 유산을 이어받아 어디서든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다만 문제는 메르세데스 AMG SL 63 4매틱+만의 고유한 가치가 무엇인가하는 점이다. 아래로는 메르세데스 AMG SLC와 위로는 AMG GTC가 하드코어 버전이 버티고 있다. 경쟁사로 눈을 돌리면 포르쉐 911 GT3 등 기라성같은 모델들이 즐비하다. 적어도 메르세데스 AMG SL 63 4매틱+가 가진 한방이 있어야 하는데 시승 내내 찾지 못했다. 그저 그런 선택을 이 가격으로 할 소비자는 없다. 니치시장을 찾는 다는 명목으로 계속해서 끼워넣기를 하는 바람에 만들어진 결과로 보인다.
지난해 공식 출시한 메르세데스 AMG SL 63 4매틱+은 이전까지 단종설에 시달렸다. AMG GT C가 너무 이목을 끌었기 때문일까? AMG GT S, GT3 에보, 1에디션, 그린 헬 에디션 등 증식하는 AMG GT에 곳간 열쇠를 내준 시어머니의 뒷모습 같았다. 이런 예상을 깨고 등장한 메르세데스 AMG SL 63 4매틱+은 전설의 부활이라며 큰 환영을 받았었다. 하지만 이번 시승에선 이 모델만의 고유한 매력을 찾기에 시간이 너무 짧았다. 또렷하게 개성이 느껴지기 보다는 브랜드의 안정감과 컨버터블의 멋이라는 무난한 기대감에는 부응한다.
메르세데스 AMG SL 63 4매틱+의 가격은 2억 3천만 원 선. 배기량과 브랜드를 보자면 적정한 가격선이다. 동급의 포르쉐나 페라리 등 스포츠카들과 비교해도 가격은 적정한 선이다. 하지만 과거 최고급 스포츠 로드스터 자리를 AMG GT에 물려준 이후 SL은 과거의 영광을 다시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