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 게이트를 보지 마세요” 주인 벤 이스틱이 배기구 너머에서 소리친다. “패턴은 정상이지만, 게이트는 반대여서 혼란스러울 것이니”
그리고 그 말이 맞다. 기자가 이 정도의 집중력과 – 거대하고 무거운 스틱에 대한 – 주의를 필요로 하는 기어변속을 경험한 것은 스캐멀 익스플로러를 몰 때였다. 심지어 ‘WO’ 벤틀리의 우측 조작 4단 기어도 이보다는 더 본능적이다. 하지만 일단 직관을 믿고 원하는 곳에 레버를 밀어 넣는 것을 배우고 나면, 어떤 긴장도 사라진다. 조작할 때 싱크로메시가 많이 있는 것 같지는 않게 느껴지지만 열이 오르면 나아진다. 그래도 2단으로 내릴 때는 신중한 더블 디클러치를 사용하는 편이 좋다. 스캐멜(혹은 공교롭게도 WO 벤틀리)과 마찬가지이다.
이 독특한 벤틀리 T-타입 스페셜에서 어느 기어를 선택하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약 1500rpm을 넘으면 이렇다 할 정점 없이 55kg·m의 거의 평탄한 토크 커브를 그린다. 운전자와 연료를 포함해 겨우 1톤을 가까스로 넘는 무게를 움직이기 때문에 어느 기어에서건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
과감하게 운전하면 비스터의 짧은 직선 구간에서 2단으로 레드라인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실험적으로 3단, 그리고 다시 4단으로 달리면 끝에 있는 콘들의 선에 더 빨리 도달할 수 있다. 대단한 토크다. 표준 실버 섀도 솔리드 디스크 브레이크는 약간 삐걱거리지만 똑바로 잡아당기고 제대로 악물기 때문에 당황할 일이 없다. 과거에는 서보를 통해 작동했지만 실제로는 필요하지 않다. 조향은 매우 쾌적해서, 움직이기 시작하자마자 가벼워진다. 이제 GM에서 가져온 랙과 피니언이 사용되는데, 기존 리서큘레이팅 볼 시스템은 의심할 여지없이 더 모호했을 것이다. 특히 젖은 노면에서는, 이 차의 창조자가 경험한 것처럼.
던롭 레이서 타이어에 열을 가하기 위해 몇 바퀴를 더 돌고 나면 전체적으로는 상당히 제어가 잘되고 심지어 내던질 수 있을 정도다. 떨어져서 보면 비로소 커다란 케이터햄 세븐을 연상케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1960년대 포뮬러 원 크기의 웨트(공교롭게도 오리지널 GT40 타이어와 같은 크기)를 상상할 수 있다면. 그리고 여기에 문제가 있다. 긴 앞부분으로 강조되어 보이긴 하지만 꽤 크다.
이스틱은 이 차의 면적이 구식의 오펜하우저 엔진으로 움직이는 인디 경주용차와 거의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여러분은 아마도 거기서부터 시작하지 않을 것이다. 단서는 섀시 번호 SSSC-2에 있다. ‘실버 섀도 스페셜 섀시 2’의 약자이다.
이 모든 것은 1970년대 초 벤틀리 드라이버 클럽의 열렬한 레이서였던 배리 이스틱이 자신의 MkVI 스페셜에서 뭔가 개선되기를 원했을 때 시작되었다. 그는 두 대의 프로토타입 실버 섀도/벤틀리 T1 섀시가 롤스로이스의 혁신적인 신형 세단(모노코크 구조, 독립형 서스펜션 및 네바퀴 디스크 브레이크 등)을 홍보하기 위해 순회하는 것을 알고는 자신이 한 대를 가질 수 있을지 거리낌 없이 문의했다.
그에 대한 대답은 놀랍게도, 예스였다. 데이비드 플리스토우 회장에 의해 최고위층의 승인을 받았고, 롤스로이스의 마케팅 책임자 존 크레이그는 불간섭적인 접근방식을 고수했다. 부가세포함 1100파운드를 지불한 배링턴 R 이스틱은 6.2L 알루미늄 V8을 포함한 주행 가능한 섀시의 자랑스러운 소유자가 되었다.
다음 문제는 차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유명하고 인정받는 특별차량 제작자 앨런 패젯과 상의했다. 패젯은 필 스크래그 리스터-재규어 ‘몬자나폴리스’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확실한 스케치를 제시했다. 그런데 이를 제작하는 것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것임이 드러났다. 그래서 인정받는 경주용 자동차 제작자 린카에게로 눈을 돌렸다. 마침 슬라우에 있는 그의 설탕 가공 공장 뒤편에 위치했고, 롤라 GT와 GT40들이 조립된 곳과 인접해 작업을 쉽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린카는 기본적으로 전면과 후면 서브프레임을 가져다가 박스형 단면을 가진 스페이스프레임 세로 뼈대에 연결했다. 앞바퀴 더블 위시본과 뒷바퀴 트레일링 암은 유지했지만 세단에 적용된 셀프 레벨링 스트럿 대신 일반적인 코일 오버에 매달았다. 표준 솔리드 디스크와 캘리퍼는 유지되었지만 시트로엥 스타일의 고압 유압 장치가 없는 단순하고 전통적인 (레이싱 용어로) 듀얼 회로 시스템이 앞뒤를 분할하고 마스터 실린더들 사이의 밸런스 바를 통해 바이어스 조절이 가능하도록 변경되었다. 심지어 핸드 브레이크, 경적도 있다.
단지 상황을 복잡하게 만든 것은 배리 이스틱이 동경했던 ‘블로워’ 벤틀리의 정신을 따라 슈퍼차저를 탑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아버지는 베인 타입의 블로워를 원했다”라고 아들 벤이 확인해주었다. 웨이드 유닛은 전쟁 전 애머스트 빌리어스 설계와 마찬가지로 엔진 앞에 위치하며 크랭크축 앞에서 직접 구동된다. 이것이 회전수를 제한하고, 따라서 부스트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강력한 6.2L 엔진이어서 이는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다. 컴프레서는 마치 빈티지 ‘블로워’처럼 2인치 SU 카뷰레터들을 통해 공기를 빨아들인다.
변속기의 경우 벤틀리 R타입 콘티넨탈의 클로스 레이쇼 4단이 선택됐다. 지나고 나서 말이지만 1971년 이후의 섀도우와 T 모델들에 탑재된 GM 하이드라매틱도 잘 어울렸을 것이다. 이것은 상향 변속을 왼쪽으로 왼쪽에 두도록 뒤집혀야 했고 게이트도 반대가 됐다. 하지만 피봇된 링크로 인해 레버의 운전석 끝부분에서 정상으로 돌아간다.
흡기장치를 결정하는 것은 가장 큰 골칫거리 중 하나였다. 원래 배리 이스틱은 분사장치나 터보차징을 시도해보고 싶었고 전자를 위해 메르세데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후자의 경우 크루가 이 분야에서 충분히 멀리 가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 노력의 결실은 결국 뮬산 터보로 귀결되었다. 조심스럽게 기자의 사견을 말하자면 이스틱은 덕분에 최악의 상황을 피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머지는 1960년대의 일반적인 것들이다. 차체는 모리스 곰이 만들고 바퀴는 던롭 레이서를 착용한 미니라이트이다.
배리 이스틱은 1976년 BDC 실버스톤에 처음 출격했지만, 차의 레이샤프트가 부러졌다. 그는 다음 해에 돌아와서 BDC의 랩 기록을 깨고 예선 1위에 올랐다. 그러고 나서 비가 내렸다. 오리지널의 리서큘레이팅 볼 설정으로 인한 약간 예측할 수 없는 스티어링과 언더스티어 경향이 있는 섀시가 나머지 상황을 불러왔다.
이어진 충돌 후 차는 블로워 없이 재건되었고, 나중에 이스틱은 심지어 머드 가드(장식적인 역할이 강한 70년대 스타일의 몰딩), 조명, 번호판을 장착하여 도로를 주행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일을 하러 가기 위해 서류 가방을 싣고 고속도로에 오르곤 했다”라고 벤은 기억한다.
그리고 1981년, 스페셜은 판매되었고, 94년까지는 미국에 있었다. 벤이 이야기를 이어 받았고 이 차에 대한 그의 열정은 빛을 발했다. “원래 계획은 벤틀리의 이름을 르망으로 되돌리는 것이었고, 이것이 첫 단계였다. 실제로 193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롤스로이스는 벤틀리를 인수하며 벤틀리가 다시는 경주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다양한 벤틀리 드라이버 클럽 회원들은 경주에서 그 이름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게 느꼈다. 그것은 매우 복잡한 과정이었고, 아버지를 아프게 했다. 그가 차를 팔았을 때, 내가 말했다. 언젠가 그것을 되찾아 오겠다고. 이 차는 나의 어린 시절이다. 거의 모든 시기의 사진들 속에 내가 있다.
“약 15년 전만 해도 300만 달러에 팔렸지만, 그것은 내 D-타입을 팔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고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리고 4년 전에 이 차를 인터넷에서 보았다. 차에 대한 추적을 이어왔기 때문에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2007년까지 차를 소유했던 밥 할펀은 몇 번의 콩쿠르 행사에 참가한 것 외에는 차에 많이 손을 댈 돈이 없었고, 이것이 차를 살렸다. 결국 주인은 그가 지불한 가격에 차를 나에게 팔겠다고 말했다.”
이 차는 2017년 3월 영국에 도착해 이스틱의 재규어를 돌보는 비스터 헤리티지의 클래식 퍼포먼스 엔지니어링으로 직행했다. “우선, 우리는 단지 액체류를 교체해서 현장에서 주행을 할 수 있게 했다.”라고 재건 및 복구 작업을 수행한 제임스 와딩턴은 말한다. 그러고 나서 이스틱은 2017년 8월 BDC 실버스톤에 블로워 없이 출전했다. 그는 예선에서 2위를 하고 첫 바퀴를 선두로 달렸지만 엔진이 과열됐다. 벤틀리 스크래치 경주를 4위로 마쳤다.
“우리는 원래의 셋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12월에 춥고 습한 기후 테스트를 실시했다. 그리고 나서 모든 너트와 볼트를 제거해냈다”라고 와딩턴은 말한다. “서스펜션과 안전에 중요한 품목은 균열 테스트와 표면 마감 처리를 거쳤다. 배선은 완전히 교체되었고 섀시는 도장되었지만 차체는 원래의 재규어 미드나잇 블루 페인트를 입었다. 미국인들이 옆면에 스티커를 붙였지만, 다행히도 퍼펙션 발렛의 리차드 티퍼가 페인트칠을 구해낼 수 있었다.
CPE의 보스인 마틴 그리브스는 이렇게 덧붙였다. “R타입 변속기는 200마력만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수십 년 동안 벤틀리 스페셜의 아킬레스건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다시 만들었지만 2019년 BDC 실버스톤 이전 테스트에서 랩타임이 떨어져 실패했다. 1년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기어와 샤프트를 재설계하고 다시 제작했다. 샤프트들을 함께 유지하기 위해 ‘핸드커프스’를 착용했다. 그렇지 않으면 엄청난 토크로 인해 분리되고 기어들이 벗겨지기 시작한다.”
엔진은 여전히 원래의 개발용이고 이스틱은 이를 유지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CPE는 블록의 바닥을 강화하기 위해 타이 스트랩을 설계했다. 루츠형 웨이드 슈퍼차저는 원래의 것으로 자동차와 함께 미국에서 돌아왔다. 단, 흡기구 부품 한 개는 작고한 린카의 보스 마틴 슬레이터의 웨일스 소재 차고에서 나중에 발견되었다. 와딩턴은 초크 대신 소량의 연료를 흡기에 주입하는 수동 펌프인 키-가스 시스템을 다시 설치했다. 1930년대 ‘블로워’ 벤틀리들은 정확히 이와 같은 시스템을 사용했다. “그는 그것을 어디에 설치해야 할지 몰랐다”라고 이스틱은 설명한다. “하지만 그것을 넣을 수 있는 유일한 위치는 변속기 커버 위였고, 그것이 원래 있던 바로 그 자리였다
“슈퍼차저가 결정되고 우리는 회전수 범위 전체에서 연료를 올바르게 공급하기 위해 SU 카뷰레터를 개발했다. 이 작업에는 카뷰레터 니들을 올바른 형상으로 바꾸는 작업이 포함되었다. 배리와 린카는 당시 이 개발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
랙 앤 피니언 스티어링을 통합하는 것이 처음으로 가능해진 것도 리빌드를 통해서였다. “크루는 1960년대에 제네럴 모터스와 함께 일했기 때문에, 그것은 GM의 유닛”이라고 이스틱은 말한다. “배리는 1978년 시즌에 맞추려고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원래의 보조가 없는 리서큘레이팅 볼 스티어링은 재규어 서보와 함께 도로용으로 개조되었기 때문에 랙 앤 피니언은 지금까지 테스트되지 않았다.”
이제 다 됐다. 이스틱은 2021년 8월의 벤틀리 드라이버 클럽 미팅에서 열린 BDC 타임즈 트로피 스크래치 대회에서 마침내 우승했다. 6750cc로 업그레이드했다면 쉬웠겠지만 원래의 6230cc를 유지한 결정의 정당성을 입증하며 이 차의 레이스 첫 도전에서 승리했다.
“이 모든 것에 더하여, 이 차는 가장 높은 수준으로 크루의 축복을 받은 유일한 벤틀리 경주용차이다”라고 이스틱은 말한다.
사진 맥스 엘데스톤(Max Edles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