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저널] 자동차와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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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현재 진행중인 연구과제 관련 회의가 있어 오랜만에 모교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가끔은 일 때문에 대학교의 캠퍼스들을 방문하지만 역시 나의 젊은 시절 수많은 추억이 담겨 있는 모교의 방문은 여러모로 많은 의미가 담겨 있어 더욱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밝은 모습으로 캠퍼스를 거니는 수 많은 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같이 점심을 하러 가던 교수님이 코로나19가 공식적으로 종료되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신학기라 더 활발해 보인다고 말씀해주실 때, 문득 여기에서 다양한 전공과 관심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향후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갈 주역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이러한 젊은이들이 향후 우리 자동차산업을 선도하기 위해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가벼운 마음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자동차에 대한 패러다임이 급격히 바뀌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자동차 정책을 주관하는 국토교통부가 23년부터 수요자 중심의 모빌리티 전환을 위해 모빌리티자동차국을 신설하였고 우리나라 완성차 업계를 대표하는 협회인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23년 5월 그 이름에 모빌리티를 추가하여 한국모빌리티자동차산업협회로 그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런 사례는 그간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던 자동차라는 개념이 이제 단순 이동수단이 아닌, 사람들의 생활 전반에 스며들어 영향을 주고받는 개체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자동차 개념의 변화를 체감하는 일은 일일이 사례를 열거하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간 우리 자동차공학도들이 전통적으로 배워왔고 관심을 가졌던 여러 공학계열의 학문만으로는 자동차산업 전반에 걸친 변화의 물결에 대응하기에 분명 한계에 부딪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 우리 자동차공학도들이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롭게 장착하여야 할 도구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그 도구는 바로 ‘인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인문학은 기존의 지식과 정보를 분석·재구성하고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수용하며 변화하는 시대와 사회에 적응을 도모하는 인간의 삶과 가치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인문학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이 아닌 사회적, 정서적, 도덕적, 예술적 존재로서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삶의 면모를 조명하고 그 본질과 목적을 탐구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자동차와 인문학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을까? 우리 인간은 시대와 공간에 따라 다른 문화와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왔고 또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인문학은 인간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고 그것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따라서 인문학은 자동차공학도들에게 자신이 속해 있는 시대와 사회의 특성 및 동향을 파악하고 자동차가 그 속에서 어떻게 투영되고 인식되고 있는지 분석해 주고 다가올 미래에 자동차가 어떻게 진화해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혜안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자동차는 기계장치라는 생각이 주류를 이루어 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동차가 인간의 삶과 사회에 깊이 연관이 되어왔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따라서 자동차가 이제 단순 이동수단에서 모빌리티라는 개념, 자율차·친환경차로 대표되는 미래차라는 개념으로 급속히 진화되는 시기에 단순 기계장치로서 자동차를 바라보는 시각으로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자동차와 관련된 문제는 자동차의 기술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인간적, 문화적, 사회적, 윤리적, 환경적, 경제적, 정치적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율자동차가 운행 중 사고 상황을 만날 때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판단과 행동을 할 것인지, 친환경차의 에너지원과 기술이 환경과 자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미래차의 보급과 확산이 인간의 삶과 문화에 어떤 변화와 영향을 가져오는지 등에 대한 문제들을 고려하여 평가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학적인 사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공학의 기반 위에 인문학의 지식과 이해를 가지고 해당 사안을 분석하여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 자동차는 이제 단순한 기계장치를 넘어 인간의 본질과 가치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수단으로서 진화하고 있다. 인공지능 센서, 알고리즘 등의 기술을 활용하여 인간의 개입 없이 자동으로 운전하거나 전기, 수소, 바이오 연료 등의 대체 에너지를 사용하여 지구환경을 보호하는 미래차의 기술은 인간의 삶과 사회에 많은 혜택을 가져올 수 있지만 동시에 인간의 존재와 삶의 본질, 가치와 윤리, 자유와 책임 등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이와 같이 이제 자동차의 개발에 있어 인문학적 지식은 기술의 발전과 혁신을 인간의 삶과 사회에 적용하고 조화시키는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따라서 자동차공학도들은 그동안 추구해오던 공학적인 전문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특히 자동차공학도들에게 인문학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자동차는 인간을 위해 만들어지는 제품이다. 따라서 자동차공학도들은 인문학을 중심으로 인간의 심리, 행동, 문화 등을 이해하고 인간 중심의 자동차 설계가 가능토록 하여 자율주행자동차와 같이 윤리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 개발에 대해 인간중심의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 또한 개발을 위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협력해야 할 때 효과적인 의사소통과 협력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키고, 끊임없는 혁신이 요구되는 산업환경에서 다양한 사고방식과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인문학은 자동차공학도들에게 기술적인 전문성을 넘어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 윤리적 판단, 소통 능력, 창의력 등을 함양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인문학을 통해 자동차 공학도들은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자동차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인문학적인 관점을 자동차공학분야에서 실제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자동차공학과 인문학의 융합이 필요하다. 이 두 분야의 융합은 기술적인 전문성과 인간 중심의 가치를 결합하여 더 나은 자동차를 만들고 사회에 기여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자동차공학과 인문학은 다른 학문이지만 서로 배울 점이 많고, 협력할 수 있는 학문이다, 하지만 두 분야의 융합은 쉽지 않으며, 융합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자동차공학과 인문학은 각각 인간의 삶과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이 다르지만, 그것들이 모두 중요하고 가치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동차공학과 인문학은 각각의 전문성을 유지하면서도, 서로의 영역과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상호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며 서로의 문제와 과제에 관여하여 그 성과에 참여하는 융합적인 교육과 연구를 추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차 공학과 인문학은 서로의 영향력과 책임을 공유하고 가치와 의미를 소통하며, 서로의 목표와 비전에 공감하고 변화와 발전을 지원하는 협력적인 사회적 활동의 실천이 요구된다. 또한 인문학이 단순한 부가적인 지식이 아니라 자동차 공학 발전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인식을 가지고 융합 인재가 기술적인 전문성과 인문학적 이해를 겸비한 미래 사회의 주역이라는 인식을 확산해야 한다.
 
자동차 공학과 인문학의 융합은 최근 자동차 산업에서 기술적인 혁신과 더불어 인간 중심의 가치와 윤리적 고려가 중요해지면서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몇몇 사례를 소개하면 BMW의 경우 사용자의 운전패턴, 생활 방식, 개인적 취향 등을 분석하여 맞춤형 자동차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고 토요타의 경우 자율주행 자동차의 사고 상황 윤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수집하고 이를 자동차 개발에 적용하고 있다. 볼보의 경우 미래 사회의 변화를 예측하고 이에 맞는 자동차 개발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인문학 연구를 활용하고 있으며, 제너럴 모터스는 전 세계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고려하여 자동차 디자인, 마케팅, 판매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한 분야와 기업에서 자동차공학과 인문학의 융합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때 미래 자동차 개발에 이 두 학문의 협력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동차의 기술은 인간의 삶과 사회에 맞춰져야 하며, 인간의 삶과 사회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자동차 기술을 개발하고 운영하고 평가하고 개선하는 과정에서 인문학적 지식이 인간의 본질과 가치를 존중하고 보호하며 인간과 기술의 조화와 협력을 도모하는데 필요한 이유이다.
 
작년 말 학회 분들과 송년회를 할 때 참석했던 교수님들한테 우리때는 공대의 필수 과목이었던 몇몇 역학 과목들이 지금은 필수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고 적지 않게 놀란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요즘 학생들은 정말 큰일이구나, 공학의 기본이 되는 역학 수업을 필수로 안 듣다니…’ 하면서 우려의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새로운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된다. 고전적인 역학 수업을 안받을 수 있는 분위기 속에서 이제 자동차공학도들은 자신의 관심과 필요에 따라 다양한 인문학 분야를 학습할 수 있을 것이다. 인문학 학습은 자동차공학도들에게 기술적인 전문성을 넘어 인간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엔지니어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자동차공학과 인문학의 융합은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여러 곳에서 그 시도가 이미 이뤄지고 있으며,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두 분야의 시너지를 창출하여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학회도 향후 공학과 인문학의 융합에 대한 논의의 장을 마련하는 역할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지며, 자동차 분야의 선구자 중의 한 분이 남긴 말을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맺고자 한다.

“나는 모두에게 특별한 차가 아니라 특별한 누군가에게 전부가 될 수 있는 차를 만들고 싶었다.”
– 페리 포르쉐 

글 / 이현우 (자동차안전연구원)
출처 / 오토저널 2024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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