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하다 보면 일부 차에서 방향지시등이 제동등과 같은 적색으로 깜빡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차량은 국내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주황색(호박색) 방향지시등이 아니기 때문에 운전자로 하여금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다.
[글] 박재희 에디터
대한민국 도로교통법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 제44조와 79조’에 따르면 ‘방향지시등을 ‘황색’ 또는 ‘호박색’으로 규정’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브레이크 등과 방향지시등은 분리되어서 작동해야 한다’로 적혀있다. 또 브레이크등은 ‘적색’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가시성을 위해 권고하고 있는 방향지시등 색상은 주황색(호박색)이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간혹 보이는 빨간 방향지시등은 어떻게 된 연유로 그런 것일까?
연간 5만대 이하 규모로 자동차를 우리나라에 수출하는 미국 제조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따라 미국 안전기준을 충족하면 국내 규정과 다소 맞지 않아도 국내 판매가 가능하다. 처음 기준은 ‘2만5천대 이하’였으나, 트럼프 정부와의 재협상 과정에서 ‘5만대 이하’로 늘어났다고 한다.
이들 차량은 근본적으로 ‘한미 FTA 협정’으로 인해 국내 도로교통법에서 예외 조항으로 구분된다. 따라서 후방 방향지시등 색상을 빨간색도 허용하고 있는 북미산 차량에 한하여 국내 도로교통법이 아닌, 미국 도로교통법을 적용받는 것이다.
즉, 미국에서 생산되어 수입되는 자동차들의 경우 미국 도로교통법 조항을 충족시키면 국내의 도로교통법규도 만족시키는 것으로 인정된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대표적으로 포드, 쉐보레, 테슬라 등의 일부 수입 차량에서 빨간 방향지시등을 목격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주목할 점은 빨간 방향지시등을 장착한 차량이 위에서 언급한 포드, 쉐보레, 그리고 테슬라 등의 미국 브랜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이유는 미국에 공장이 있고 해당 공장에서 생산된 차량이라면 동일하게 빨간색 지시등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요타, 혼다, 메르세데스-벤츠 등의 제조사에서도 빨간 방향지시등이 장착된 차량을 가끔씩 목격할 수 있다.
주황색 방향지시등에 익숙한 국내 운전자들은 빨간색 방향지시등으로 인해 운전 중 혼란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 브레이크 등과 일체화되어 단순 방향 지시등을 점등한 것뿐인데 급브레이크로 판단할 수도 있고, 사과의 의미로 비상등을 점등한 것인데 고의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아 자신에게 도발하는 것으로 판단해 당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 역시 운전자들의 불편을 수용해 지난해 미국산 수입차 방향지시등 색상을 국내 규정과 동일하게 적용해달라고 미국 정부에 요구한 바 있다. 하지만 정부의 ‘방향지시등 색상 일원화’ 요구는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의 거절 사유는 빨간색 방향지시등이 위험을 유발한다는 구체적인 통계나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운전자들이 혼란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진 적은 없음을 뜻한다. 또 한국 수출용 제조 라인을 따로 둘 경우, 자국 제조사의 생산 비용이 크게 증가한다는 주장도 제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미국 제조사들은 이미 유럽에는 호박색 방향지시등을 단 차량만 수출하고 있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운전 중 방향지시등은 상호 간의 매너를 넘어 안전을 위해선 필수 선택지이다. 주황색 지시등의 탁월한 가시성으로 인해 정부에서도 이를 권장하고 있는 만큼 FTA 이해관계를 떠나, 보다 안전한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불법 개조 신고했는데 무죄” 아무도 몰랐던, 빨간 깜빡이 차량의 비밀
글 / 다키포스트
ⓒ DAKI POST,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콘텐츠 관련 문의 : dk_contact@fastla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