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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47년 전의 첫 고유모델 포니


우리나라 자동차산업 역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첫 고유모델 승용차 포니는 우리나라만의 특색 이자 유산이 틀림 없다. 포니가 처음 등장한 1976년 이후 47년이 지났다. 그리고 3년 후면 50년이 되니 그 역사성은 크다. 그런 맥락에서 포니는 현대자동차뿐 아니라 우리나라 자동차 역사에서 중요한 모델이 틀림 없다.

고유모델 포니의 내/외장 디자인은 알려진 바와 같이 이탈리아의 거장 자동차 디자이너 죠르제토 쥬지아로(Giorgetto Giugiaro; 1938~)에 의해 디자인됐다. 여러 자료들을 통해 보면, 1973년 12월 20일, 이탈디자인은 4대의 포니와 포니 쿠페 프로토타입 1대를 현대차에 납품했다고 한다. 이들 납품 차량은 클레이 모델이 아닌 주행 가능한 프로토타입 이었던 걸로 보인다. 그리고 최종 디자인의 결정이 1974년 2월이었고, 그후 2년 뒤인 1976년 1월부터 판매됐다.

요즘의 CAD, CAM 같은 시스템이 도입되기 전 이었음에도 디자인 결정 이후 2년 후의 양산은 그야말로 초 스피드 개발이었다. 당시의 전반적인 차량 개발 프로세스가 디자인 작업을 포함해서 5년 정도 걸렸던 걸 감안하면 상당히 빠른 것이다. 물론 한국인들의 이른바 ‘빨리빨리’가 작용한 건지도 모른다.

쥬지아로는 포니를 디자인 할 때 포니 쿠페 콘셉트 카도 함께 디자인했는데, 포니 쿠페는 물론 당시에 양산되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모델 쿠페 차량이었다. 물론 그 쿠페는 현재 원작자 쥬지아로에 의해 복원중인 걸로 알려져 있다.

포니는 그 시기에 현대자동차가 기술제휴 업체였던 일본의 미쯔비시의 소형 승용차 랜서(Lancer)의 후륜 구동 플랫폼을 바탕으로 개발된 것이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대중적 승용차들이 전륜구동방식이지만, 그때는 소형 차량도 모두 후륜 구동이었다.

차체 디자인을 본다면 1973년에 나온 랜서가 헤드램프가 돌출된 후드와 펜더를 가진 1960년대 풍의 고전적 스타일이었던 것에 비해 불과 3년 뒤에 나온 포니의 스타일은 직선적이고 기하학적 성향의 정돈된 초현대적 조형을 가진 차체로, 국제적으로도 최신 경향이었다.

양산형 포니는 패스트백(fast back) 차체 형태, 즉 뒤 유리와 트렁크 부분이 매끈하게 만들어진 형태이면서 4도어에 트렁크 리드가 있는 3박스의 구조로 나왔다. 차체 형태는 뒤 유리부터 트렁크 리드가 하나의 면으로 연결된 형태 이었지만, 트렁크만 따로 열리는 구조였다. 즉 차체 형태는 소형 해치백 스타일이었지만, 구조는 세단의 구조였던 것이다.

그런 구조의 포니에 이어서 2박스 차체에 테일 게이트를 가진 3도어 모델이 나온 건 1980년이었다. 포니 3도어 모델은 국내보다는 유럽 시장의 젊은이나 신혼 부부를 위한 콘셉트로 개발된 모델이었다. 물론 국내에도 판매됐지만, 포니 3도어 모델은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은 차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에서는 3도어 쿠페나 해치백은 잘 안 팔리는 건 마찬가지인 것 같다.

포니 3도어 모델은 국내에 판매 될 때 뒤 번호판의 위치가 4도어 모델과 동일하게 뒤 범퍼 아래쪽이었지만, 해외에서는 범퍼 위쪽에 붙이는 형식이었던 것 같다. 국내에서는 그 위치에 현대 엠블럼과 포니의 상장인 달리는 조랑말의 마크가 붙어 있었다.

3도어 모델은 측면에 뒷문이 없이 앞 문이 약 150mm 길게 설계돼 있어서 상당히 간결하고 스포티 해 보이는 이미지였다. 차체 외장 부품은 이렇게 다른 부분이 있었지만, 실내의 인스트루먼트 패널은 4도어 모델과 동일했다. 포니의 인스트루먼트 패널 형태는 커다란 클러스터와 센터 페시아 패널이 하나로 묶여지고 오디오 패널과 연결된 연직형 구성이었다.

클러스터에는 왼쪽이 아날로그 시계가 있고 가운데에 속도계, 그리고 오른쪽에 냉각수 온도계와 연료계가 하나의 다이얼 패널로 묶여서 배치된 형태였다. 엔진 회전계, 즉 타코 미터는 달려있지 않았다. 그 시기에는 엔진 회전수나 토크 같은 개념을 그다지 인식하지 않던 시기였던 것 같다. 변속기는 수동 4단이었고, 1980년부터 자동 3단 변속기도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

포니는 고급형 모델을 내놓으면서 A-필러와 C-필러와 지붕 부분을 검은색 인조 가죽을 씌운 딜럭스 옵션을 내놓았는데, 이 디자인은 마치 컨버터블 모델처럼 보이는 효과를 내기도 했다. 사실 이 시기에는 전 세계적으로 이런 옵션이 마치 유행처럼 여러 메이커에서 나오기도 했었다.

물론 지붕의 표면 마감 재료만을 인조 가죽으로 한 것이고 실제 컨버터블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지붕 부분을 인조가죽으로 덮은 모델은 마치 캐딜락이나 컨티넨탈 승용차같은 이미지가 보여서 고급 승용차처럼 보이기도 했다.

포니는 1982년에 페이스 리프트(face lift) 모델로 포니2를 내놓는데, 이것 역시 쥬지아로의 디자인이었다. 포니2는 C-필러의 기울기를 더 세워서 뒷좌석 머리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이고, 테일 게이트를 설치해 5도어 해치백 구조로 차체를 크게 바꾼다. 그리고 차체 색이었던 도어 섀시(sash)를 검은색으로 처리해 보다 간결하고 모던한 이미지로 정돈했다. 그리고 사각형 헤드램프와 수평 리브의 라디에이터 그릴로 그 당시 유럽의 최신 디자인 경향을 반영하였다.

포니2의 디자인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건 검은색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앞 뒤 범퍼였다. 국산 승용차 최초의 플라스틱 범퍼였던 것은 물론이고, 범퍼에 들어간 빨간색 장식 라인은 그야말로 유럽 디자인의 최신 유행의 상징과도 같았다. 1975년에 나온 포니가 가족의 자가용 차같은 이미지가 강했다면 포니2는 보다 젊은 소비자를 지향하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으로 인해 포니2의 소비자 층도 청년 등으로 더 젊어 지기도 했다.

포니가 직선적인 차체 디자인이었던 데에 비해 포니2는 곡면이 더해졌는데, 특히 뒷모습에서 약간 튀어나온 트렁크 부분-이 부분을 당시에는 세미 노치백(semi-notch back) 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다-의 곡면과 볼륨감은 독특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포니2의 인스트루먼트 패널은 클러스터 독립형의 수평 지향적 구조로 매우 개방적이면서 운전자 중심의 개념으로 디자인돼 새로운 이미지로 어필했다. 그리고 스티어링 휠도 4스포크 형식으로 그 당시의 최고급 승용차였던 그라나다(Ganada)나 코티나(Cortina) 등 유럽 포드에서 개발한 승용차의 것과 비슷한 디자인을 보여주었다.

포니2는 1984년부터는 캐나다에 수출되면서 수출 모델에 적용되던 5마일 범퍼와 격자형 라디에이터 그릴, 수출형 헤드램프를 적용한 CX 모델이 국내에도 시판된다. 이때부터 우리나라 소비자들도 북미 규제가 적용된 대형 범퍼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 모델 포니 시리즈는 디자인은 비록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쥬지아로의 손을 빌렸지만, 우리나라 메이커가 상표권을 가진 고유모델(original model) 이었다. 그 이후 우리나라는 기술 개발과 디자이너 양성을 통해 지속적으로 고유 모델을 개발했고, 이제 현대자동차는 1,000cc경승용차에서부터 8기통 5,000cc 대형 고급승용차에 이르기까지 독자적 기술과 디자인으로 개발과 수출은 물론 새로운 전기 동력 차량을 개발하는 글로벌 2위의 판매량(2022년 기준)을 가진 메이커가 됐고, 한국은 글로벌 5위의 자동차산업 국가로 성장했다.

물론 20세가 후반에 고유모델 개발을 통해 자동차산업을 일으킨 나라는 우리나라 이후에도 1980년대의 말레이지아와 1990년대의 터키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글로벌 규모로의 성장은 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21세기에 들어서서는 아프리카의 신생 업체와, 베트남의 업체 등이 자동차산업에 새로이 뛰어들고 있지만, 하지만 그들 가운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곳이 어디 일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불과 50년 만에 글로벌 규모의 성장을 이루어낸 동시에 상위권에 오르게 된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동차와 자동차산업에 대한 열정과 열망은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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