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정쩡한 건 안 내놓겠다”… 현대차 사장이 밝힌 ‘자율주행 숨겨진 전략’


현대자동차그룹이 자율주행 출시 일정을 ‘의도적으로’ 늦췄다고 공식 선언했다. 박민우 AVP본부장 사장 겸 포티투닷 대표는 지난 11일 판교 포티투닷 본사에서 열린 자율주행 미디어데이에서 “지금 출시하면 어정쩡한 레벨2++를 양산하게 된다”며 완성도 우선 전략을 분명히 했다.
2028년 엔비디아, 2029년 아트리아…계단식 로드맵의 속내
현대차그룹이 확정한 로드맵은 크게 세 단계다. 2028년 상반기에는 엔비디아의 차량용 AI 컴퓨팅 플랫폼을 활용한 레벨2+ 자율주행을 양산차에 먼저 적용한다. 고속도로 등 특정 환경에서 운전자가 전방을 주시하는 조건 하에 핸즈프리 주행이 가능한 수준이다.
같은 해 하반기에는 레벨2++로 영역을 확장한다. 차선 변경, 끼어드는 차량 대응, 비보호 좌회전 등 난도 높은 도심 상황까지 처리하며, 스티어링 휠에서 손을 뗄 수 있는 시간이 대폭 늘어나는 단계다. 이어 2029년 하반기에는 현대차·기아 AVP본부와 포티투닷이 공동 개발 중인 자체 AI ‘아트리아 AI’를 탑재한 레벨2++ 양산차를 선보인다.
박 사장이 강조한 핵심은 순서에 있다. 엔비디아 기반 차량을 먼저 대량 판매해 실도로 데이터를 대규모로 축적하고, 그 데이터를 아트리아 AI 고도화에 그대로 재투입하는 구조다. 외부 플랫폼이 자체 AI의 ‘훈련 파트너’ 역할을 하는 셈이다.

E2E와 VLA, 두 갈래 AI 기술로 대비하다
아트리아 AI의 핵심 기술은 E2E(엔드투엔드) 방식이다. 카메라·레이더 등 센서의 원시 데이터를 입력받아 조향·가감속 명령을 직접 출력하는 구조로, 인지·판단·제어를 하나의 신경망으로 통합한다. 최근 공개된 테스트 차량(아이오닉6 기반)은 8대의 카메라와 1대의 레이더만으로 서울 도심 갓길 차량 회피, 복잡한 로터리 통과를 운전자 개입 없이 수행했다.
동시에 포티투닷은 VLA(시각-언어-행동) 모델도 병행 개발 중이다. VLA는 시각 정보에 언어 기반 추론을 결합해, AI가 자연어로 새로운 규칙을 쉽게 학습하고 의사결정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E2E의 약점을 보완한다. 두 기술을 선택하거나 조합해 시장별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
여기에 미국 합작사 모셔널의 레벨4 로보택시 트랙까지 더하면, 현대차그룹은 레벨2+부터 레벨4까지 아우르는 ‘멀티 트랙’ 자율주행 포트폴리오를 동시에 운용하는 구조가 된다. 박 사장은 지정학적 이슈로 미국 개발 기술이 다른 나라로 이전되지 못하는 상황을 대비해, 서로 다른 자율주행 모델을 유지하는 것이 전략적 방어력이 된다고 설명했다.
2033년 데이터 추월 목표…현실성과 리스크
현대차그룹의 장기 청사진은 2030년대 초반이다. 100MW 규모, GPU 5만 개 이상을 탑재한 자체 AI 데이터센터를 2029년 이후 가동해 자율주행 데이터를 자체적으로 학습·운영한다는 계획이다. 경영진은 2033년에는 자율주행 데이터 면에서 경쟁사를 추월할 자신이 있다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내놓기도 했다.
박 사장은 테슬라·엔비디아 재직 시절 “눈앞의 것을 빨리 하려다 체력을 소진한 게 가장 큰 실패”였다고 회고했다. 현대차가 택한 길은 느리지만 정확한 데이터 축적과 완성도다. 2029년 아트리아 AI가 양산차에 오르는 날, 이 장기전이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판가름 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