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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노동자의 모순적 공포에 대하여 #여자읽는여자

마감을 미리 해두는 편이다. 시간에 쫓겨 마감을 한다는 상상만으로도 롤러코스터를 타고 내려올 때처럼 심장이 찌릿해진다. 덕분에 마감 기한에 아슬아슬하게 맞추거나 마감일을 넘기는 일은 거의 만들지 않는다. 부득이하게 마감일을 늦춰야 할 상황에서는 상대방이 대비할 수 있도록 양해를 구한다.

마감을 미리 하는 습관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프리랜서 에디터인 나는 주로 인터뷰 글이나 청탁 받은 원고 쓰는 일을 하는데 글 쓰는 일에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어떤 원고는 줄줄 잘 써지기도 하지만(그럴 때가 정말 있나요) 어떤 원고는 하루 종일 붙들고 있어도 진도가 도무지 안 나간다.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나도 모른다는 말이다.

인터뷰 콘텐츠의 경우 초고를 쓴다고 끝이 아니라 인터뷰이에게 피드백 받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인터뷰이가 피드백을 얼마나 빨리 줄지, 피드백의 양이나 성격이 어떤지에 따라서도 작업 시간이 달라진다. 단순 수정 사항일 수도 있지만 첨삭 수준으로 무더기 피드백을 받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다음에는 클라이언트의 피드백이 기다리고 있다. 최종에 다시 최종을 거쳐야 비로소 마감이 끝난다.

이처럼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을 고려해서 예측 가능해야 하는 작업 계획을 세우다 보면 ‘이걸 다 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밀려온다. ‘모든 걸 다 망쳐버리면 어떻게 하지?’라는 막연한 공포, ‘마감을 하기 싫다’라는 선명한 마음과도 싸워야 한다. 마감은 앉은 자리에서 집중력을 발휘해서 뚝딱 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마감이라는 말에는 마감을 걱정하는 시간과 마감을 위해 딴짓을 하는 시간이 모두 포함돼 있다.

마감이 없다면 마음이 편할까. 마감 때문에 징징대면서도 마감이 없는 상태, 즉 일이 끊기는 상태가 올까 늘 두렵다. 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메일함에 재미있는 새로운 제안이 들어오기를, 또 다른 기회가 생기기를 남몰래 기다린다. 마감이 없다면 불안해질 나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마감을 하나씩 끝낼 때마다 사리가 나올 듯한 괴로움을 느끼면서도 ‘또 하나 해냈다’라는 자기 효능감에 취하기도 한다.

이번 주 마감을 하는 중간중간 〈작업자의 사전〉을 읽었다. 독서 커뮤니티 ‘들불’을 운영하는 구구와 대중문화 뉴스레터 ‘콘텐츠 로그’를 발행하는 서해인이 일하면서 마주친 100개의 단어를 선정해 각 단어마다 자신들만의 정의를 써 내려간 책이다. 프리랜서, 1인 사업자, 크리에이터 등 기존의 단어가 자신들이 하는 일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는 두 사람은 스스로에게 ‘작업자’라는 이름을 붙인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대체공휴일’에 대해 “대체 나는 언제 쉴 수 있는가 매번 궁금해지는 날”이라고 쓴 서해인의 정의를 보고 큭큭 웃었다. 구구가 ‘피드백’에 대해 “한 끗 차이로 지적이나 악플이 될 수 있기에 고난이도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라고 쓴 문장에 밑줄을 짙게 그었다. ‘레퍼런스’, ‘스몰토크’, ‘바이럴’, ‘많관부’ 등 일하면서 무심코 사용해온 용어마다 두 저자는 각자의 경험에서 길어올린 짧은 정의와 함께 그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다. 언어를 갖는다는 것은 주체성과 주도성을 획득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작업자의 사전〉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일’이라고 뭉뚱그렸던 작업 과정에 얼마나 자잘한 감정과 노동과 사회적 맥락이 포함돼 있는지 깨닫게 된다. 특히 ‘마감’에 대한 구구의 설명을 읽고 내적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나만 이렇게 애증의 마감 인생을 살아가는 게 아니었구나.

마감은 삶의 자잘한 선택들을 좌우한다. 커피를 마시거나 식사하는 일, 사람을 만나고 산책하는 일 모두 마감의 영향 아래 놓인다. 마감은 마감이 없는 기간까지도 지배하는데, 마감이 없는 동안은 그 사실이 자아내는 불안을 마주하며 초조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마감은 있든 없든 작업자의 삶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 구구, 서해인 〈작업자의 사전〉 중에서

또 다른 작업자 서해인은 마감에 대해 “내가 최소한의 시민의식을 가진 사람인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순간들”이라고 정의한다. “제때 마감을 들고 도착한 나를 맞이한 사람은 차분히 바통을 이어받아 달리면” 되지만 “목을 빼고 나를 기다리던 사람은 뒷목을 잡고 달려야만 한다”, “마감은 적어도 둘 이상으로 이루어진 사람들 사이에서 피어나는 시민의식을 고취하기도 하고 또 반대의 이유로 꺾기도 한다”라는 대목을 읽으면서 조금 울컥했다. 나도 잘 몰랐던 내 마음을 알아주는 문장을 만난 것 같아서.

일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던 20대, 일을 통한 효능감에 중독됐던 30대를 지나 40대의 내가 마감을 지키며 일하는 이유는 책임감이다. 나에게 바통을 이어받아 마감을 해야 할 협업자에 대한 책임감, 언젠가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 날이 올 수도 있지만 10년 넘게 애정과 자부심을 가지고 해온 에디터 일에 대한 책임감, 매번 허공에 대고 열심히 외치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내가 만든 콘텐츠를 보게 될 독자들에 대한 책임감.

충실히 마감을 했던 어제의 내가 초조한 마음으로 마감을 하는 오늘의 내 손을 잡아 끄는 상상을 하며, 그럼 저는 이만 다음 마감을 하러 가보겠습니다.

#여자읽는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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