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도덕 규범과 사회계급이 있었던 빅토리아시대, 평등과 사랑으로 약속한 연상연하 커플이 있다. 금기를 깬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은 찰스 레니 매킨토시와 마거릿 맥도널드 매킨토시. 스코틀랜드 글래스고(Glasgow)에 방문한다면 ‘글래스고 스타일’을 정립한 이들 부부의 행적을 좇는 것으로도 충만한 여행이 될 것이다.
찰스 레니 매킨토시는 스코틀랜드의 전통 양식을 기반으로 아르누보 장식을 더한 새로운 스타일을 정립했다. 극단적인 대조가 만들어낸 독창적인 미감이 핵심이다. 이를 대표하는 건물로 스코틀랜드에서 유일한 독립 예술 학교 ‘글래스고 예술 학교(The Glasgow School of Art)’가 있다. 찰스가 설계한 건물로 그를 세상에 알린 작품이자 1892년 학생이었던 찰스와 마거릿이 처음 만난 역사적인 장소다.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건축가로 손꼽히는 찰스의 명성 뒤편에는 아내 마거릿의 조력이 있었다. 매킨토시가 아내에게 쓴 편지 일부만 봐도 그가 마거릿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았으며 또 그녀의 예술적 능력을 인정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마거릿은 글래스고에서 금속공예와 자수, 직물 등 다양한 매체로 작품 활동을 하는 재능 있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이었다. 1900년 결혼 후 찰스와 마거릿은 공동 작업을 했지만, 마거릿의 공헌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녀는 윌로 티룸(Willow Tearoom) 인테리어부터 1900년 미술 애호가를 위한 집 등 찰스의 디자인에 자신의 작품으로 중요한 감초 역할을 해왔다. 특히 출판인 월터 블래키(Walter Blackie)를 위해 설계한 힐 하우스(The Hill House)는 매킨토시 부부의 독특한 협업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걸작으로 꼽힌다. 남편 찰스가 디자인한 건축물부터 가구, 마거릿의 정교한 태피스트리와 게소 패널(Gesso Panel)까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마거릿 맥도널드가 디자인한 게소 패널로 꾸민 백색 공간에 자로 잰 듯한 직선과 유려한 곡선, 장미 문양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높은 등받이 의자가 전위적이다. 영국 미술공예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간결하고 대담한 특징을 지닌 그의 작품은 훗날 20세기 모더니즘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건축디자인에서 신화적 존재였던 찰스 레니는 남편으로서는 사랑꾼에 불과했다. 1927년 두 사람이 6주간 떨어져 지내며 주고받은 편지에는 “당신이 여기 없어서 오늘밤은 조용하고 외롭고 슬프다”고 쓰여 있을 정도니까. 당시 찰스는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였다는 사실에서 디자인 천재도 사랑에 장사 없는 인간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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