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가 유독 고양이처럼 나왔어요. 실제 성격은 강아지와 고양이 중 어느 쪽에 가깝나요
주변에 여쭤봤더니 다들 ‘개냥이’라고 하시던데요(웃음). 사람도 좋아하고, 대화하는 것도 좋아하고…. 이런 면은 강아지 같은데 가끔 엄청 예리한 면모를 보이거나 정곡을 찌를 때도 있어요. 그땐 고양이 같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에디터님 생각은 어때요? ‘
낭만 고양이’죠(웃음). 연기든 예능이든 유튜브든 자기 앞에 주어진 일을 ‘찐’으로 즐기는 사람 같거든요. 혜리만의 낭만이 아닐까 싶었죠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하지만, 사실 제가 낭만적인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감수성은 풍부한데 현실에 밀착된 것들을 더 중요하게 여겨서인지 가끔 제가 낭만적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도 했거든요. 하지만 저만의 즐거움을 그렇게 정의할 수 있다면 그런 낭만을 잃고 싶지는 않네요!
〈응답하라 1988〉부터 〈청일전자 미쓰리〉 〈간 떨어지는 동거〉 〈일당백집사〉까지. 연기해 온 작품들 또한 현실에 밀착돼 있으면서도 따뜻합니다. 누군가를 안아주는 듯한 다정한 이야기에 끌리는 편인가요
대본을 읽었을 때 느낀 감동을 중요시하는 편이에요. 캐릭터보다 시나리오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더 유심히 보게 되죠. 원래 잔인하거나 공포스러운 장르 자체를 잘 보지 못하는 성향도 있지만, 소소한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에 더 끌리는 것 같아요.
기묘한 사건들을 추적하고 해결하는 웹 예능 〈미스터리 수사단〉은 정반대 이야기 아닌가요
그 분야는 좀 달라요. 그러니까 무언가를 파헤치거나 퀴즈를 푸는 건 언제나 흥미롭거든요!
실제로도 방 탈출 게임 ‘마스터’이기도 하잖아요. 왜 재밌나요
게임을 시작하며 특정 테마의 공간에 들어가는 순간, 꼭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비슷한 예를 들자면 놀이공원에 입장한 그 순간부터 온몸으로 느껴지는 환상적인 느낌 아시죠? 현실과 분리되는 듯한 그 감성이 좋아요.
전국 방 탈출 게임방 지도도 보유하고 있다면서요
요즘 스케줄이 바빠 자주 못 갔는데, 그래서 전국에 새로 생긴 곳들을 찾아봤어요. 요즘 홍대에 많이 생겼더라고요. 마음먹고 한 바퀴 제대로 투어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초짜’ 치어리딩 동아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빅토리〉의 필선도 곧 세상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8월 14일 개봉작이죠. 1999년을 살아가는 여고생인 그가 왜 멋있던가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확하게 아는 멋진 친구거든요. 어떤 걸 하면 자신이 행복할지 아는 사람을 연기하면서 속시원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게 참 어려운 일이잖아요. 누가 특기나 취미를 물어와도 단번에 답하기 어려울 때가 있고, 저는 한때 “원래 연예인이 하고 싶었어?”라고 누가 물으면 늘 “하고 싶긴 했는데…”라며 우물쭈물한 적도 있어요. 필선이는 어리지만 열정도 많고, 스스로 누구인지 골똘히 생각해 본 사람이죠. 그를 연기한다면 저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어요.
필선이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건 무엇인가요
힙합입니다. 치어리딩이 소재지만 힙합 댄스를 생전 처음 제대로 배웠어요. 벨트를 아무리 여며도 바지가 흘러내릴 정도로 박시한 옷을 입고, 아주 오랜만에 본격적으로 춤을 췄죠. 사실 제게 익숙한 방송 댄스와 힙합 스트리트 댄스는 아예 다른 분야거든요.
‘하여가’ ‘나를 돌아봐’ 등 1990년대 명곡들이 여럿 등장해요. 1999년에 관해 어떤 기억이 있나요
날짜가 찍혀 있는 어릴 적 사진을 보긴 했는데, 사실 기억에 남는 순간은 많이 없어요. 여섯 살쯤이니까요. 유독 그 향수가 진하게 남아 있는 해는 2002년이에요. 누구에게나 강렬했던 시절이죠. 어려서 축구를 잘 모르니까 동생이랑 나와 놀이터에서 놀고 있으면 온 동네에서 함성이 들렸어요. 골이 들어갔는지 혹은 누가 승리했는지 밖에 있어도 알 수 있던 시절이었죠.
확실히 그 시절의 향수가 주는 희망찬 감성이 있죠
〈빅토리〉를 연기하면서도 그 순간이 훗날 그렇게 남게 될 것 같았어요. 그 벅찬 마음과 희망찬 느낌, 그때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영화라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 참여하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요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빅토리〉로 뉴욕아시안영화제 참석차 뉴욕에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감회가 새로웠겠어요
너무 영광스러운 일이죠! 개막작에 선정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쁜데, 라이징 스타상까지 받았으니까요. 평소에 영어 공부 좀 해놓을 걸 싶어서 이마를 쳤습니다(웃음). 매번 결심만 하고 실천하지 않았던 저를 혼내고 싶었어요.
돌이켜보면 혜리의 삶에서 가장 ‘빅토리’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아까 첫 컷을 찍자마자 마음에 들었던 그 순간. 인생의 큰 줄기에서 찾기보단 오늘 하루 중에서 한번 찾아봤어요. 매일 그 나름대로의 승리가 있고, 속상한 부분도 있고, 화났던 마음도 있을 거고, 여러 감정이 존재하잖아요. 포토그래퍼 실장님이 셔터를 누르는 순간 예쁜 사진이 나와서 ‘이건 오늘의 승리다!’ 싶었어요(웃음).
맞아요. 꼭 승리의 순간이 인생을 돌이켜야 알 수 있는 거창한 일일 필요는 없으니까
당시에는 잘 모르잖아요. 되돌아봤을 때 비로소 참 기뻤고, 영광이었단 걸 알게 되거나 그 순간을 충분히 만끽하지 못한 걸 후회할 때도 있죠. 그래서 저는 그냥 하루하루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더 행복해지려고 해요.
곧 영화 〈열대야〉도 개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드보일드 액션 장르라 긴박한 상황에 놓인 새로운 얼굴이 기대되는데요
도전이긴 했어요. 무서운 걸 잘 못 보는 제게는 너무 실감 났거든요! 이 장르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정말 재미있게 보실 거예요. 매 작품을 준비할 때마다 나의 또 다른 모습은 뭐가 있을지 외형적인 것과 내향적인 면에서 유심히 고민하는데요, 〈열대야〉는 정말 많이 고민한 작품이니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최근 유튜브 콘텐츠 〈살롱드립2〉에서는 정제 탄수화물을 끊었다는 소식을 해명했죠. 그때 다시 “올해 크리스마스 때까지만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만약 먹게 되면 또다시 해명하면 되죠”라고 얘기했던 점이 참 혜리다웠어요
제 탄수화물 섭취 소식에 이렇게 많은 분이 관심을 가질 줄 몰랐어요. 뿌듯해서 자랑 삼아 얘기한 건데…. 만나는 사람마다 “너 이제 탄수화물 안 먹지?”라고 물어봐요. 사실 방금 햄버거 먹고 왔거든요. 여전히 해명하고 다니는 중이에요.
유튜브 채널 〈혜리〉 운영자로서의 나날들은 어때요
막상 촬영할 때는 아무렇지 않아요. 일상을 찍거나 토크할 때는 완전 재밌게 몰입한단 말이죠. 그런데 제 개인 채널이니까 책임감이 큰 나머지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쓰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아요. 다음주까지 편집이 될지, 녹화를 두 개나 끝마쳐야 하는데 스케줄이 맞춰질지, 이런 것들. 예상하지 못한 일은 반드시 일어나고, 생각보다 되게 부지런해야 하는 일이에요. 매니저님이나 제작진들의 고충을 알아가는 중이죠. 야외 콘텐츠를 찍는 날에는 일주일 전부터 ‘비가 오지 말아라’라고 계속 기도해요.
그중 토크 코너인 〈혤’s Club〉을 보면 당신 곁에 건강하고 밝은 사람이 참 많단 걸 실감하게 돼요
제가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와요. 평소에도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죠. 일을 오래 하다 보니 활동 반경도 넓어지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니 어떨 땐 선을 넘지 않을까 걱정될 때도 있고, 어려운 면도 있어요. 〈혤’s club〉에 나와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사실 제게는 너무 어려워서, 아주 정중하고 공식적인 루트로 섭외를 요청드린답니다.
어떤 종류의 사람들을 좋아하나요
딱히 모아지는 특성이랄 건 없고, 그저 누가 봐도 좋은 사람은 좋고 싫은 사람은 싫은 거죠. 웬만하면 다툼이나 언쟁하길 좋아하지 않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을 다 좋아해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다 좋아져요.
특히 〈응답하라 1988〉에서 아빠 역으로 호흡을 맞췄던 성동일 배우가 찾아온 편이 참 재밌었습니다. 또래 친구나 후배들에게 장난을 걸던 당신이 꼭 20대 초반의 혜리로 돌아간 것 같았거든요
선배님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신기한 건 〈혤’s Club〉에 나오시는 분 모두 평소 텐션이랑 똑같다는 거예요. 그러니 저도 게스트에 맞춰 다 다른 텐션이 나오더군요. 처음에는 장도연 언니처럼 기준을 잘 세워서 흔들리지 않는 프로페셔널한 MC가 돼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잘 안 돼요(웃음). 오
오늘도 촬영 내내 깔깔깔 웃었어요. 최근 제일 많이 웃었던 순간은
아까 메이크업 스태프 언니가 브러시를 거꾸로 들었거든요. “거꾸로 어떻게 칠하시려고요!” 하면서 서로 깔깔 웃었어요. 자각하지 못했는데 제가 정말 잘 웃는 편이더라고요. 무언가 큰 사건이 있어서 웃기보다는 그냥 순간순간 좋은 사람들, 특히 좋은 스태프들과 있을 때 웃는 것 같아요,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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