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나티는 짝사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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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두 살의 빅나티는 요즘 어떤가요
겉으로는 매일 공연하고 곡도 계속 내니까 누군가는 제가 열심히 일하고, 청춘을 제대로 보낸다고 생각하더군요. 그런데 작업이나 공연이 없는 날은 그저 ‘텅텅’이에요. 주변 친구들이 스물둘을 훨씬 잘 보내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가끔 노래로 낭만과 젊음을 외치는 제가 모순적으로 보이기도 해요.

누구보다 솔직한 감정을 노래하는 사람인데요
진짜 단편적으로 설명하면, 제 작업실에 창문이 없어요. 다들 첫눈이 온다고 들떠도 저는 몰랐어요. 날씨조차 모르고 지나가는 하루가 많은 것 같아요.

‘노 칼라’ 디자인의 입체적 실루엣이 특징인 재킷과 팬츠는 모두 Jacquemus. 하이톱 스니커즈는 Coach. 볼 캡은 New Era.

‘노 칼라’ 디자인의 입체적 실루엣이 특징인 재킷과 팬츠는 모두 Jacquemus. 하이톱 스니커즈는 Coach. 볼 캡은 New Era.

요즘 당신을 잠 못 들게 하는 고민은 뭐길래요
지금까지 곡에 여자친구를 짝사랑하는 이야기를 주로 담아왔는데, 사귀게 된 이후부터는 그 감정에 대해 쓰고 싶지 않더라고요. 쓴다 해도 굳이 세상에 꺼내고 싶지 않은 것에 가까워요. 그렇다면 이제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고민하다 보니 데뷔 후 처음으로 6개월간 노래를 내지 않았어요. 곡을 쓰긴 하는데, 추구하던 방향과 멀어져 있다는 사실만 깨닫고 성취감이 전보다 덜했죠. 진심으로 다시 곡을 쓰려고 노력 중이에요.

10여년 간의 짝사랑 서사가 담긴 ‘Frank ocean’ ‘Vancouver’ ‘낭만교향곡’ ‘정이라고 하자’ ‘친구로 지내다 보면’ ‘Vancouver 2’까지…. 실제로 사랑하는 대상을 향한 솔직하고 과감한 감정은 빅나티 음악의 뚜렷한 정체성이었습니다. 왜 더는 사랑 노래를 쓰고 싶지 않아졌나요
당사자에게만 들려줘도 충분하잖아요. 그때는 짝사랑하는 입장이었으니까 그 곡을 상대에게 보내기에는 부끄럽고, 발매하면 듣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냈거든요. 앨범이 나왔다는 얘기도 직접적으로 전하지 않았고요. 발매 전날 밤, 이메일로 곡들을 보내긴 했지만. 어쩌면 그 곡들을 세상에 꺼냈던 목적성이 사라진 거니까 그로 인한 혼란이 생겼죠.

슬리브리스 니트 톱은 We11done. 브레이슬릿은 Mihue. 안경은 아티스트 소장품.

슬리브리스 니트 톱은 We11done. 브레이슬릿은 Mihue. 안경은 아티스트 소장품.

수많은 사랑 노래에 과몰입해 온 이들은 어떡하죠? 많은 사람이 당신이 사랑을 이뤄나가는 과정을 응원하고, 그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단 말이죠
하하. 조금 더 기다려주세요. 간혹 이별한 후의 이야기까지 궁금해하는 분들도 있는데, 아쉽게도 슬픈 사랑 노래는 들으실 일 없을 겁니다. 다만 제 이야기에 몰입해 주시는 건 신기했어요. 그 감정이 그렇게 특별하다고 생각지 않았는데 10년이라니 더 극적인 것 같아요. 하지만 한 달이든 1년이든 사랑을 해본 사람들은 모두 느껴본 감정이잖아요. 내밀한 일기장을 꺼내 보이는 것 같은 두려움도 있었지만, 리스너들이 그 일기장을 코팅하고 진공 처리해서 잘 전시해 주었어요. 그 노래들은 계속 남고, 노래를 들었던 사람들도 남았으니까. 저는 축복받았다고 생각해요.

사랑이 큰 주제였던 빅나티의 음악 제1막이 내릴 수도 있겠군요. 그 노래들이 사랑받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진짜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힙합에서도 아티스트가 자기 삶을 얘기하잖아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기보단 메시지의 수신자만 들어도 좋다는 마음이어서 진심이 드러났나 봐요. 보통 상대에게 편지를 쓸 때 ‘이 편지가 퀄리티 있을까? 잘될까?’라는 생각은 하지 않잖아요. 목적성과 진심이 분명했어요. 많은 사랑을 받은 ‘정이라고 하자’는 곡도 진짜 술 먹고 친구들이 “너 이제 그만 좀 해라”고 할 때 썼거든요.

데님 팬츠는 We11done. 검지에 낀 링은 Jiye Shin. 안경과 벨트는 모두 아티스트 소장품. 록 밴드 ‘The Velvet Underground’ 기념 티셔츠와 핀 배지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데님 팬츠는 We11done. 검지에 낀 링은 Jiye Shin. 안경과 벨트는 모두 아티스트 소장품. 록 밴드 ‘The Velvet Underground’ 기념 티셔츠와 핀 배지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데님 팬츠는 We11done. 검지에 낀 링은 Jiye Shin. 안경과 벨트는 모두 아티스트 소장품. 록 밴드 ‘The Velvet Underground’ 기념 티셔츠와 핀 배지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데님 팬츠는 We11done. 검지에 낀 링은 Jiye Shin. 안경과 벨트는 모두 아티스트 소장품. 록 밴드 ‘The Velvet Underground’ 기념 티셔츠와 핀 배지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그렇다면 요즘 새롭게 해보고 있는 음악적 시도는
피했던 장르의 음악을 이리저리 해보고 있어요. 비밀인데, 요즘 키드밀리 형과 정제되지 않은 곡을 마구 만들고 있거든요. 고민과 생각을 내려놓고 마음 가는 대로 해보기로 했어요. 작업에서 즐거움을 찾기 위한 과정이고, 결과를 떠나 고민을 털어버리려는 발버둥에 가까워요. 신기하게도 그러다 보니 제가 모르는 사이에 일이 진척되고 있더라고요.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얼마 전 새 싱글 〈여름이잖아(Feat. 마크 of NCT)〉가 발매됐습니다. 빅나티의 음악 제2막을 열기 전, 기분 전환하기 좋은 곡이죠. NCT 마크를 보고 그가 좋아서 무작정 연락했는데 성사됐다고요
마크 형도 밴쿠버 출신이에요. 그러니 더 애정합니다! 작업은 스케줄 문제로 온라인으로 주고받았는데 그 과정이 흥미로웠어요. 저는 늘 K팝에 관심이 있고, 재밌는 영역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의미가 더 컸죠. 신선한 조합을 찾은 것 같고요. 마크 형은 당시 투어가 한창이었음에도 투어 나가기 전 새벽이나 공항에서 녹음을 보내주었는데, 참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데님 팬츠는 We11done. 검지에 낀 링은 Jiye Shin. 안경과 벨트는 모두 아티스트 소장품. 록 밴드 ‘The Velvet Underground’ 기념 티셔츠와 핀 배지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데님 팬츠는 We11done. 검지에 낀 링은 Jiye Shin. 안경과 벨트는 모두 아티스트 소장품. 록 밴드 ‘The Velvet Underground’ 기념 티셔츠와 핀 배지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최근에는 아이브의 ‘Baddie’ 작사에 참여했고, K팝 스타들과 종종 협업하죠. 이들에게서 얻는 신선한 자극이 있나요
얼마 전 앨범을 구매하면 동반 1인과 함께 밴쿠버 왕복 티켓과 호텔을 선물로 드리는 이벤트를 기획했어요. 당첨자도 나왔습니다. 사실 실현하기 어려운 아이디어여서 사비로 진행했는데요. 어릴 적부터 이러한 즉흥적인 일을 좋아했어요. 돌이켜보면 10년 전 지드래곤 선배가 ‘니가 뭔데’라는 곡으로 1000여 명의 팬들과 뮤직비디오에 참여한 퍼포먼스가 강렬하게 남아 있어요. 앨범을 USB로 발매했다는 점도요. 음악 장르적으로 영향받았다기보다 그런 유연한 방식과 확장성에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요. 진짜 멋있었어요.

지퍼 장식의 와이드 데님 팬츠는 Lu’u Dan. 하이톱 슈즈는 Coach. 키 링은 Alexii. 비즈 브레이슬릿은 Joegush. 비즈 장식의 실버 뱅글은 Portrait Report. 고양이 프린트 장식의 핀 배지는 Joegush. 폴 매카트니 2집 앨범 커버 기념 티셔츠와 머리에 장식한 스카프, 빈티지 핀 배지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지퍼 장식의 와이드 데님 팬츠는 Lu’u Dan. 하이톱 슈즈는 Coach. 키 링은 Alexii. 비즈 브레이슬릿은 Joegush. 비즈 장식의 실버 뱅글은 Portrait Report. 고양이 프린트 장식의 핀 배지는 Joegush. 폴 매카트니 2집 앨범 커버 기념 티셔츠와 머리에 장식한 스카프, 빈티지 핀 배지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당시 짝사랑이 훌쩍 유학을 가버렸던 밴쿠버라는 도시를 사랑하고, 노래 소재로 자주 활용해 왔는데,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도시는 어디인가요
인천이 주는 큰 설렘이 있는 것 같아요. 공항이 있어서 그런 건지, 서울에서 차로 1시간 걸리지만 훨씬 더 먼 곳 같은 느낌이 들어요. 제게는 여자친구를 맞이하러 가고, 또 보내는 곳이라 좀 묘해요. 외국 같은 공간이자 경계 너머에 있는 곳처럼 느껴져요.

‘노 칼라’ 디자인의 입체적 실루엣이 특징인 재킷과 팬츠는 모두 Jacquemus. 볼 캡은 New Era.

‘노 칼라’ 디자인의 입체적 실루엣이 특징인 재킷과 팬츠는 모두 Jacquemus. 볼 캡은 New Era.

지난 5월 진행된 〈엘르 스테이지〉 얘기를 꺼내볼게요. 무대에서 꼭 자기 진영과 상대 진영을 날쌔게 누비는 축구 선수처럼 보였습니다
그날 관객들 대부분이 앉아 계시더라고요. 일으켜 세우고 싶어서 시작하자마자 관객석으로 입장해야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대기실에 있던 샴페인을 한 잔 제대로 ‘때리고’ 출격했죠. 그날의 관객들에 따라 세트리스트를 바꾸거나 즉흥적인 퍼포먼스를 시도하는 편이에요. 가끔 매니저 형이 힘들어하는 것 같아 죄송하지만…. 무대와 관객 사이의 수직적인 느낌을 없애고 싶어요. 특히 단독 콘서트가 아닌 페스티벌이나 학교 축제 무대에서는 노래 이외에 해내야 할 또 다른 도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관객에게 반말을 하기도 하고, 최대한 수평적이라고 느끼게 만들고 싶죠.

그날 무대에서 한 팬이 그린 초상화를 받았습니다. 지금 그 그림은 어디 있나요
제 방에 있습니다. 저는 팬들이 제 모습을 그려주는 게 참 좋아요. 제가 노래를 만들고 공연을 했다면, 그분들은 자신만의 느낌과 방식으로 저를 표현하고 그것을 무대에서 직접 전하는 과정이 하나의 예술처럼 느껴졌어요. 무대 위에서는 눈에 잘 들어와요. 그냥 지나칠 수 없더라고요.

슬리브리스 니트 톱은 We11done. 브레이슬릿은 Mihue. 안경은 아티스트 소장품.

슬리브리스 니트 톱은 We11done. 브레이슬릿은 Mihue. 안경은 아티스트 소장품.

프랭크 오션과 빈지노, 박재범 그리고 송창식까지 그간 영향을 받은 뮤지션에 대한 애정을 자주 드러내왔습니다. 그들은 빅나티에게 무엇을 주었나요
재범 형에게 영향을 받은 시기도 분명 있고, 앞만 보고 음악하는 형이 계속 나아가니까 저도 해볼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죠. 열일곱 살 때는 빈지노 형의 청춘이 부럽다고 생각했고, 열아홉 살에는 지드래곤 선배가 정말 멋있었어요. 20대가 되고는 송창식 선배님이 지닌 근본의 힘을 느꼈습니다. 최근 선배님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마스터 송창식〉에 참여하면서 한 번 더 실감했죠. 아직도 하루를 기타 연습과 발성 연습으로 시작한다고 하셨어요. 매일 정해진 시간에 말이죠.

MLB 어센틱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로고 볼 캡은 New Era. 데님 쇼츠는 Bottega Veneta. 슈즈는 Neu_In. 발목을 감싼 레더 벨트는 Aesthetics Gallery. 바시티 재킷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MLB 어센틱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로고 볼 캡은 New Era. 데님 쇼츠는 Bottega Veneta. 슈즈는 Neu_In. 발목을 감싼 레더 벨트는 Aesthetics Gallery. 바시티 재킷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빅나티는 음악을 짝사랑하는 것 같나요? 아니면 서로 주고받는 쌍방향의 사랑이라고 보나요
운이 좋아서 많이 노력해서 얻어야 하는 것을 쉽게 얻었다고 생각해요. 사실 살면서 크게 실패해 본 적이 없어서 제대로 사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누가 “열심히 했잖아” 그러면 당당하지 못할 때도 있어요. 열일곱 살에 〈쇼미더머니〉로 향할 때의 마음가짐을 과연 유지할 수 있을지…. 그것도 재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결심을 했으면 이어나가는 재능. 이런 고민을 하는 중이고, 곧 해결해야겠죠. 저는 항상 음악이 저를 선택해 줬다고 느꼈어요. 근데 요즘은 자기가 선택해 놓고 답을 주지 않는 것 같아요. 다시 사랑을 갈구하고 있어요(웃음). 제가 더 열심히 사랑하려고요.

사랑과 낭만을 얘기하면 구닥다리 취급을 받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감정에 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래로 얘기하는 빅나티는 낭만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인류애라고 생각해요. 오늘 아침에도 조깅하다 신기한 광경을 봤는데, 제 앞에서 에어팟을 끼고 달리던 분이 아는 분을 마주치고 인사를 건네더군요. 하지만 인사 내내 에어팟을 빼지 않는 점이 신기하게 보였어요. 귀에 뭔가를 끼고 있으면 세상 모든 소리가 차단되고, 그저 자신이 원하는 소리만 들을 수 있잖아요. 저는 단절과 오해가 자신이 원하는 소리만 듣고 보는 데서 시작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다 보면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도 생길 수 있겠죠. 그래서 인류애가 필요해요. 상대가 무언가를 싫어한다면 왜 싫고 좋은지 묻기보다 한 명이 비난을 시작하면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흐름이잖아요. ‘나만’이 아니라 낭만으로, 서로 지지했으면.

시어링 재킷은 Loewe. 데님 팬츠는 Entire Studios. 슬리브리스 톱과 브라운 볼 캡은 모두 아티스트 소장품. 블랙 더비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시어링 재킷은 Loewe. 데님 팬츠는 Entire Studios. 슬리브리스 톱과 브라운 볼 캡은 모두 아티스트 소장품. 블랙 더비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빅나티는 지금 인류애가 충만한가요
충만하죠. 누가 욕을 먹고 있으면 그를 칭찬하는 댓글에 ‘좋아요’를 슬쩍 누릅니다. 그건 아주 미미하지만, 미미하지만은 않은 일인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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