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무해한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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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무해한 시간들

북한산이 병풍처럼 펼쳐진 김참새 작가의 구기동 작업실에 들어서면 입구의 돈궤 위에 오래된 나무 액자가 놓여 있다. 그 속에는 색이 바랬지만 여전히 섬세하고 고운 결이 느껴지는 자수 작품이 있다. “어머니가 중학교 2학년 가정 시간에 만든 자수 수업 과제물이에요. 여느 평범한 숙제처럼 책상 위에 두었는데 아버지, 그러니까 외할아버지께서 딸의 솜씨를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액자로 만드신 거죠. 저에게는 어머니의 손재주, 외할아버지의 사랑이 동시에 느껴지는 작품이에요.” 오랫동안 창고에 있던 액자가 다른 사람도 아닌 김참새 작가에게 구조된 건 참 다행이었다. 작업실 책장에 꽂힌 오래된 책들 또한 부모님의 취향과 그녀의 유년시절을 방증하는 존재다. 어머니의 꿈이자 취미의 동반자였던 서예본, 아버지가 애용하던 사전, 어머니가 하루하루 써 내려간 육아 일기. 그중에서도 세밀화에 가까운 묘사가 인상적인 동식물 도감은 김참새 어린이의 일상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꽃과 식물이 가득한 페이지는 꽤 너덜너덜한데, 이 또한 늘 식물을 가꾸던 아버지께서 구입한 책이라고. 꽃 그림을 보며 자란 소녀는 이제 자신의 마음을 그림에 투영하는 작가가 됐다. 가족의 시간과 애정이 묻어나는, 평범하지만 비범한 물건은 작은 씨앗이 되어 오늘도 김참새 작가의 인생을 무럭무럭 자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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