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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보이스] 너 혹시 페미야? 물론이다

“너 혹시 페미야? 물론이다.”
혜지는 어느 날 어머니가 털어놓은 이야기에 당황했다. 주기적으로 혜지가 사는 오피스텔을 방문하는 어머니가 그동안 건물 주차 관리원 아저씨에게 ‘구박’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아줌마, 차 빨리 빼. 아줌마, 차 그렇게 대면 안 돼요” 같은 식으로 차를 대고 나가는 그 짧은 시간에 매번 따라다니며 트집을 잡는다는 거였다. 어머니가 운전 경력이 긴 데다 늘 침착한 운전자임을 아는 혜지는 의아했다. 이야기를 꺼낸 어머니도 처음엔 ‘성질 희한한 아저씨다’ 하고 넘겼다. 하지만 번번이 그러다 보니 여기만 오면 주눅이 든다고 했다. 그런데 혜지가 놀란 이유는 따로 있다. 주차 관리원이 혜지의 아버지에게 깍듯하게 대하는 걸 몇 번 본 적 있기 때문이다. 물어보니 아버지는 이곳을 오가며 불쾌한 일이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어머니에게는 매번 스트레스였던 관리원의 존재를 아버지는 특별히 인식도 못하고 있었다. 혜지는 가명이지만, 이건 대학시절 친구의 이야기다. 운전을 시작한 이후 내게도 비슷한 경험이 수두룩하게 생겼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괜한 불신과 화풀이를 받는 일 말이다. ‘성질 희한한 아저씨’들은 여성의 삶에 압도적으로 많이 등장한다. 내게 매번 반말로 짜증을 내던 사람이 다른 남성에게는 평범하게 너그러운 광경은 사소하지만 정확하게 모멸감을 남겼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경험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히게 된다. 자책하거나 위축되지 않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 넘기려 노력하거나, 맞서서 목소리를 높이는 연습을 하거나, 불쾌한 대우를 피하기 위해 오히려 웃는 얼굴을 내걸고 싹싹함을 연출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내가 ‘예민’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 거듭 점검한다.

이런 불신과 질타, 모욕의 총량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부당하게 위축되지 않았다면, 불필요한 감정노동을 익히지 않아도 됐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담대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한편 남성들이 상대적으로 누리는 너그러움의 총량은 어떤가? 혜지의 아버지는 그가 인식하지도 못한 채 누린 너그러움만큼 그 역시 너그러운 인간으로 경비원을 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The man’ 가사처럼 남자들에게 묻고 싶다. ‘모두가 널 믿어준다는 건 어떤 기분이야?’누군가는 눈에 보이는 모욕을 축적하는 동안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관대함을 누린다. 이 차이만큼 남성은 여성 혐오와 무관하게 살아간다. “뭐만 하면 여성 혐오래.” 성차별적 현실을 지적하는 여자들이 자주 듣는 이야기다. 그러나 사실이 그렇다. 전부 여성 혐오다. 미국의 철학자 케이트 맨은 여성 혐오를 ‘남성의 지배성을 지탱하기 위해 작동하는 체제’로 정의한다. 즉 남성에게 잘 보이려고 꾸미지 않는 여성, 그들에게 존경을 표하지 않는 여성, 웃어주지 않는 여성 그리고 나아가 명예, 부, 성공처럼 ‘남성이 누려야 할 것’을 감히 욕심내는 듯한 여성을 ‘단속’하려는 사회 환경이 여성 혐오다. 머리가 짧은 여성을 폭행하는 것, ‘행복해 보여서’ 아내를 죽이는 것, 대단한 성취를 이룬 여성 메달리스트를 공격하는 것,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특정 여성을 마녀 사냥하는 것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끊임없이 남성의 기분을 맞추라는 ‘가부장제의 질서 단속’, 즉 여성 혐오다. “너 혹시 페미야?” 이 질문 역시 단속의 목적을 띤다. 설마 감히 남성 지배 체제에 도전하느냐는 위협인데, 물론이다. 나는 페미니스트다. 여성 억압에 저항하고 성평등을 원한다.

“너 혹시 페미야? 물론이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여했을 때 사용했던 간판 구호다. 출판사 봄알람의 작은 부스에 깃발처럼 내걸었던 이 구호에 반응이 뜨거웠다. 수많은 사람이 ‘물론이다!’를 같이 외치며 사진을 찍어갔다. 이 작은 깃발이 ‘2024 도서전 명물’ 소리를 들었고, 각종 커뮤니티로 퍼져나갔다. 한국 사회의 무지성적 여성 혐오와 찍어 누르기에 숨죽였던 수많은 이의 울화가 이 깃발 아래서 잠시 터져나오는 것을 느꼈다.여성 혐오 사회는 여성이 억압된 상태를 질서로 본다. 때문에 만연한 여성 혐오와 싸우려 한다면 “본능을 신뢰하는 대신 일탈을 시도”해야 한다고 케이트 맨은 말한다. 동시대 여성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하고 있다. 저항의 국면에서 무언가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일탈이란 원래 편치 않은 것이다. 나는 때로는 낯설더라도 저항의 언어에 한 번 더 힘을 싣고 싶다.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생 겪는 불신과 폭력의 총량을 줄이는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이두루

페미니스트 출판사 봄알람 대표. 현실을 다룬 텍스트와 논의가 여성의 삶에 즉각적으로 개입하는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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