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모어 펌킨〉을 제작한 뒤 불과 1년 사이 AI시장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기술이 굉장히 업그레이드됐다. 종류도 다양해지고, AI 관련 회사도 많아졌다.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전 세계에 8000여 개의 생성형 AI 서비스가 있다. 〈원 모어 펌킨〉이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며 주목받고 있지만 그건 이미 옛날 기술이다. 상징적 유산 같은 거지.
요즘 AI 기술의 화두는
아무래도 음악과 비디오다. 영상 분야는 올해 2월 오픈 AI ‘소라(Sora)’가 발표되면서 관심이 크게 증가했다. 이전에는 영상 쪽은 아예 관심이 없었다. 우리가 시작할 때만 해도 CG 업계 선배들을 만나 얘기를 나눠보면 컴퓨터그래픽에 가장 친화적인 VFX를 하는 분들도 “이거 안 된다”고 했으니까. 10년 뒤에나 가능하지 않겠냐고. 그런데 소라 이후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다. 비디오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퀄리티가 상당히 올라갔다. 새로운 기술이 쏟아지니 우리에겐 득이다. ‘이런 이미지가 구현될까?’에서 이제는 자연스러운 적용을 위한 세부 콘텐츠들이 개발되고 있는 중이다.
마침 유튜브 채널에 새 작품 〈멸망의 시 Poem of Doom〉가 공개됐다
AI 뮤지컬영화다. AI가 보컬과 작곡을 잘한다. 〈멸망의 시〉는 현존하는 최신 기술의 집약체다. 표정을 표현하는 AI, 대사를 하는 AI, 음악과 보컬까지 모두 AI 기술을 조합해 만들었다. 지금의 AI 기술로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보여주고 싶었다. 현재 상용화돼 있는 최고 수준의 서비스를 사용하거나 오픈 AI 모델 소스들을 가져와 커스터마이징하는 식으로 섞었다.
실질적 작업 기간은
2주 정도 걸렸다. AI 아티스트 인력이 여섯 명 정도 되고 다른 전문가도 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자동화된 인하우스 프로세스가 자리 잡힌 상태라 많은 양의 결과물을 빨리 뽑아낼 수 있었다. 200개 뽑는 데 1시간도 안 걸린다. 오히려 선택 작업에 시간이 필요하다.
점차 경쟁자들도 늘어나는데
AI 기술은 누구나 쓸 수 있어야 하고, 앞으로는 1인 크리에이터인 유튜버처럼 초등학생들도 AI로 영상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차별점이라면 우리는 하이엔드 AI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쉽게 촬영 기술을 배울 수 있다고 해서 모두 봉준호나 박찬욱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결국 본질의 차이인 것 같다. 어떤 세계관과 주제의식을 갖고 창작을 하느냐가 경쟁 우위를 좌우할 것이다.
AI 연출은 무엇이 다른가
AI 연출은 내가 원하는 걸 구현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내 기획을 AI에게 던져 AI가 내놓는 수백 수천 개 시안 중에서 기획 의도에 맞는 걸 발굴하고 조합해 설계하는 작업이다. 애초에 스토리텔링 단계부터 같이 작업해야 한다는 얘기다. 원하는 스토리가 완벽하게 짜여 있고, 그걸 그대로 구현하려 하면 안 되는 것도 있다. 그럴 때는 즉흥적으로 스토리를 바꿔야 하는데, 실사 촬영할 때 감독들은 NG가 나면 몇 번이고 다시 찍지 않나. 난 뭔가 새롭고 더 좋은 게 있으면 조합을 잘하는 편이다. 그리고 AI 연출을 먼저 시도하면서 어떻게 하면 하이엔드 퀄리티를 낼 수 있는지 많은 노하우를 얻었다.
스토리적 측면에서 AI와의 협업은 어떤 이점이 있나
AI가 그리 크리에이티브하지는 않다. 그래서 시나리오는 보통 내가 쓰고 AI는 대사를 추천하는 식의 보조적 역할을 한다. 큰 틀은 사람이 잡는 게 훨씬 낫다. 아이디어가 없다면 인공지능을 쓰는 게 좋겠지만, 내 경우는 아이디어가 넘치는 편이라 내가 하는 게 더 빠르다. 다만 국소적인 부분들, 카리스마 있는 대사를 추천받는다든가 할 수는 있다.
AI 장편영화도 충분히 가능할까
아마 내년 정도에는 누군가 내지 않을까? 미국 AI 영화제작자 데이브 클라크 같은 사람들과 얘기해 보면 미국에도 이미 그런 움직임이 있다. 가장 먼저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CG나 VFX 작업이 대체될 것이고. 풀(Full) AI영화도 나오겠지만 복합적 기술을 활용한 콘텐츠의 다각화가 이뤄지지 않을까.
제도적 부분은 아직 미흡하다
지금 AI 관련 제도나 법은 ‘무법’ 상태다. 빨리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 같은 창작자도 그 안에서 좀 더 안정적으로 창작을 영위할 수 있다.
본인이 만든 창작물이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다른 AI 작품의 소스로 활용된다면
표절만 아니면 상관없다. 표절과 레퍼런스는 다른데, AI가 학습을 시키는 건 카피보다 레퍼런스 개념에 가깝다. 인간의 창작도 무의식 속에 축적된 데이터 없이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영감받은 것, 어디서 보고 배운 것이 조합돼 발현되는 게 창작의 원리라고 생각하는데, AI도 인간의 뇌를 똑같이 만드는 걸 비전으로 삼는다. 학습한 이미지를 데이터 토큰으로 분해해 잠재의식 속에 쌓고 수억 개 데이터를 조합해서 나오는 거라 그 의도가 문제될 뿐 카피와는 거리가 있다고 본다.
가까이에서 AI 세계를 마주하며 드는 고민은
AI가 인간의 자리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AI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분명 어떤 분야는 AI로 인해 일자리를 잃거나 힘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AI 민주화가 중요하다. ‘누구만’ 쓸 수 있으면 문제가 생긴다. ‘누구나’ 쓸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의 AI에게 하고 싶은 말
나의 영원한 조감독이자 보조작가. 너는 늙지도 않을 것이며, 근무 태만이나 딴청을 피우는 일도 없이 묵묵히 일할 것이다. 이런 인재를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