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WOONG CHEOL
조각과 회화의 관계성을 시작으로 다양한 장르와 소재를 디지털과 접목해 왔다. 가상과 현실을 혼합한 ‘혼합 현실’을 통해 인간이 현상과 대상을 인식하는 방식을 되짚는다.
매우 더웠던 지난 7월 로마로 갔다. 콜로세움, 막센티우스 바실리카, 팔라티노 언덕, 비너스 로마 신전,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이번 여정으로 로마와 불가리 하우스가 지닌 시간성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
전시 〈영원한 재탄생〉의 첫 번째 키워드가 시간성일 것이다. 작품으로 표현하기 위해 어떤 것을 고민했나
예술은 항상 새로운 걸 창조하는 것 같지만 사실 과거를 복기하고 변형하면서 만들어진다. 이 같은 ‘반복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우리는 시간을 선형적인 개념으로 생각하지만 분명 역사와 시간에는 반복되고 순환되는 속성이 있다. ‘영원한 재탄생’이란 주제에서도 과거와 미래를 연결시키는 개념에 집중했다. 작품을 통해 과거의 어떤 것이 현재까지 연결되고 또 미래로 향할 수 있는지 말하고 싶었다.
흑경이나 곡선으로 구현된 디스플레이 등 몰입감 넘치는 전시실에 작품을 선보인다. 검은 거울 면의 바닥에 미디어 작품이 반사돼 실제로 끝없이 반복되고 순환되는 느낌이 든다
작품을 제작할 때 언제나 공간이 지닌 특징과 한계를 염두에 둔다. 이번 전시실은 가로 공간이 길고 가시 거리가 짧아 넓은 화면을 곡선으로 만들어 몰입감을 줬다. 주변을 어둡게 하고 바닥에 검은 반사판을 두었는데 역사와 시간이 반복되고 재생된다는 내용을 담기 위해 설치한 소재다.
이번 작품은 우주에서 하나의 돌이 만들어진 것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처음에는 이 내러티브를 다루는 것이 상당히 어려웠다. 깊이 파고들어 ‘코어’를 찾는 방식으로 접근하니 돌이 원석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 집중하게 됐다. 광물이 변형되고 열을 받는 과정처럼 과학적이고 근원적인 생각을 엮은 것이 작품의 시작점이 됐다. 우주에서 하나의 돌이 만들어지고, 그 돌이 지구에 오게 되며, 인간이 그것을 발견해 공들여 다듬고, 찬란한 보석이 되는 과정을 작품에서 은유적으로 풀어내려고 했다.
연금술이라는 서사적이고 신화적인 요소 역시 도드라지는데
신화적이고 마법적 요소로 여겨진 연금술은 현재 판타지 같은 장르적 소재로 사용되곤 한다. 하지만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이 가장 잘 담긴 소재가 연금술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돌덩이를 금 혹은 매우 귀한 것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존재이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싶어 한다. 결국 이런 것들이 과학자의 일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현대의 인간에겐 다이아몬드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고, ‘불로불사’까지는 아니지만 과거에 비해 평균 수명이 길어졌고, 일생을 연장하기 위한 시도들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연금술이 지닌 신화적 서사와 연관된다고 생각했다.
전작을 통해서도 물질과 비물질, 가상과 실제, 신화와 과학 등 대척점에 있는 개념들을 연결하는시도를 해왔다
완전히 분리된 것 같은 차원의 것들은 사실 중첩돼 있고 같은 세계에 공존한다고 생각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면 프로메테우스와 이카로스 이야기처럼 어떤 기술의 모티프가 된 것들이 등장하지 않나. 과학자나 유물론자는 신화적 요소를 부정하겠지만 연금술처럼 신화적인 소재와 상상을 통해 영감을 얻고 창의적인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다고 본다.
조각과 영상 매체로 가상공간과 실재하는 공간이 관계를 맺는 ‘혼합 현실’을 제시하면서 가상현실을 관람자에게 제시한다. 여기에 현실에 대한 당신의 어떤 의구심이 반영되는가
지난 시대의 인간이 가상이라는 개념과 더욱 밀접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신화와 종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각하고 삶과 일치시키던 시대였다.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의 삶에는 가상과 현실이 공존했던 것 아닐까. 그런 차원에서 보면 기술에 의한 가상이라는 것은 좀 더 단순한 차원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화폐나 돈이라는 가치도 실은 가상의 것이다. 우리 삶에는 가상이 실제보다 더 실재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작품에 숨겨뒀다.
협업을 통해 불가리 하우스가 품은 140년 역사에서 흥미로웠던 면이 있다면
불가리의 헤리티지 컬렉션을 처음 소개받을 때, 각각의 피스가 어디서 모티프를 얻었는지에 관한 자료를 볼 수 있었고, 각 모티프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로마 여행은 불가리 헤리티지 컬렉션에 영감을 준 역사적 상징을 직접 찾아다닌 계기가 됐다. 카라칼라 목장, 바티칸 등의 다니면서 레퍼런스를 직접 확인하고 불가리가 보석 한 점에 담아낸 수많은 의미를 알게 됐고 매우 놀라웠다. 로마의 유적들, 불가리가 지닌 시간성과 역사성을 체험한 것이 이번 기획전에 선보인 작품의 기반이 됐다.
구름에 산란돼 시시각각 변하는 햇빛의 색, 길을 걷다 순간적으로 마주친 어린 아이와 고양이의 움직임, 일상의 모든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