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천연 향료가 지속할 수 있지 않거나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라 금지되면서 향료 화학은 오히려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했다. 천연물과 흡사한 향을 내거나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를 구현하는 인공 향료가 수없이 개발되고 있는 것. 그중 최근 트렌드는 ‘쇠 맛’, 금속성 향(Metallic Note)이다. 그 자체는 냄새가 없지만 사람 피부, 산소, 물과 닿으면 미량 이온이 화학 반응을 일으켜 뚜렷해지는 철, 구리, 백금, 알루미늄 따위의.
금속성 향을 꽃 향에 더하면 가볍게는 청량한 비누 향이, 무겁게는 가시를 세운 야생 덤불 속 꽃들처럼 날카로운 느낌이 난다. 부드럽고 따뜻한 나무 향을 신비로운 사원 느낌으로, 달콤한 과일을 갓 짠 과즙 에이드처럼 쨍하게 바꿔준다. ‘쇠 맛’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하는 이유.
입문용
샤넬 넘버 파이브로 유명해진 고전 인공 향료 알데하이드는 사실 수많은 화합물을 뭉뚱그린 명칭이지만 향수 노트에서는 청량한 비누나 세제, 조금 더 진하면 최첨단 빌딩 속 화이트칼라들의 잘 다린 셔츠 냄새를 말한다. 풀, 나무 향에 더하면 북구의 차갑고 깨끗한 바람, 물 느낌도 낼 수 있다. 그래서 향수 입문자들이 사랑하는 청결한 비누, 코튼 향 제품에 화이트 플로럴, 화이트 머스크와 함께 광범위하게 쓰인다.
경험자용
금속 계열 인공 향료들이 끊임없이 출시되고, 그로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도 무궁무진해 조향사들은 ‘무한 공부 지옥’에 빠졌다. 자연에도 있지만 합성한 스클라렌(Sclarene)은 따뜻한 침엽수부터 달아오른 쇠 냄새를, 디하이드로미르세놀(Dihydromyrcenol)은 상쾌한 시트러스, 허브 향을 내면서 다른 향에 금속 느낌을 더한다. 라벤더, 시트러스, 루바브, 클라리세이지, 팔마로사 같은 천연 향료도 조합, 농도에 따라 그럴 수 있다. 그래서 ‘허브, 꽃 노트밖에 없는데 어떻게 쇠 냄새가 나지?’ 싶어도 무리가 아니다.
마니아용
향료의 왕으로 꼽히는 다마스크 장미 에센스는 항상 공급이 부족해 고가이며, 생산량과 품질도 들쭉날쭉해 제라늄, 팔마로사 에센셜 오일 등에도 포함된 향기 물질 제라니올(Geraniol)이 널리 쓰였지만 이젠 장미에 캐릭터까지 더한 패키지 같은 향료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예로 로지란 수퍼(Rosyrane Super)는 만개한 장미에 찌르는 듯한 금속 냄새를 더한 지보단(Givaudan)사의 인공 향료로, 고농도면 헤모글로빈, 즉 피냄새처럼 느껴져 개성 강한 니치 향수에 많이 쓰인다. 하지만 천연 장미 향료와 인공 향료를 얼마나, 어떻게 썼는지는 역시나 조향사의 톱 시크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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