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실패한 딩크족이 새내기 엄마에게 보내는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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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alia Blauth /unsplash

ⓒNatalia Blauth /unsplash

신혼생활 3년 차, 맞벌이 부부인 동생 집은 야생에 가까웠다. 열댓 살 된 고양이와 최대 20cm까지 자란다는 육지 거북이와 겁 없이 뻗어 자라는 식물들이 머리의 절반은 노랑머리인 동생과 다정한 제부가 먼지를 마시며 살고 있었다. 그들은 여느 90년대생들이 그렇듯 아이를 가져야겠다는 비장한 각오가 있거나 혹은 딩크족에 대한 굳은 신념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저 매일 정신없이 주어진 하루를 사느라 고민과 함께 먼지를 쌓아가는 청춘들이었다. 10년 차 주부인 내 눈엔 충분히 ‘MZ’스러운 신혼부부. 사실 오늘 이 신생 부부의 집을 청소해 주러 왔다. 누군가는 유난스러운 언니라고 말하겠지만 말이다.

그들은 이렇게 살아도 전혀 문제가 없었고 앞으로도 이대로 살아도 좋겠지만, 오늘은 이 집 구석구석의 먼지를 털어내며 동생에게 가 닿지도 않을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잔소리는 늘 상대의 마음을 건지지 못한다. 그들의 처지를 잘 알아서 이야기를 오래 늘어놓지 못했다. 신생 부부가 심적으로 여유를 갖지 못하고 고민을 외면하며 사는 까닭은 꼭 경제 상황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살림을 펼치고 아이를 길러낼 여유가 꼭 집의 유무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 가만히 들여다보면 임출육을 포기하는 이들에겐 경제적 이유 말고도 원가족과의 관계에서 해결되지 못한 갈등이나 상처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딱 지금 딸 나은이만 한 나이 때부터 동생은 외롭게 성장했다. 부모의 이혼과 언니의 유학생활 때문에 우리 가족은 아홉 살 어린이의 불안을 살피지 못했다. 그녀가 무엇이든 잘 먹고, 어려운 일도 우직하게 잘해내지만 어둠과 벌레를 무서워하고, 자신도 모르게 모든 문을 자주 걸어 잠그는 바람에 열쇠쟁이를 불러 문을 열어야 했던 어린이의 아픔을 제일 먼저 헤아리지 못했다.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와 둘이 살았던 동생은 먹은 것도 없이 살이 올라 마음까지 무거웠다. 우리 자매는 바른 어른, 좋은 부모가 될 자신이 없었다. 그리하여 누군가를 불운하게 만들까 봐 딩크족을 맹세하며 낳지도 않은 아이의 미래를 걱정한 것이다.

ⓒFrank Floers /unsplash

ⓒFrank Floers /unsplash

동생의 어둠이 조금씩 걷혀가기 시작한 때는 지금의 제부를 만나 가정을 꾸리기 시작하면서다. 내가 만든 가족 안에서 새로운 애착을 형성하고 놓치고 살았던 소박한 삶의 기쁨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타인, 내가 스스로 선택한 가족과 하나씩 수집하는 삶의 단계를 만끽하기 시작했다. 그 어떤 잔소리보다 근사한 고백을 지금으로부터 꽤 오래전인 2000년 〈계간 문학〉 여름호에 게재됐던 한강 작가의 자전적 소설 〈침묵〉에서 들려주고 싶다. 결혼 이후 아이를 낳는 것, 아이에게 삶이라는 터널을 지어주는 것에 대해 작가가 고민하자 그의 남편이 건넸다는 대목이다.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아. 여름엔 수박도 달고, 봄에는 참외도 있고, 목마를 땐 물도 달잖아. 그런 거 다 못 보게 해주고 싶지 않아. 빗소리도 듣게 하고, 눈 오는 것도 보게 해주고 싶지 않아? 느닷없이 웃음이 터져나온 것은 그때였다. 다른 건 몰라도 여름에 수박이 달다는 것은 분명한 진실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열심히 집 안의 먼지를 거의 걷어낸 즈음, 동생이 시치미를 떼고 슬그머니 임신 테스트기를 들이민다! 우리에게 찾아온 새로운 모험이자 한 편의 이야기다. 그동안 타인의 도움을 병적으로 거부하던 동생이 어쩐지 언니에게 청소를 부탁한 까닭을 이제야 알았다. 10년 먼저 실패한 딩크족으로 살아보니 아이와 함께하는 삶의 기쁨을 알겠다. 그리고 삶에서 ‘절대로’라는 부사는 함부로 붙일 수 없다는 것도 말이다. 한 세월 정신없이 바쁘고 힘겨웠지만, 분명한 건 아이를 낳기 이전의 시간보다 훨씬 밝은 길로 걸어왔다는 건 확신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네 삶이 조금 무료하고 우울해질 즈음, 모든 것이 신비롭게 느껴질 아이의 눈으로 인생을 한 벌 더 입고 덮고 누릴 수 있으니 기대해도 좋다고 장담하겠다.

전지민

여성과 엄마로서 지속 가능한 삶을 고민하는 내용을 담은 〈육아가 한 편의 시라면 좋겠지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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