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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소설이 해외에서 이토록 사랑 받는 이유?

블랙 드레스는 Pushbutton. 슈즈는 Prada. 허리에 두른 스카프와 링, 삭스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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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이라고 일컬어야 할까? 아이돌을 사랑하는 팬의 이야기가 문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데뷔작 〈환상통〉 이후 이희주의 작품 속 인물은 주로 회답을 기대하기 어려운 대상과 폭력적인 사랑에 빠지고는 했다. 지난 10월 말, 작가의 2021년 작품인 〈성소년〉이 미국과 영국의 대형 출판사에 선인세 1억 원을 받고 판매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국내 최대 일간지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선인세 2억… 포스트 한강’. 비슷한 시기에 톨스토이 문학상을 수상한 김주혜 작가의 소식과 함께 다뤄진 해당 기사의 제목은 마치 K팝 아티스트의 ‘빌보드 메인 차트 100 진입’ ‘美 스타디움 공연 성료’ 같은 보도자료 타이틀처럼 명료하고 산업적인 동시에 젊은 작가로서 그가 이뤄낸 성과가 얼마나 드문 것인지 깨닫게 했다. 1990년대 한국을 배경으로 좋아하는 아이돌 납치를 공모한 네 여자의 괴상한 이야기가 영미권 문학계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뭘까? 지금, 성소년들의 세계.

〈성소년〉(2021)이 미국 하퍼 콜린스와 영국 팬 맥밀런에 각각 억 대 이상의 선인세를 받고 판매되었고, 프랑스와 이탈리아 계약도 진행 중이다. 모두 지금 작업 중인 차기작 〈성소녀〉의 우선 검토권까지 요청했는데, 진행 과정이 궁금하다
해외 저작권사에서 괜찮은 작품이 있다면 검토해 보고 싶다는 요구가 있었던 걸로 안다. 올해 국제 도서전에서 내 작품에 대한 해외 반응이 좋았고, 이걸 본 한국 에이전시 측에서 번역가를 고용해 〈성소년〉 관련 자료를 배포했다. 자료가 배포되고 채 2주도 지나기 전에 연락을 받았다. 빠른 일 처리를 보며 선점하려는 저작권사들의 의지가 읽혀 놀라웠다.

K팝 팬의 일상과 모순된 마음을 생생하게 묘사한 〈환상통〉 또한 해외 팬덤에게 소구하는 면이 있지 않을까
〈환상통〉도 제안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환상통〉은 해외에서 선호하는 ‘장편소설’로 분류되기에는 길이가 짧다는 일차적인 문제가 있다. 영미권은 범죄소설 같은 장르 문학에 대한 애호가 국내에 비해 훨씬 명확하기에 ‘아이돌을 납치해 감금한 네 여자’라는 〈성소년〉의 장르적 측면이 와닿은 듯하다. 과도하게 대상을 추종하는 컬트 문화는 서구권에서 익숙한 소재이기도 하다. 맨슨과 그의 광신도를 다룬 〈더 걸스〉 같은 작품이나 자신의 우상인 거물 코미디언에게 집착하는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코미디의 왕〉 같은 작품도 있으니까.

소설의 큰 줄기는 안나, 나미, 미희, 희애라는 네 여성이 아이돌 요셉의 납치를 공모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여성 모두 각기 다른 이유로 불쾌한 구석이 있다. 이들이 숭배해 마지않는 요셉 또한 침대 위에서 꼼짝 못 하는 상황에도 넷 중 가장 젊고 예쁜 미희를 욕망하는 장면이 묘사돼 호감이 가지 않는다
나도 정확하게 비호감이라고 생각한다(웃음). 독자들이 소설을 읽으며 위안 혹은 공감을 얻거나, 나를 닮은 인물을 문학적 인물에서 찾는 것도 독서의 한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나와 정말 다르고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을 만나는 것도 문학이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드라마틱하고, 피카레스크적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요셉의 욕망을 그린 것도 요셉 또한 기본적으로 평범한 남자애라는 걸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남자애가 눈앞에 있는 무수한 여자들의 욕망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전부 받아들일 때, 예를 들어 콘서트 무대 위에 선 순간에는 아주 찰나일지라도 그는 성스러운 존재가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고마움이랄지 연민을 담아 ‘성소년’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아름다운 외형으로 인해 ‘천사’라고 불리는 로봇들이 일상에 등장하는 〈나의 천사〉(2024)에서도 그런 장면이 있다. 찰나의 사진 한 장이 등장인물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누군가를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들이 그 대상의 아름다움을 항상 좇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떤 한순간에 매료된 것이지.

〈성소년〉 속 네 명의 여자는 ‘아이돌 팬’의 특성을 조금씩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환상통〉이 순애에 가까운 소설이라면 이 소설은 요셉, 즉 성소년이라는 하나의 조각에 투영되는 각자의 욕망에 주목했다. 실제로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의 마음을 단순하게 정의하기는 어렵다. 이를테면 대형 기획사에 신인이 데뷔하면 ‘네임드’가 돼 주목받으려고 계정을 파는 사람도 있고, 비인기 그룹을 좇으며 자기 효능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팬덤 문화에 발을 들인 사람으로서 여러 얘기들을 듣고 본 게 있다 보니 다양한 면을 다루고 싶었던 것 같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일반적인 관계에서도 이게 사랑인지 학대인지 그 경계가 혼재된 경우가 많지 않나.

〈성소년〉에서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여자들의 욕망이 대상이 되는 아름다운 남자를 바라보는 주변 남성, 요셉의 매니저 ‘박’의 존재다
아이돌 주변의 남성을 묘사하는 것이 낯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공개방송이나 행사를 열심히 다니던 10~20대 시절을 돌아보면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실제로 보는 시간은 10분 정도에 불과하고, 온종일 우리 옆에 있는 사람은 가드나 줄을 정리하는 사람, 매니저 같은 존재다. 그들에게 팬들을 멸시하는 시선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나는 그게 불쾌하기보다 이유가 궁금했다. 그냥 자기 일을 하면 되는데 왜 그렇게까지 바라볼까? 미워하는 것도 에너지가 드는 일인데 말이다. ‘박’에 대해서만 말하면 본인도 아이돌을 하고 싶었는데 못했을 수도 있고, 스타와 붙어 지내면서 애정과 매력을 느끼는 한편 질투가 나는, 좀 복잡한 감정이 들 수 있지 않을까. 남자들이 아이돌, 팬들에게 보이는 감정의 근원에 대해 알고 싶었다.

범죄 장소의 배경이 된 해안 도시에서 드레스 차림으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동네의 미친 여성의 존재는
지금 작업 중인 차기작 〈성소녀〉에 등장할 전망이라 아직 비밀이다. 일종의 맥거핀 같은 존재로 봐주면 좋겠다. 〈성소년〉과 장소, 시공간을 공유하긴 하지만 아이돌 이야기는 아니다.

‘뒤틀린 에로티시즘’이라고 표현하면 아름답지만 소설 속에서 욕망이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이는 지금 한국의 젊은 여성 소설가들과 이희주의 작품이 구분되는 지점으로 느껴진다. 생리대에서 나는 불쾌한 냄새, 성욕, 임신과 출산같이 증식의 욕망을 언급하는 것을 피하지 않은 이유는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스스로 실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성소년〉을 쓸 당시에는 반발심도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다. 독자들이 원하는 흐름이나 젊은 여성 작가라는 편견에 포섭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랄까. 이 또한 삶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솔직하게 쓰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미술도 좋아하는데, 이불 작가의 초기작을 비롯해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여성기나 여성의 신체적 맥락에 대해 한 번씩 거쳐가는 게 여성 작가에겐 일종의 통과의례 같다는 생각도 들더라. 굳이 비유하자면 작품을 내보이기 전에 스스로 한번 출산하는 과정이랄까. 나 스스로를 한번 벗고 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너무 대표적인 미사여구라 문학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표현들이 이희주 소설에는 심지어 제목으로 당당하게 등장한다. 〈사랑의 세계〉(2021), 〈나의 천사〉, 〈횡단보도에서 수호천사를 만나 사랑에 빠진 이야기〉(2024) 등
이게 내 취향인 것 같다. 키치한 걸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 오히려 너무 솔직하게 말하면 사람이 좀 ‘띵’해지지 않나? 그런 걸 좀 남발한다고 해야 할까(웃음). 자주 언급하는 작가인 미시마 유키오를 비롯해 페드로 엘모바도르 감독의 영화도 굉장히 과잉된 세계를 그려내는데, 그런 지점에 매혹을 느끼는 것 같다.

대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세밀하게 묘사하면서도 표면 아래 지방층같이 절대 아름다울 수 없는 부분까지 궁금해하는 것이 신기하다
사랑하면 더 알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 같다. 아름다움을 좋아하니까 낱낱이 파헤치고 싶은 거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매혹시키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쓰는 과정은 집요할 정도로 무언가에 몰두하는 행위라는 생각을 하기에 더 파고드는 것도 있다. 보통 내 작품에서는 아름다운 존재와 그렇지 않은 존재, 둘 사이의 격차가 중점적으로 다뤄지는데 그걸 극대화하기 위한 설정으로 인간은 차마 따라잡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가진 로봇, 버추얼 휴먼 등의 캐릭터를 등장시키기도 한다. 과잉 역시 문학의 아름다움 중 한 측면이기에 과장을 뒤섞어 얘기하는 거다. 그걸 통해서만 보여지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내면의 아름다움은 외면의 아름다움에 비해 얼마나 초라한가!’ 아이돌 팬들이 종종 하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의 인물이 사실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알쓸신잡〉의 ‘우리가 사랑하는 인간’ 편에서 김영하 소설가가 가까이 있는 사람보다 멀리 있는 사람을 더 사랑할 수 있다고 말했던 것도 떠오른다
아이돌의 아름다움에는 그들을 아름답게 보려고 마음먹는 나의 의지가 가장 크게 작용한다. 그 다음으로는 스태프들의 노고가 있을 테고. 그럼에도 그들이 아름답다면 결과적으로 그건 모든 인간이 각자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이라고 본다. ‘코어 팬’들이 발견하고 매혹되는 부분도 그 지점이다. 산업이라는 화려한 베일에 싸여 있는 틈바구니에서 찰나에 맨얼굴을 본 순간.

비하인드 영상을 비롯한 자체 콘텐츠가 풍부하게 쏟아지고, 출근길이 실시간 스트리밍되며, 어플로 일상을 공유하는 지금 맨얼굴을 짐작하는 게 더 쉬워진 것 같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워진다. 배역과 실재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으니까. 그런 불안정한 상황에서 애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쌍방이 노력해야 한다. 팬들도 우리가 곧잘하는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거짓말이, 그 순간에만큼은 ‘오빠’들이 진심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왜? 우리 역시 그들이 한 순간이나마 내비친 진심을 믿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이기에. 좀 다른 얘기일 수도 있지만 유키 카오리의 만화 〈백작 카인〉의 장면도 떠오른다. 이복동생이라며 등장한 인물이 사실 자신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관계라는 걸 알았음에도 오히려 ‘남이었기에 사랑했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지금 ‘최애’를 보는 내가 그렇다. 도대체 내 인생과 하등 관계가 없는데 왜 이렇게 좋을까, 생각할 때가 있는데 남이라서 가능한 것 같다. 그게 좋을 때도 있는 반면 쓸쓸할 때도 있다. 남이라서, 몰라서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는데. 만일 이걸 관계라고 할 수 있다면 도대체 이 관계를 무엇이라 불러야 하나.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일단 나는 소설가이고, 지금 이 감정이 내겐 너무 소중해서 언어화하려고 노력 중이다.

공개된 지금의 ‘최애’는 NCT WISH다. 문득 이들이 사랑의 천사 큐피드, 소년, 새, 하트 같은 컨셉트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팀이라는 게 당신의 취향에 부합했나 싶기도 하다
지면에서 밝히는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처음에는 팬임을 밝힐 생각이 없었다. 다소 문제적인 소설을 쓰는 입장에서 혹시 그 친구들에게 안 좋은 이미지가 덧씌워질까 봐 걱정이 됐거든. 이건 적어도 매체에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동안에는 계속 팬으로 남아 있을 거라고, 오래 좋아할 것이라는 선언이기도 하다. 그리고 NCT WISH의 컨셉트는 실제로 너무 감격스러울 정도로 취향과 맞아서 매일 관계자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있다(웃음).

‘덕질’의 시작은 기억나지만 그 끝은 대체로 희미하다는 점에서 팬이란 존재는 상당히 무책임하기도 하다
자주 얼굴을 보이던 팬이 사라지면 아이돌은 얼마나 슬플까 하고 상상한 적 있다. 내가 예전에 좋아했던 팀을 비롯해 한 아이돌을 계속 좋아하는 이들을 보면 그들은 정말 아티스트와 같이 성장하고, 함께 어른이 됐더라. 그런 유대감이 부럽다. 그래서 이 팀이 자라나는 걸 지켜보는 행운은 잃고 싶지 않다.

팬들의 욕망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엄마, 친구로 보지만 최근에는 ‘나페스(멤버들의 관계성을 다룬 용어 ‘알페스’에 팬인 당사자를 놓는 것)’라는 용어가 자리 잡을 정도로 아이돌에게 연애나 성애적 욕망을 드러내는 게 흔해졌다. 어떤 시선이 더 흥미롭나
모두 흥미롭다. 〈환상통〉의 만옥이가 그렇듯 나는 대체로 ‘나페스’의 길을 걸어왔기에 팬이 자신을 이모나 엄마로 지칭하는 걸 방어적인 표현으로 봤다. 나이 차이가 나는 남자애들을 이성으로 보는 게 부끄러워서 돌려 말하는 거라고 여겼기 때문에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에 나도 놀란다. 보호자처럼 멤버들의 성장을 지켜보고 싶은 마음, 너무 귀여워서 ‘자식 낳으면 이런 기분일까’ 하는 마음. 내가 팬 당사자라는 이유로 다 안다고 착각한 채 타인의 감정을 재단해 왔구나 싶어서 요즘은 모든 마음을 소중하게 관찰 중이다.

만옥은 “덕질을 어떻게 행복하게 해? 보지 못하는 날엔 눈앞에 없어 괴롭고, 보는 날엔 그가 나를 알아보지 못해 괴로운데”라고 말하는 인물이다. 지난여름 〈엘르〉에 ‘여성의 욕망’이라는 주제로 기고한 에세이에서 산업이 가진 한계와 불합리, 팬의 마음이 가진 모순에 대해 정확하게 짚어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팬과 아티스트 간의 이상적인 관계를 찾아본다면
열심히 속아 넘어갈 각오. 날 속이려는 아이돌의 마음과 기꺼이 속아 넘어가겠다는 마음도 진짜라고 생각한다. 알고자 하면 더 알기 쉬워진 지금, 그래서 덜 궁금해하고 그들이 보여주기로 선택한 모습만 보려고 노력 중이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스스로 말하지 않은 사생활 같은 건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널 위해 이렇게까지 했는데’라는 마음이 들지 않을 때까지 하는 것도 중요한 일 같다. 산업적으로 봤을 때 그 억울한 수준까지 하는 팬들이 돈을 쓰는 ‘귀한 팬’일 거라고 생각하면 좀 무섭긴 하지만.

근작 〈횡단보도에서 수호천사를 만나 사랑에 빠진 이야기〉 후기에 최근 팬픽을 썼음을 밝히며 “사랑하는 마음을 없앨 수 있다면 숙소 앞에 죽치는 것보다 종이 위에 대상화하는 편이 더 나은 접근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존하는 인물에 대한 2차 창작은 〈나의 천사〉에서 ‘천사’ 얼굴이 원본이 된 인물의 괴로움을 묘사했던 것과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선 ‘2차 창작’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대다수가 애정으로 하는 일이거든. 그럼에도 아이돌 팬덤에서 2차 창작이 부정적 뉘앙스를 갖는 건 대상화 논쟁과 결부됐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타인을 대상화할 수밖에 없으며, 동시에 어떤 인간은 대상화되는 데 기꺼이 동조할 수도 있다. 무대 위에서 컨셉트에 맞춰 춤추고 노래하는, 내 식으로 표현하면 ‘천사가 되는 행위’에 대해 아이돌도 즐거움을 느낀다는 걸 완전히 부정할 수 있을까? 아이돌과 팬의 관계는 여기서 시작하는 것 같다. 옳고 그름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욕망이 있다는 걸 알고, 그걸 존중하면서 굴러가는 공동체라 할까. 그럼에도 〈나의 천사〉 속 인물들의 불행을 묘사한 건 그런 공동체를 갖기도 전에 탈락한 어린 인간들에 대한 연민이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천사의 원본이 된 소년들은 자신이 가진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지, 그게 얼마나 착취당하기 쉬운 성질이 있는지 모른다. 더불어 젊고 매혹적인 인물에게 끌리는 아이돌 팬으로서 이런 인물들의 고통을 묘사하는 건 내가 저지른 폭력을 내 손으로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모든 걸 알면서도 아이돌 팬으로 남는 것을 멈출 수 없다면 적어도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도는 알고, 거기에 따른 비판을 감내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K팝 팬임을 드러내며 등단한 작가라는 점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유하게 됐다. 그 정체성 때문에 작품 속 비유들이 축소되어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고민도 있을까
예전에는 그런 부분에서 아쉬움이 없었다. 오히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생각 안 하고, 오해를 생성하는 방식으로 말하고 방치하면서 그걸 재미있다고 여기기도 했는데, 30대가 되고 글 쓰는 시간이 길어지니 새삼스럽게 근원으로 돌아가게 된다. 일기장에만 써서 담아둘 수 있던 마음을 굳이 소설이라는 형태로 만들어 공모전에 낸 걸 보면 나도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왜 그 마음을 닫아뒀을까? 지금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정직하고 정확하게 가 닿을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출판 저작권 에이전시에서 일했고, 다른 작가들과 함께하는 앤솔로지를 비롯해 출판사들의 여러 출간 기획에 참여했다. 지금 한국문학과 출판계에서 이뤄지는 시도나 흐름을 작가이자 출판인으로서 어떻게 느끼나
해외 반응은 확실히 고무적이다. 편집자 친구들을 만나보면 어떻게 하면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을지 굉장히 고민하지만, 정책적으로 도서관 지원비가 삭감되거나 한국문학번역원에 적은 예산이 배정되는 현실은 아쉽다. 그럼에도 들풀처럼 자생하는 글이 정말 많아졌다. 등단이라는 한정된 경로만이 아니라 아마추어 출판이나 1인 출판사, 포스타입 같은 플랫폼 등 어떤 경로든 글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 숫자나 상같이 성과주의적 상찬으로 쉽게 환원되는 세계 바깥에서 글을 쓰며 자기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을 발견하는 이들이 계속 늘어나길 바란다.

이희주에게 지금 가장 가까운 행복은
너무 얘기를 많이 해서 민망하지만, 반사적으로 떠오른 건 최애의 행복? 얼마 전 NCT WISH 멤버인 료가 “좋아하는 가수가 행복해하면 자기도 행복해진다”는 말을 했는데 그게 딱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이 일이 그들의 삶에서 ‘그래도 재미있었다’ 싶은 모험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들이 아니라 나를 위해. 이상은의 ‘비밀의 화원’ 가사를 빌려서 말하면 “행복해줘, 나를 위해서”.

아이돌과 팬의 관계는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것 같다. 옳고 그름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욕망이 있다는 걸 알고, 그걸 존중하면서 굴러가는 공동체라 할까.

이희주

K팝 아이돌 팬으로서 자전적 경험을 반영한 〈환상통〉으로 2016년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연작 소설 〈사랑의 세계〉와 장편 〈성소년〉을 펴낸 2021년을 기점으로 〈나의 천사〉, 단편소설 〈마유미〉 등을 출간하며 활발하게 활동 중인 소설가. 지금도 여전히 ‘최애’의 행복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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