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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그린 그림

아틀리에 오이의 패트릭 레이몽과 아르망 루이.

아틀리에 오이의 패트릭 레이몽과 아르망 루이.

복잡하고 소란한 서울 성수동 한복판에 전통 악기 생황의 맑고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전자음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음색과 맞물려 천장에서 바닥까지 길게 이어진 얇은 구리 스프링들이 흔들린다. 이 몽환적인 음악적 파노라마는 스위스 건축 및 디자인 스튜디오 아틀리에 오이(Atelier Oï)가 선보인 ‘시네마티카(Cinematica)’다. 지난 11월 3일 막을 내린 아트 페어 ‘디파인 서울 2024’에서 아틀리에 오이와 차세대 음악가 박지하가 협업해 색다른 경험을 선사했다. 박지하의 음악이 만들어내는 초저주파 진동이 구리 스프링에 전달돼 수십 개의 가느다란 선들이 춤추듯 섬세하게 움직였다. 보이지 않는 소리가 시각적·물리적 형태로 구현되는 장관. 관람자들은 생황의 소리 파동을 목격하며 청각과 시각이 하나로 융합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아틀리에 오이는 아르망 루이(Armand Louis), 오렐 아에비(Aurel Aebi), 패트릭 레이몽(Patrick Reymond) 세 디자이너가 1991년에 설립한 스튜디오로 작은 오브제부터 가구, 공간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작업을 통해 다학제적 접근과 혁신을 추구해 왔다. 재활용 플라스틱 병으로 만든 펠트 소재 ‘아키소닉Ⓡ(ArchisonicⓇ)’으로 제작한 조명부터 얇은 소나무 시트로 만든 조각품까지 감각적 경험을 확장하는 디자인을 위해 소재 탐구를 계속해 왔다. 이들의 새 프로젝트 ‘시네마티카’ 역시 단순한 시각적 경험에 그치지 않고 얇은 구리 스프링을 통해 소리와 빛, 진동을 활용해 감각적 서사를 이뤄낸다. “우리의 ‘스토리텍처(Storytecture)’라는 철학은 프로젝트의 맥락을 이해하고 재료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있으며, 이는 우리가 영감을 얻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시네마티카’ 전시 현장에서 만난 패트릭 레이몽이 들려준 감각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디파인 서울 2024’ 전시 기간 동안 ‘시네마티카’ 설치미술 작품 아래서 작곡가이자 연주자 박지하의 생황 라이브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디파인 서울 2024’ 전시 기간 동안 ‘시네마티카’ 설치미술 작품 아래서 작곡가이자 연주자 박지하의 생황 라이브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지난해 빛과 소리의 상호작용을 새롭게 정의하고, 소음을 줄이는 ‘올로이드(Oloïd)’ 조명에 이어 이번에는 ‘시네마티카’ 설치미술에서 소리를 매개로 관람자와 소통하는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소리’라는 요소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소리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 사람들을 깊이 연결하는 매개체예요. 복잡한 도시 소음 속에서 ‘시네마티카’는 잠시 멈추고 성찰할 수 있는 고요한 순간을 제공합니다. 사람들이 소리 자체에 몰입하면 감정이 생기고, 보이지 않는 힘들이 우리 경험을 풍부하게 만들어줍니다. 이 설치미술 작품을통해 관람자가 단순한 시청각적 자극을 넘어 감각의 본질에 깊이 연결되길 바랐어요.

무형의 힘을 디자인으로 표현하기 위해 어떤 전략이 필요했는지
복잡한 개념을 본질적 요소로 정제해야 했어요. 구리 스프링 같은 재료를 활용해 움직임과 빛이 상호작용하는 미니멀한 디자인을 구현했죠. 겉보기엔 단순한 설치 작품이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연구와 최신 기술이 녹아 있습니다. 특히 각 구성 요소와 소리 관계를 세심하게 고려해 작품을 완성했어요.

음악 진동에 반응하는 스트링은 빛의 잔상을 남기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음악 진동에 반응하는 스트링은 빛의 잔상을 남기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디파인 서울 2024’에서 ‘시네마티카’를 선보이게 된 배경이 있다면
우리는 만나는 사람들, 자연현상, 새로운 장소와 문화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이번 특별전에서 ‘시네마티카’를 선보인 이유는 한국 문화와 소통하기 위해서였어요. 한국 아티스트인 박지하와 협업해 우리 작업에 더 많은 깊이를 추가할 수 있었어요. 박지하의 전통 악기 연주는 유산과 현대성의 교차점을 탐구하는 기회가 되었고, 그로 인해 관람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몰입형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디자인과 음악, 예술의 경계를 넘는 작품이에요. 음악가 박지하와 함께한 협업 과정이 흥미진진했겠습니다
박지하와의 협업은 전통과 현대 요소를 융합하려는 공통 비전에서 시작됐어요. 열린 대화와 실험을 통해 박지하의 음악이 설치미술 작품의 시각적·공간적 요소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를 탐구했어요. 그녀의 매혹적인 음악과 우리 디자인이 어우러져 시너지가 발휘됐고, 결과적으로 흡인력 있는 작품이 탄생했어요.

‘시네마티카’는 수공예와 물성을 강조한 ‘아틀리에 오이 프리베(Prive′)’ 컬렉션의 일환입니다. 아틀리에 오이의 디자인에서 재료 고유의 특성을 실험하는 과정은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죠
재료 실험은 아틀리에 오이 디자인 철학의 핵심이에요. 소재 선택은 작품의 이야기와 감각적 경험에 큰 영향을 미쳐요. 언제나 감각적 경험을 증진시킬 수 있는 소재를 탐구 중입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라도 그 가능성을 최대한 확장하기 위해 실험해요. 우리는 소재의 진실성과 잠재력을 끊임없이 발견하려고 노력합니다. 혁신적 아이디어를 표현하기 위해 전 세계 장인들과 협업하고, 다양한 기법을 탐구해서 전통 기술의 경계를 넓히고 있어요.

전시장 한가운데에 설치된 ‘시네마티카’의 레이어 사이에서 아르망 루이와 패트릭 레이몽이 작품의 물리적 공간과 시각적 흐름을 경험하고 있다.

전시장 한가운데에 설치된 ‘시네마티카’의 레이어 사이에서 아르망 루이와 패트릭 레이몽이 작품의 물리적 공간과 시각적 흐름을 경험하고 있다.

그간의 작업에서는 패브릭을 재료로 회전하는 램프, 일본 오리가미 공예에서 영감받은 접이식 가구 등 사용자와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한 디자인을 선보이며 감각적 경험을 강조해 왔어요
우리 작업은 맛보고 실험하는 요리사가 일하는 방식과 유사해요. 감각은 창작을 이끄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움직임과 상호작용을 통해 사물과 사용자의 연결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사용자는 자신의 주변을 깊이 탐색할 수 있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느껴지는 순간을 창조하는 것이 우리 목표입니다.

창작을 위한 영감은 어디에서 얻고, 어떻게 확장해 나가나요
자연, 문화유산, 현대미술 등 다양한 곳에서 영감을 수집합니다. 이 과정은 서로의 관점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다학제적 접근을 기반으로 해요. 영감은 서로 다른 개인의 시각과 배경이 만나 교류할 때 탄생하거든요. 이때 습득한 지식을 해체하고, 때로는 익숙한 방식을 내려놓으며 차이를 가능성으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얇은 구리 선을 겹겹이 이어 다층의 레이어를 만들고 공간을 섬세하게 분할했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얇은 구리 선을 겹겹이 이어 다층의 레이어를 만들고 공간을 섬세하게 분할했다.

다학제적 접근방식이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다학제적 접근은 다른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관점을 발견하는 창작 과정의 필수 요소입니다. 여러 장르에 걸친 협업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입장과 포괄적인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었죠. 아틀리에 오이 스튜디오에는 ‘원맨쇼’라는 개념이 없어요. 프로젝트 자체가 리더이자 최종 목표이며, 그 별을 향해 모두 함께 나아가죠.

가구와 조명 같은 제품부터 설치미술 작품 같은 경험에 이르기까지 아틀리에 오이가 선보이는 프로젝트는 범위가 넓습니다
경험을 디자인할 때는 기능성뿐 아니라 관람자의 감각과 감정을 사로잡는 몰입형 환경을 창조해야 해요. 움직임과 분위기, 상호작용과 같은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모든 프로젝트에서 우리는 사람들을 꿈꾸게 하고, 그들을 새로운 이야기로 안내하는 것을 목표로 해요. 그런 의미에서 ‘시네마티카’는 순수한 창작 과정의 표현이자 타협 없이 완성된 작품입니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얇은 구리 선을 겹겹이 이어 다층의 레이어를 만들고 공간을 섬세하게 분할했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얇은 구리 선을 겹겹이 이어 다층의 레이어를 만들고 공간을 섬세하게 분할했다.

아틀리에 오이의 세 디자이너가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미래적 역할이 있나요
미래에 관해 탐구할수록 과거 유산과 장인 정신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강해집니다. 새로운 기술, 특히 AI가 유산과 예술가들의 노하우를 보호하고 발전시키는 데 어떤 역할을 할지 기대됩니다. 우리는 미래의 클라이언트들이 디자인의 가치를 이해하고 그 과정에 책임감을 느끼며, 단순히 브랜드 마케팅을 따르기보다 스스로의 감각과 내일의 도전 과제를 인식하고 자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서울에서 선보인 작업 ‘시네마티카’를 ‘끝’이 아닌 ‘여정’으로 묘사했어요
‘시네마티카’는 다양한 협업과 만남을 통해 발전할 수 있는 프로젝트예요. 세계 투어를 통해 새로운 문화와 교류하고 협업으로 확장해 나갈 예정입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소리와 디자인을 탐구하며, 다양한 예술적 표현으로 관람자에게 풍부한 경험을 제공하고 싶어요. 다양한 작곡가, 음악가, 아티스트와의 작업으로 각기 다른 관람자와 소통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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