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어린이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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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시인 메리 올리버(1935~2019)는 평생 개와 함께 살았다. 심지어 교수가 됐을 때도 개와 함께하는 연구실을 요구할 정도로 그의 반려견 사랑은 각별했다. 그가 개에 대해, 스스로 개의 입장에서 쓴 시를 읽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 역시 그 사랑이 멈추는 순간을 감히 예측할 수 없다. 신지는 나와 제주살이를 함께하는 래브라도 리트리버다. 여덟 살. 일반적으로 대형견은 소형견에 비해 수명이 짧으니, 사람 나이로 따지면 신지는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시기. 무정하게도 시간은 나보다 신지에게 더 빠르게 흐른다. 벌써 신지의 머즐에는 흰 털이 성성해졌고, 눈동자에도 탁한 푸른색이 감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25kg으로 아직도 강아지같이 바닥에 등을 대고 앞발, 뒷발을 휘저으며 애교를 부릴 때면 아직 이별이 가깝지 않다며 애써 위로하게 된다. 이런 신지에게는 ‘발이 두 개’인 동생이 있다. 바로 내 작은 사람 딸이다. 2018년에 태어나 신지와는 두 살 터울인 사람. 지금 사람 딸은 신지가 5개월이 됐을 무렵 이갈이를 했던 것처럼 유치가 빠지는 중이다. 서로의 생일을 축하해 주는 두 존재. 배로 낳은 사람 딸과 가슴으로 낳은 개 딸. 두 딸의 시간은 어쩜 이리도 다르게 흐를까.

내가 사는 곳은 제주 중에서도 시골인 면 소재의 작은 마을이다. 제주의 초가을 날씨는 햇볕은 뜨겁고 바람은 시원해서 빛과 바람의 조화가 적절한 날이면 그야말로 최고의 기후가 된다. 그날도 딱 그런 날이었다. 신지와 나는 여느 때처럼 약 1.5km가 되는 산책길에 나섰다. 길가 풀 쪽으로 가 냄새를 맡고 다시 도로로 나오던 신지가 갑자기 오른 뒷발을 절뚝거렸다. 시골길을 산책하다 보면 종종 유리 조각이나 철 조각에 베이거나 나무나 풀의 가시에 찔리기도 하는 터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래도 상처 부위를 확인해야 해서 신지의 뒷발을 들어서 보니 피가 흐르고 있었다. 빨리 집으로 가 지혈하려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갑자기 신지가 뒷다리를 떨더니 주저앉는 게 아닌가. 느낌이 이상했다. 집까지는 300m 남짓 남은 상황. 걷지 못하는 신지를 안고 겨우 집에 도착했다. 20kg이 넘는 개를 안고 오느라 팔이 저릿저릿했지만 일단 상처를 살피는 게 우선이었다. 보통의 상처라면 지혈이 돼야 하는데 피가 멈추지 않았다. 심상치 않았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동물병원은 읍내에 있고, 차로 20분 정도 가야 한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지만 최대한 스스로 진정시키며 동물병원으로 갔다. 동물병원에 도착해 신지를 안아 내리는데 상처 난 뒷발이 상당히 부어 있었고, 피는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패드 주위의 털을 잘라 살펴보던 원장님은 독사에 물린 것 같다며 빨리 해독제가 있는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해독제가 있는 병원까지는 또 차로 1시간. 나에겐 1시간이 천년 같았다. 그 와중에 신지가 움직이지 않는 것 같으면 불안한 마음에 신호에 걸릴 때마다 신지를 불렀다. “신지!” 그러면 신지가 귀를 쫑긋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이런 제스처는 사람과는 다른 언어를 쓰는 개의 대답이다. 신지가 대답하면 나는 속으로 ‘제발. 움직여줘. 눈을 감거나 축 처지면 안 돼’라고 외쳤다. 나는 종교가 없는데 온갖 신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다. ‘신지를 데려가지 마세요. 데려가기만 해봐요. 나 죽고 당신 죽는 거예요. 아니, 제발 살려만 주세요. 싸가지 없이 말한 거 죄송합니다. 제발 이 개를 살려주세요. 개는 아무런 죄가 없잖아요.’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며 해독제가 있는 병원으로 갔다. 주차하고 병원 입구까지 다시 신지를 안고 움직여야 했는데 여전히 피가 멎지 않아서 온몸이 피범벅이 됐다.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전화로 해독제 문의한 신지예요! 도와주세요!”라고 외쳤다. 신지가 처치실로 떠나고 나는 대기실 의자에 쓰러지듯 앉았다. 수의사가 나를 부르기 전까지 또다시 천년 같은 시간이 흘렀다. 제대로 운전해서 왔다고 생각했는데 손을 보니 벌벌벌 떨고 있었다.

역시 신지를 문 건 독사였다. 물린 후 2시간 반이 지난 후에 해독제를 투여하기 시작했으나 경과는 지켜봐야 한다며, 최악의 경우에는 해독제 효과가 없어서 급사하거나 효과가 있다 해도 피부 괴사가 이미 진행됐다면 절단까지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급사, 괴사, 절단. 세 개의 단어가 머릿속에 발사된 총알처럼 박혀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제부터는 의료진의 영역 그리고 신지의 영역. 신지의 면역 세포가 해독제를 등에 업고 독성과 싸워야 한다. 오롯이 신지 혼자 입원시키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다시 1시간가량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집에 사는 작은 사람이 뛰어왔다. “엄마!” 피범벅이 된 내 옷을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했다. 아이의 표정이 굳어졌다. “엄마, 신지는…?” 차마 아이 앞에서 무너질 수 없었던 나는 애써 웃어 보였다. “신지가 많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시키고 왔어.” 그날 밤, 나는 아이와 함께 누웠다. 병원에서 위급 상황이 생기면 새벽에라도 연락하겠다는 말을 듣고 온 터라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 두통이나 가슴 두근거림도 심해졌다. 결국 진정제를 먹고 다시 잠자리로 돌아온 내게 아이가 말했다. “엄마, 신지가 그렇게 된 건 신지 탓이 아니야. 그때 산책을 간 게 잘못이지.” 아이가 어떤 일로 속상해하면 “그 일이 일어난 건 네 탓이 아니야”라고 말했던 나를 모방해서 위로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신지랑 산책을 간 건 바로 나였다. “신지랑 같이 산책을 간 게 나야”라며 고개를 베개에 파묻었다. 그러자 아이는 당황하며 “아니, 엄마가 잘못한 게 아니라 그건 그냥 이미 일어난 일이라는 거야!”라고 말했다. 나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얼굴을 보자 그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웃기기도, 기특하기도 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자자. 신지는 괜찮을 거야.” 나에게 말하는 건지, 아이에게 말하는 건지 모를 말을 하면서 약기운에 빠져들었다.

다행히 새벽에 전화는 오지 않았다. 다만 실외 배변만 하는 신지를 위해 하루에 한두 번, 시내까지 2시간 왕복 운전해서 배변을 해주러 다녀야 했다. 입원 이틀째, 작은 사람도 면회를 가겠다고 나섰다. 신지가 좋아하는 간식을 꼭 쥐고. 사람 딸이 엄마 아빠 다음으로 발음한 언어는 ‘신지(당시에는 띤디!)’였다. 세상에 처음 나와 만난 종(種)이 다른 가족. 입원실에 누워 있는 신지를 본 사람 딸의 표정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붕대로 칭칭 감겨져 있는 교상 부위의 뒷발, 수액이 연결된 앞발. 커다란 넥 칼라를 하고 입원 케이지에 힘없이 누워 있는 신지의 모습에 아이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가족이 아플 때 슬픔보다 먼저 느껴지는 감정은 두려움 아닐까.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닌 나의 가족. 그가 언제든 내 곁을 떠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 사람 딸은 수의사에게 “간식 줘도 돼요?”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입원실 문을 열고 간식을 받아먹는 신지는 입원 첫날보다 훨씬 호전돼 보였다. 사고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아직 상처 부위에 털이 자라진 않았지만 새 살로 메워진 것이 확연히 보인다. 붉은 자국을 볼 때마다 안도하고, 폴짝폴짝 뛰기도 하는 신지를 보면 큰 액땜을 했다 싶다. 우리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려고 그런 일이 있었던 거야, 그렇지? 제주에 살면서 한 번도 뱀에 물리는 일은 없었는데 하필 그날 그 수풀에 뱀이 있었고, 신지는 모르고 뱀의 머리를 밟았던 것 같다. 동면에 들어가기 전 뱀들은 매우 예민한 상태이므로 뱀은 자신에 대한 공격이라고 생각했겠지. 순식간에 신지의 오른쪽 뒷발을 세 번이나 물고 뱀은 유유히 자취를 감췄을 것이다. 아이의 말처럼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일 뿐. 뱀은 뱀의 일을, 나와 신지는 평소대로 산책을 했을 뿐. 위험한 조우는 어쩌면 일어나야 했던 일이었을 뿐. 그리고 그 안에서 각자 최선을 다해 할 일을 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요즘도 산책할 때 길고 구불거리는 물체만 보면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진다. 하지만 인간의 공포와는 상관없이 신지는 즐겁게 산책한다. 신지의 꼬리를 보면 알 수 있다. 즐거워, 즐거워! 새로운 냄새! 새로운 흔적! 그리고 그 옆에 킥보드를 타고 따라오는 작은 사람 딸. 신지가 아팠을 때의 모습은 싹 잊고 오직 산책을 즐기는 두 존재를 보며 나는 매번 스스로를 뒤돌아본다. 그저 나만 너무 먼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건 아닐까. 너무 무거운 생각을 미리 이고 지는 건 아닐까. 오로지 지금을 사랑하는 너희들처럼 나도 현재만 느끼고 그 느낌만 감각해야지. 지금 내 옆에서 건강하게 네 발을 움직이는 신지. 우리가 가족임을 잊지 않고 작은 두 발을 맞추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 딸. 너희에게 빚진 사랑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러니까 둘이 함께 좀 더 내 곁에 있어줘. 내 사랑을 맘껏 전할 수 있게.

강지혜

@kangjihyeeee
서울에서 태어나 제주에서 작가, 자영업자, 기획자, 강사, 육아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2013년 세계문학 시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이건 우리만의 비밀이지?〉 〈나 개 있음에 감사하오〉, 에세이 〈내가 감히 너를 사랑하고 있어〉 〈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아름답고 잔인하지〉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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