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유명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난 것 같아요. 긴 시간 축적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엄청난 창의력이 필요하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온전히 프로젝트에 집중해 문제를 해결하고, 기능을 생각할 수 있게 됐어요.” 에르완 부홀렉은 최근 마련한 파리 스튜디오와 부르고뉴 지역의 두 번째 보금자리이자 디자인 스튜디오 ‘라 그랑주(La Grange)’를 오가며 작업한다.
그는 오래전부터 가구, 프로덕트 디자인 외에도 컴퓨터 코드를 이용한 작업에 심취해 있었는데, 이제는 물감을 이용한 페인팅과 라 그랑주 아틀리에 근처 숲에서 찾아낸 나뭇가지를 사용한 가구로 새로운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나에게 디자인은 항상 어떤 규칙을 만들어내는 것이었어요. 라 그랑주의 자연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규칙을 경험하고, 이를 품은 복잡함, 카오스, 밸런스를 이해하고 그것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과거 에르완의 스타일이 다양한 형태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이었다면, 이제 그는 군더더기 없이 기본으로 돌아가 좀 더 가벼운 것에 집중하고 있다. 3m가 넘는 길이에도 불구하고 단 네 개의 못이 선반에 고정돼 있고, 선반을 지지하는 구조물이 모든 무게를 감당하도록 디자인한 헤이(Hay)의 ‘피어(Pier)’ 셸브는 그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대로 설명해 준다.
“예전이라면 분명히 특별한 모양의 선반을 만들고 싶었을 거예요. 당시 로낭과 나, 제작 팀 모두 일정 기간 동안 독특한 형태를 만들어내려고 했죠. 특별한 형태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고, 다양한 형태를 만들 수 있는 플라스틱의 전성기가 오기도 했습니다. 구조적인 규칙 없이 자연스럽게 모든 형태를 만들 수 있는 재료였으니까요. 이제는 조금 다르게 접근하고 있어요.”
그는 점점 불필요한 재료는 사용하지 않는, 진정으로 가벼운 것을 만들고 싶어 한다. 자연과 가까워지면서 디자인도 좀 더 단순하게, 직접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실천하고 있다. “이런 사고방식은 오래전부터 내면에 있었지만 도심 생활에서 실천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라 그랑주에서 생활하면서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던 것들이 실제로 가능하게 된 거죠.” 최근 에르완 부홀렉이 선보인 HIMD의 가구 라인은 이런 철학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에르완은 거의 수작업에 가깝게 제작된 HIMD 가구 라인을 그가 디자인한 다른 브랜드의 제품과 항상 한자리에 놓고 촬영한다.
불규칙한 것들과 기하학적인 것들 사이의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은 그가 추구하는 디자인 세계를 대변하고 있다. “디자이너로서 제가 추구하려는 방향이나 목적을 반영하는 브랜드의 가구를 디자인하고 싶어요. 특정 코드를 이용한 드로잉을 하겠다는 개념은 아니에요. 많은 것이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그 속에서 밸런스를 만들어가는 걸 의미합니다.” 속세를 떠나 해탈한 듯한 발언으로 들릴 수 있지만, 에르완 부홀렉은 다양한 크기와 모양을 가진 상자로 만들어진 세계에서 디자이너로서 진정한 밸런스를 찾을 수 있는 길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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