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당같지 않은 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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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obahnkirche

스위스 안데르의 A13 고속도로 옆에 자리한 헤르조그 &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의 예배당은 스위스 최초로 고속도로 옆에 자리 잡은 예배당이라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하지만 이곳의 진정한 매력은 단순한 위치보다 종교적 상징물은 물론 십자가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신앙을 가진 사람이든 편안하게 쉬고 기도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인 셈이다. 네 개의 하얀 벽이 서로 기대어 서 있는 건물로 들어서면 나선형 계단이 지하 방으로 안내한다. 큰 곡선형 방을 중심으로 두 개의 작은 방이 나뉘어 있으며, 동굴처럼 깊숙이 들어가면 고속도로의 소음은 희미해지고 방문자의 발소리만 울려 퍼진다. 이 공간은 외부와 단절된 듯 고요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게 만든다. 마지막 방에 다다르면 창문 밖으로 펼쳐진 파노라마 풍경이 눈앞에 드러난다. 저녁 무렵에는 붉은 유리 패널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방 안을 물들이며 외부의 자연과 이어진다. 전통적인 예배당 개념에 도전하면서도 고고학자들이 칠리스(Zillis) 지역에서 발굴한 초기 기독교나 이교도의 유적을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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