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대통령의 스타일이 그렇게 나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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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열린 미국과 우크라이나 정상회담에서 젤렌스키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28일 열린 미국과 우크라이나 정상회담에서 젤렌스키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28일 열린 미국과 우크라이나 정상회담은 외교적 긴장감만큼이나 복장 논란으로도 뜨거웠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수트를 입지 않은 것을 두고, 보수 성향 기자 브라이언 글렌은 “수트가 있긴 한가요?”라는 조롱 섞인 질문을 던졌다. JD 밴스 부통령을 비롯한 배석자들이 이 말에 웃음을 터뜨린 순간, 그들이 이해하지 못한 진짜 ‘예의’의 부재가 드러났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검은색 헨리넥 셔츠와 바지,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상징인 삼지창이 새겨진 옷을 입고 있었다. 전쟁 중인 국가의 지도자로서 상징적 복장이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You all dressed up”이라며 젤렌스키 대통령의 복장을 조롱했다. 일론 머스크는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서 이를 인용해 불을 지폈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백악관을 드나들 때조차 티셔츠 차림에 야구 모자를 쓰는 일론 머스크가?

수트를 입지 않은 젤렌스키 대통령과 수트를 엉망으로 입은 트럼프 대통령.

수트를 입지 않은 젤렌스키 대통령과 수트를 엉망으로 입은 트럼프 대통령.

젤렌스키 대통령이 수트를 거부하는 이유

젤렌스키 대통령이 수트를 입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카키색 군복을 비롯해 그의 캐주얼한 복장은 우크라이나 국민과의 연대를 드러내고, 전쟁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현실을 상기시키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이는 처칠이 제2차 세계대전 중 고급 수트를 벗어던지고 방공복을 입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처칠의 방공복은 전쟁의 긴급함과 리더십을 상징했고, 젤렌스키의 복장도 마찬가지로 전시 상황에서의 책임과 단호함을 드러낸다.

패션은 그 자체로 언어다. 수트가 평화와 안정의 상징이라면, 젤렌스키의 군복은 저항과 결의의 상징이다. 그가 수트를 입지 않는 이유는 예의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전쟁 중인 국가의 지도자로서 국민과 전 세계에 보내는 강력한 표현이다. “우리는 아직 싸우고 있다.” 젤렌스키는 이 메시지를 패션을 통해 전달한다.

타이는 허리 선 끝에 맞추는 것이 정석이다. 축 늘어진 타이로 스타일 지적을 받는 도널드 트럼프.

타이는 허리 선 끝에 맞추는 것이 정석이다. 축 늘어진 타이로 스타일 지적을 받는 도널드 트럼프.

트럼프와 머스크의 역설과 이중잣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를 조롱했지만, 정작 그의 패션은 패션 업계에서 여러 차례 지적받아 왔단 사실이 애석하다. 무더운 산책을 끝나고 돌아온 개의 혓바닥처럼 지나치게 긴 타이, 어깨선이 맞지 않는 수트, 힙합 전사인양 과도하게 넓은 바지 핏. 도널드 트럼프야말로 진정한 룰 브레이커다. 특히, 트럼프는 타이 뒤를 타이 핀 대신 스카치테이프로 고정했다가 바람이 불어서 들통난 적이 있다. 전통적인 드레스 코드를 강하게 고수하려 했으나 오히려 격식의 부재를 드러낸 사례다.

'테크 서포트'라는 문구의 티셔츠를 입고 백악관을 방문한 일론 머스크.

‘테크 서포트’라는 문구의 티셔츠를 입고 백악관을 방문한 일론 머스크.

머스크의 경우는 또 어떤가. 그는 수트 대신 티셔츠를 입고 백악관을 찾곤 했으며, 이는 좋게 해석해 혁신과 파격의 상징처럼 보였다. 실리콘 밸리 사람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정작 머스크가 젤렌스키의 복장을 조롱했다니 자가당착이다. 복장은 그 사람의 태도와 일관성을 반영한다. 젤렌스키는 군복을 고수하며 전쟁 중인 국가의 지도자로서의 일관성을 드러냈으나, 트럼프와 머스크는 이중적인 태도를 들켜버렸다.

티셔츠와 야구 모자 차림으로 격식을 깬 일론 머스크의 패션 스타일.

티셔츠와 야구 모자 차림으로 격식을 깬 일론 머스크의 패션 스타일.

패션보다 중요한 애티튜드

패션에서 중요한 것은 옷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것을 입는 사람의 태도철학, 그리고 맥락이다. 스티브 잡스의 검정 터틀넥과 청바지가 패션 아이콘이 된 이유는 그의 일관성과 철학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같은 논리로 젤렌스키의 복장은 전시 리더십과 연대의 상징이며, 이는 수트보다 훨씬 강렬한 의미를 전달한다. 트럼프의 지나치게 화려한 수트와 긴 타이, 머스크의 캐주얼한 복장도 그들의 스타일을 드러내는 방식이었으나, 젤렌스키를 조롱한 가벼운 언행은 오히려 그들이 그토록 주장한 격식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겉모습만을 기준으로 예의를 논한다면 한참 오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도 수트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가 공식 소셜미디어에 업로드한 이미지.

우크라이나 국민들도 수트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가 공식 소셜미디어에 업로드한 이미지.

수트 = 예의?

역설적으로 미국에서는 수트를 입지 않는 리더들에 대한 관대함이 존재해왔다. 오바마는 재킷을 벗고 소매를 걷은 셔츠 차림으로 연설하곤 했고, 바이든 역시 청바지에 셔츠 차림으로 공식 석상에 나선 적이 있다. 트럼프와 머스크가 젤렌스키의 복장을 문제 삼은 사건은 우스꽝스럽게도 그들 자신을 뒤돌아보지 못하고 내세운 불공정한 기준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수트는 권위와 격식을 상징하지만, 예의의 전부는 아니다. 예의는 상대를 존중하고 그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한다. 젤렌스키의 복장에 대한 폄하는 껍데기에 대한 집착이나 다름 없다. 진정으로 스타일리시한 사람은 옷이 아니라 태도로 패션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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