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강아지, 도마뱀의 사랑스러운 동거

189

아침이면 거실의 테라리움에서 크레스티드 게코가 조용히 몸을 늘어뜨린다. 밤사이 분주히 움직였을 그 존재는 이제 눈을 반쯤 감고 가만히 숨을 고른다. 높게 올려둔 테라리움 아래에서 시추가 익숙한 듯 졸린 눈으로 올려다본다. 이민영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느긋한 강아지와 한없이 신비로운 도마뱀을 함께 키우는 생활. 이민영에게는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언뜻 보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이 조합 덕분에 집은 고요하고 편안하다. 세 생명은 이렇듯 각기 다른 모습으로 한집에서 동거 중이다. 이민영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한다. 다채롭고 창의적인 세계에서 발 빠르게 움직이는 그를 숨돌리게 만드는 건 생명이다. 어릴 때부터 쭉 그래왔다. 동물과 함께하는 삶이 자연스러웠던 그의 집에는 언제나 작은 생명들이 살았고, 이민영은 그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자랐다. “하루는 아버지가 부상당한 새를 데리고 퇴근하셨어요. 우리 가족은 새를 둘러싸고 응급치료를 했고, 열심히 보살폈어요. 언젠가 아빠가 새끼고양이를 품에 안고 온 적도 있죠. 언니와 저는 냇가에서 개구리를 관찰하며 놀곤 했어요.” 그가 말했다. 새끼고양이가 무릎 위에서 새근새근 잠들던 기억, 거실 구석에서 거북이가 한없이 느릿느릿 걸어가던 장면들, 빨간 눈으로 어딘가를 응시하는 토끼, 부상당한 새를 돌보던 우리 가족. 이런 추억이 쌓여 동물과 함께하는 삶이 그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지금 그의 곁에는 크레스티드 게코 ‘뽀로’와 시추 ‘따로’가 있다. ‘따로국밥’에서 이름을 가져온 따로는 이민영이 초등학생 때부터 한집에서 자란 친구다. 함께한 세월이 13년째다. 태생적으로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라 집을 뛰어다닌 적 없다.

늘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사뿐히 걷고, 잘 짖지도 않는다. 감정 표현이 풍부해 이민영의 기분을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차린다. “야외 배변하러 산책을 나가면 작은 체구로 내 속도를 열심히 맞추려는 모습이 사랑스러워요. 어릴 때는 같이 바닥을 뒹굴었지만, 요즘은 눈을 느리게 끔뻑입니다. 전보다 훨씬 더 조용해졌고요. 몇 달 전에 따로가 이마에 생긴 종양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어요. 다행히 악성 종양이 아니어서 건강에 문제는 없지만, 세월에 따른 변화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이민영이 덤덤히 말한다. 요즘은 “따로야!” 하고 불러도 반응이 느리거나 없을 때도 있다. 이민영은 따로가 자신 옆에 꼭 붙어 있는 시간이 늘어난 건 좋지만, 기력이 부족한 모습에 씁쓸함을 느낀다고. “제가 어릴 때는 따로에게 의지했는데, 이제는 역할이 바뀌었어요. 따로가 제게 의지해요.” 그도, 따로도 많이 컸다. 하지만 따로의 세월의 속도는 이민영의 것보다 빠르다. 삶의 방식과 생활 패턴, 식습관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따로와 대척점에 있는 뽀로의 시간은 아주 느리게 흐른다. 크레스티드 게코인 뽀로가 이민영의 집에 입주한 것은 2023년. 이름은 따로와 함께 ‘로’자 돌림을 따랐다. “따로가 친구라면, 뽀로는 동거인 같아요. 강아지만큼 직접적 교감은 아직 어려워서 어떨 때는 식물 같기도 하죠. 고양이 같기도 하고, 매번 다르게 느껴요. 야행성이어서 낮에는 나뭇가지나 은신처에서 쉬다가 밤이 되면 활발히 움직여요. 벽을 타고 오르거나 긴 꼬리로 균형을 잡으며 점프하는 모습을 보면 작은 정글의 왕 같죠. 눈꺼풀이 없어 혀로 눈을 핥아 수분을 유지하는 모습도 흥미롭고요.” 지난해, 뽀로는 함께 산 지 1년 만에 이민영과 눈을 맞췄다.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 현관문에서 테라리움을 쳐다보니 뽀로가 저를 응시하는 것 같더라고요. 설마 싶어 슬그머니 가까이 다가갔어요. 세로줄의 눈이 제 눈을 신비롭게 바라보고 있었죠. 그날부터 뽀로의 작은 행동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밥 먹는 날을 어찌 알고 뽀로는 케이지 문에 달라붙어 이민영을 바라본다. 어떨 때는 숨어 있고, 어떨 때는 신나게 뛰어다닌다.

“평소 엄청 조용한데 호기심은 많나 봐요. 흥미로운 걸 발견했을 때 ‘삐약’ 하고 소리를 내죠. 뽀로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때 제 아드레날린은 마구 샘솟아요. 대견하고, 궁금하고, 신비롭고, 평온함 등 다채로운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뽀로예요.” 요즘은 이민영이 케이지에 손가락을 살짝 넣으면 뽀로는 그 손가락을 핥는다. 이처럼 그들은 서로에 대해 여전히 알아가는 중인 한편 ‘교감’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뽀로와 따로는 서로 대척점에 있다. 땅에 발붙이고 사는 따로와 달리 뽀로는 늘 선반 위 테라리움을 기어다닌다. 두 생명은 서로 부딪칠 일이 없다. 이민영이 두 생명에게서 얻는 즐거움도 다른 종류다. “뽀로를 키우면서 새롭게 배우게 된 게 있다면 관찰의 미학이에요. 강아지처럼 적극적으로 교감하는 동물이 아니다 보니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피게 되죠. 온습도가 적절한지, 귀뚜라미를 잘 먹는지, 점프할 때 힘이 살아 있는지 등 세심하게 관찰하며 상태를 파악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조용한 생명체일수록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는 이민영. “예전에는 동물과의 관계를 단순한 애정 표현으로 생각했지만, 뽀로를 키우면서 ‘존중하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됐어요. 무작정 만지고 교감하기보다 그저 곁에서 편안히 지켜보는 것이 더 큰 신뢰를 쌓는 길이라는 것도요.”

반면 따로와의 관계는 좀 더 직관적이다.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따로는 이민영의 감정을 이해하고 반응한다. “때로는 내 마음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리는 것 같아요. 뽀로와는 ‘서로 다른 공간에서 존재를 인정하는’ 관계라면, 따로와는 ‘함께 감정을 나누는’ 관계라 할 수 있죠.” 같은 반려동물이지만 그들과 나누는 교감의 방식은 다르다. “동물은 확실하게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어해요. 솔직하죠. 그래서 함께할 때 믿음이 가서 편안합니다.” 인간보다 훨씬 짧은 시간을 살아가는 이 존재들을 보며 이민영은 순간을 얼마만큼 소중히 여기게 됐을까? “영원히 함께할 수 없다는 걸 알아요. 어릴 적부터 사랑하는 반려동물과의 이별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별에 조금 무뎌졌지만 그럼에도 슬픔과 후회의 감정이 깊숙이 파고드는 건 여전합니다. 중요한 건 같이 있는 시간을 더 즐겁게 보내는 겁니다. 작은 존재들이 주는 위로와 기쁨에 보답하고 싶거든요.” 반려동물과 주인은 함께 늙어간다. 그리고 함께 성장한다. 어떤 날은 조용하고 어떤 날은 분주하지만, 매일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서로를 반긴다. 이민영과 뽀로와 따로는 서로 다른 종이지만, 공통된 메시지를 공유한다. ‘우리를 돌보는 너의 손길이, 나를 바라보는 너의 눈이, 너의 하루가, 우리의 전부야.’

+1
0
+1
0
+1
0
+1
0
+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