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적 없는 사제관계, ‘하이퍼나이프’ 박은빈과 설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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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사람 다 의사 역할은 처음이라고요. 의외였습니다

박은빈(이하 박) 그동안 기회 자체가 없진 않았어요. 그런데 〈하이퍼나이프〉는 시놉시스를 보는 순간 이끌렸죠. 세옥이 신경외과의라는 점도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뇌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설경구(이하 설) 일단 저는 의사 제안은 전혀 없었고요. 이번에도 의사는 어떻게 보면 외피고, 그 안의 흥미로운 사제지간 이야기가 인상적으로 다가왔어요. 평범하지 않은 두 인물이 부딪쳤을 때 발생하는 기묘함에 끌리더라고요.

그레이 롱 코트는 Maison Margiela. 화이트 셔츠와 블랙 팬츠는 모두 Dolce & Gabbana. 로퍼는 Christian Louboutin.

그레이 롱 코트는 Maison Margiela. 화이트 셔츠와 블랙 팬츠는 모두 Dolce & Gabbana. 로퍼는 Christian Louboutin.

뒤틀린 사제관계가 이야기의 중심에 놓이는 것은 보기 드물죠. 1~2화를 먼저 봤는데, 제도권에 안착한 교수 최덕희로 변신한 설경구 배우의 모습도 새롭더군요.

어떤 면에서 최덕희 또한 명성만 있고 사회성은 없죠. 작품을 하다 보면 처음에 캐릭터를 잡았던 대로 쭉 가는 경우도 있고, 중간에 바꾸는 경우도 있는데 최덕희는 후자였습니다. 변주를 많이 했죠.

덕분에 대본으로 읽었을 때는 예상치 못했던 선배님의 인간적인 연기를 눈앞에서 볼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플라워 엠브로이더리 드레스는 Bottega Veneta.

플라워 엠브로이더리 드레스는 Bottega Veneta.

상호작용을 통해 또 캐릭터가 변한 셈이군요

리액션 같은 거죠. 세옥이는 나름대로 복수하려는 거지만, 일반적으로 그게 선생에 대한 예의는 아니잖아요? 그럴 때 인간 최덕희가 튀어나와요. 아니 선생을 막 두들겨 패고 말이야.

에이, 선배님, 제가 두들겨 패지는 않죠.

설 아유, 아주 폭력적이지. 불완전한 인간 둘이 맞부딪치며 깊숙이 내재된 충동을 서로 끄집어내고 결국 원초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 이게 이 관계의 핵심이 아닌가 합니다.

박은빈이 입은 재킷과 셔츠, 스커트, 샌들은 모두 Alexander McQueen. 설경구가 입은 블랙 셔츠와 블랙 수트는 모두 Heon Kim.

박은빈이 입은 재킷과 셔츠, 스커트, 샌들은 모두 Alexander McQueen. 설경구가 입은 블랙 셔츠와 블랙 수트는 모두 Heon Kim.

의사 면허를 박탈당한 뒤 불법 수술을 할 정도로 ‘뇌 수술’의 매력에 경도된 정세옥은 그야말로 박은빈의 변신이라고 할 만합니다

어떤 수식어를 바라며 도전한 건 아니에요. 다만 제가 해보지 않은 연기라는 점에서 강하게 흥미가 새겼고, 실제로 연기하면서 많은 희열을 느꼈어요.

어떤 부분에서 희열을 느꼈나요

그동안 맡았던 역할이나 제안받은 작품의 인물 모두 ‘핵’에는 정의가 있었던 것 같아요. 올바른 선택을 내리기 위해 성장하는 인물이었는데, 세옥은 굉장히 많은 게 결여된 인물이에요. 그런데 누구나 항상 착한 생각만 품고 살 수는 없잖아요? 세옥을 통해 일종의 대리만족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그런데 어떠셨어요? 2부까지 보셨을 때 덕희와 세옥 중 누구를 더 응원하게 되던가요?

박은빈이 입은 카키 블루종은 Sacai. 이너 웨어 티셔츠는 Acne Studios. 블랙초크는 Vivienne Westwood. 데님 스커트는 Alessandra Rich. 설경구가 입은 네이비 점퍼는 Adidas. 이너 웨어 셔츠는 From Arles. 팬츠는 Studio Tomboy. 선글라스는 Blue Elephant.

박은빈이 입은 카키 블루종은 Sacai. 이너 웨어 티셔츠는 Acne Studios. 블랙초크는 Vivienne Westwood. 데님 스커트는 Alessandra Rich. 설경구가 입은 네이비 점퍼는 Adidas. 이너 웨어 셔츠는 From Arles. 팬츠는 Studio Tomboy. 선글라스는 Blue Elephant.

저는 윤찬영 배우가 연기한 영주가 짠하던데요

아, 그건 인정합니다(웃음).

세옥 곁에는 세옥의 불법 수술을 도우며 팀으로 움직이는 영주(윤찬영)와 현호(박병은)가 있고, 덕희 옆에서는 조력자 라 여사(강지은)가 무게감을 더합니다

저는 병은 선배님 덕분에 많이 웃었어요. 조용한데 엄청 유머러스하거든요. 찬영도 정말 좋은 동생이자 후배죠. 설 라 여사는 덕희가 주문하면 수행해서 보고하는 역할이죠. 둘 다 말이 없어서 ‘잘했네’ ‘고생했네’ 외에는 서로 이야기를 거의 나누지 못했네요. 덕희는 좀 외롭습니다.

설경구가 입은 코트는 Maison Margiela. 셔츠는 Dolce & Gabbana. 로퍼는 Christian Louboutin.

설경구가 입은 코트는 Maison Margiela. 셔츠는 Dolce & Gabbana. 로퍼는 Christian Louboutin.

학부생 시절 어린 천재인 세옥은 굉장히 귀엽습니다. 수다쟁이에다 최덕희 교수를 선망해서 덕희에게 받은 ‘Perfect’ 평가지를 버리지 않고 모아둘 정도죠

그게 귀여워요? 섬뜩하지 않아요? 어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쳐들어오잖아요. 자기가 다 배워 먹어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알고 있는 것, 모든 것 다 빠짐없이 알려달라’고 하고요. 물론 덕희도 첫눈에 알긴 했겠죠. ‘아, 이 자식 나랑 비슷하다.’

공고한 벽을 세옥이가 막 깨부수는 거죠. 하지만 시청자에게도 귀엽게 느껴진다면 좋겠네요.

이런 열정 가득한 후배를 실제로 만나면 어떨 것 같나요

그러고 보니 저라는 후배는 어떠셨나요, 선배님? 설 너무 고마웠죠. 계속 저에게 먼저 말을 걸며 노력해 줘서 촬영 내내 적적하지 않아 좋았습니다. 제 모든 게 좀 까발려진 것 같기도 하고(웃음).

선배님이 궁금했어요. 토마토 파스타 좋아하시나요? 뭐 그런 거나 물어보고 귀찮으시면 말해 달라, 조용히 하겠다고 했는데 항상 잘 받아주셨죠.

은빈이 입은 블랙 블레이저 드레스는 Alexanderwang. 설경구가 입은 이너 웨어 스웨터는 Juun. J. 블랙 레더 재킷과 팬츠는 모두 Heon Kim.

은빈이 입은 블랙 블레이저 드레스는 Alexanderwang. 설경구가 입은 이너 웨어 스웨터는 Juun. J. 블랙 레더 재킷과 팬츠는 모두 Heon Kim.

두 인물 모두 죽으면 수술대에서 죽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의 일을 사랑하죠. 이런 열정에 공감 가는 부분이 있을까요

저는 옛날에 촬영하다 죽는 게 꿈이라는 얘기는 한 적 있어요. 노역을 하다가 현장에서 떠나면 그것도 배우로서 복일 수 있겠다 싶었죠. 실제로 예전 〈전원일기〉의 노인 3인방 중 한 분이 별세하셨을 때, 드라마에 빈소가 차려지고 출연진이 조문하는 장면이 방영된 적 있거든요. 하지만 나이를 더 먹으니 괜히 여러 사람 고생시키려나 싶고 생각이 바뀌기는 합니다.

그럼 ‘여한 없는 연기를 한 적 있느냐’는 질문으로 바꿔 묻겠습니다

없죠 뭐. 여전히 목소리도 영 별로인 것 같고, 제가 하는 걸 아직도 못 즐깁니다. 현장은 아주 좋아하지만.

좋은 작품을 만들자는 목표로 모두 한마음으로 움직인다는 게 가끔 눈에 확 들어올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인류애가 생기죠. 하지만 저는 현장에서 죽고 싶진 않네요.

인터뷰는 올해 최고의 만남? 박은빈과 설경구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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